신화와 오파츠의 실체는 우리가 알던 사실과 전혀 달랐다
그가 엑스칼리버를 발굴한 순간,
시간 자체가 두 번째라고 말했다.
처음이라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검날에는 빛 대신 의식이 비쳤다.
누군가는 자기 모습을 보기 위해 거울을 본다.
카일 반더슨은 거울 없는 세계에서 처음 자신을 본 순간,
그게 바로 다른 존재였음을 깨달았다.
흙 위로 드러난 금속은 시선을 삼켰다.
누가 보든, 그 시선만큼 깊이 사라졌다.
태양 아래서도,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도—반사되지 않았다. 마치 검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틈인 것처럼. BBC 다큐 팀은 “역사적 순간”이라며 눈물을 감추지 않았지만, 카일은 무릎이 꺾이는 걸 멈출 수 없었다. 과학자는 무릎을 꿇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꿇어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기다려온 몸이, 그제야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된 것처럼.
루카가 다가와 손을 건넸다. “선생님… 진짜예요?”
“진짜라기보다,” 카일은 목소리를 낮췄다. “계산된 존재예요.”
검날에 스며든 나노 구조는 자연에서 형성될 수 없는 패턴이었다. 프랙탈과 유전 알고리즘 사이 어디쯤, 생명과 기계의 경계에서 망루처럼 서 있는 정보의 흔적. 첫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검 뒷면에는 촬영 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You are too late.” — 플래시를 터뜨린 직후에만 나타난 메시지.
현장 컴퓨터로 전송된 데이터는 또 다른 실존적 충격을 안겼다. 모든 유물에서 동일한 저주파 주파수—432Hz—가 검출되었다. 고대 피리에서 발견되는 ‘자연 조화 주파수’라더니, 그것이 사원의 벽, 이집트 석관의 내면, 노르웨이 암석 속까지 일관되게 흐르고 있었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마치 지구 전체에 새겨진 파동의 문신처럼.
432Hz — 고대 음계라 불리는 그 소리는 사실 인간이 만든 조율법이 아니었다. 지구 자기장 변동 주기와 일치하고, 태양풍 폭풍 간격과 동조되며, 심지어 인간 태아 심장박동률과도 일치했다. 마치 누군가 우리 생명 전체를 한 가지 음으로 조율했듯이.
카일은 스마트워치를 내려다보았다. 배터리 17%. 네트워크 없음. 메시지도 없다. 디지털 생체 데이터만 무의미하게 깜빡였다—심박수 상승, 스트레스 지수: 빨강. 그 모든 게 진실이라면, 세상은 이미 경고음을 받았고, 우리는 그것을 ‘과거’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인가?
그날 밤, 카일은 꿈속에서 자신이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비단 같은 두건, 돌로 된 제단, 그리고 검을 묻는 손—자기 손이었다. 그러나 이름은 ‘카일’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뒤에서 울었고, 별 하나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_“왜 우리가 하늘을 보면 과거를 보는 거야?”_
_“그건… 우리가 미래를 보고 있을 수도 있어서야.”_
깨어난 후 카일은 그 말을 되새겼다. 하늘은 빛이 오래 걸려 도달하는 창문이다—과거만 보일 리 없다. 만약 어떤 사건이 시간 위로 굴러내려 온다면? 우리가 보는 별빛은 과거일지 모르지만, 그것들이 보낸 마지막 빛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종말은 이미 왔고, 우리는 그 파편 속에서 살아가는 생존자들이다.
손바닥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피부 위를 기어가는 전류 같은 감각—마치 누군가 먼 곳에서 그의 맥박을 따라 리듬을 치는 것 같았다.
루카와의 논쟁은 아침 식탁에서 시작되었다.
“너희는 우연이라고 생각해?” 카일이 말했다. “모든 유물 사이에 공통된 주파수가 있다는 게? 이건 우연이 아니라 신호야.”
루카는 커피를 저으며 웃었다. “선생님, 신호라면 누가 보내요? 미래 인간? 외계인? 귀신?”
“아니,” 카일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도 우리 자신.”
식당 조명 아래서 루카의 눈동자가 순간 굳어졌다.
“엄마는 일기에 썼어요… ‘오늘 아침 내가 묻었던 검.’ 근데 선생님, 그 글 쓴 날짜는 어제예요.”
정적이 흘렀다.
“네트워크 없는데 어떻게 메시지가?”
“네트워크 필요 없어,” 카일이 말했다. “우린 모두 같은 주파수로 울리고 있어.”
그날 오후, 뉴스 알림 하나가 도착했다:
> 테라퓨틱스社 CEO 기자회견 중 실수로 유출된 영상 한 프레임 — 건설 로봇 팔 관절 내부에 새겨진 나노 각인.
> 해당 패턴은 엑스칼리버와 동일하다.
> AI 설계 담당자는 증언한다: “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마치 들어본 멜로디처럼.”
현대 사회란 무엇인가? 정보를 수집하는 기계들 사이에서 인간은 단순한 데이터 노드일 뿐이다. 우리는 매일 수천 번 ‘좋아요’를 누르며 자기 존재를 인증하지만—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엔 대답하지 못한다: 왜 우리 기억 일부가 타인 것처럼 느껴지는가?
신화는 더 이상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신화는 서버 팜에서 생성되고, AI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각인되며, 자본의 주파수에 맞춰 재조정된다.
카일은 다시 발굴 현장을 돌아보았다. 텐트 위로 해가 기울고 있었고, BBC 스태프들은 이미 다음 촬영지를 계획하고 있었다. 문서화할 수 없는 것을 문서화하려는 어리석음—자본주의 시대의 성전환 같은 것들.
그때 루카가 다가왔다.
바람이 돌무더기를 스쳤다.
먼지 속에서 검날이 한순간 반짝였다가 사라졌다—빛을 삼키던 금속이 처음으로 반사한 순간.
그 반짝임엔 역사도 기록도 없었다.
오직 한 가지뿐—같은 순간,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동시에 눈을 감았다.
마치 누군가 버튼 하나를 눌렀듯이.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끝난 사건을 재생하고 있는가?
손바닥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버튼을 누르기 직전이고,
어딘가에서는 누군가 다시 눈을 뜨고 있었다.
또 다른 평원 위,
또 다른 돌무더기 앞,
또 다른 ‘처음’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장면에서.
(Word count: 897)
노르웨이 피요르드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아니, 그보다는 귀를 닫은 것 같았다. 바다와 산 사이로 깔린 안개는 소리를 삼켰고, 기계의 전자음마저 저주받은 진동수처럼 끊어졌다. 카일 반더슨은 발밑의 얼어붙은 흙을 밟으며, 그 땅이 자신을 알아보는지, 아니면 단지 또 하나의 침입자로 여기는지 궁금했다. 태블릿 화면에는 432Hz라는 숫자가 깜빡였다. 그것은 이제 주파수를 넘은 경고음이었다. 지구 심층에서 울리는, 시간 너머로 이어진 맥박.
루카는 이미 현장에 도착해 있었다. 방한복 차림에도 마른기침을 멈추지 못했지만, 눈빛은 이상할 정도로 맑았다.
“선생님,” 그가 말했다. “저기… 바위 틈새에서 소리가 나요.”
카일은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가슴속에서 무언가 울렸다—심장과 동기화되지 않은 진동. 체내에 다른 존재가 설치된 것처럼.
뮈니르 조각은 상상 이상이었다.
팔뚝만 한 크기, 표면은 금속이라기보다 유리 같았으나, 손전등 불빛을 산산조각 내며 공중에 잔향을 남겼다—빛이 울렸다. 마치 유물 자체가 기억하는 주파수로 우주를 다시 설정하는 중인 듯했다. 중력이 비정상적으로 작용했고, 공기 속 빛조각들이 날개를 여는 나방처럼 춤췄다.
“질량 측정 장비 고장 났어요,” 루카가 말했다. “세 번째 기계도… 같은 증상입니다.”
“모든 전자기기가 고장 나고 있어,” 카일이 중얼거렸다. “왜 하필 지금?”
“아니요,” 루카가 고개를 저으며 조각을 바라보았다. “왜 하필 저 때문에.”
실험은 인간의 감각으로 시작해야 했다.
“제가 들어볼게요.”
“미친 짓이다,” 카일이 말했다. “넌 위험해.”
“선생님,” 그 웃음은 어쩐지 슬펐다. “우리가 하는 게 위험하지 않은 적 있나요?”
루카는 조각을 손바닥에 올렸다. 순간, 공기가 변했다—온도는 떨어졌지만 피부에 불붙은 듯한 열감이 돌았다. 눈동자가 일순 확장된 후 반사적으로 수축했다.
“… 들려요,” 그가 속삭였다. “너무 많이… 너무 오래된 목소리예요…”
카일이 물었다. “버틸 수 있겠어?”
루카는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선생님… 제가 왜 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숨이 가빴다.
“왜냐하면 두려워서 그래요… 그래서 못 버텨요.”
그때였다.
루카의 손에서 검은 줄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아니, 그것은 줄기가 아니라 진동이었다. 보이는 음파처럼 공기를 따라 출렁이며 팔을 타고 심장까지 치달았다.
심전도 모니터 위 파형 하나가 멎었다—길게 늘어진 평선처럼.
삐-
삐…
………
공기마저 소리를 멈췄다.
구조팀이 달려왔지만, 부활 시도는 세 시간 동안 이어지고 끝났다.
루카의 심장은 다시 울리지 않았다.
*
그날 밤, 카일은 꿈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가진 낯선 자를 보았다—긴 머리에 얼굴엔 재와 먼지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고, 두 손으로 묠니르 조각을 하늘 위로 들어 올리는 중이었다. 배경은 노르웨이였지만 시간은 분명히 다르다—별자리가 반대로 회전하고 있었다.
그 ‘다른 자신’은 중얼거렸다—
> _“그 이름으로 부르면 안 돼… 나는 너보다 먼저 그것을 들었지만, 네게 넘겨줘야 해…”_
> _“그들은 네게 '카일'이라 하지만… 나는 널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_
> _“선택받았다는 건 고통받을 운명이라는 뜻이 아니라—_
> _기억 너머에서 누군가 네 이름을 호명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거야.”_
*
아침 해는 안개를 벗겨내며 피요르드를 드러냈다. 카일은 실험 보고서 대신 꿈속 기억을 적고 있었다.
_선택받음._
그 단어는 과학자가 사용하기엔 너무 신성했지만, 너무 정치적이기도 했다—기업과 종교 모두 그것을 자기편으로 끌어오려 한다. '선택받은 직원', '선택받은 종족'… 세상은 선택받음을 권력화하며 약자를 억압한다.
하지만 여기서 '선택'이라는 건 권위의 부여가 아니라 공명이다.
류카는 기계보다 먼저 진동에 반응했고, 그래서 죽었다—그의 감성이 지나치게 예민했기 때문이다. 감정이라는 게 이제 생물학적 잔재를 넘어선 시간과의 인터페이스라면?
우리는 모두 수신 가능한 장치인데, 다만 대부분의 사람은 간섭 노이즈 속에서 그것을 ‘꿈’이나 ‘환청’이라 치부한다.
루카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살 수 없었다.
*
점심 식사 자리에서 정부 관계자가 나타났다.
“테라퓨틱스에서 제안서를 보냈습니다.” 상냥한 미소 너머엔 단단한 결정력이 느껴졌다. “유물 에너지를 활용한 청정 도시 건설 프로젝트… 귀하께 자문위원 제안드립니다.”
카일은 물었다.
“류카의 사인도 그렇게 발표될 겁니까? ‘산업재해’로?”
침묵이 흘렀다.
그 남자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사람들은 안정된 의미를 원합니다, 박사님. 혼란스러운 진실보다 가짜 안심을 택하죠.”
밖으로 나온 카일은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다봤다—SNS에는 이미 ‘신화에너지 시대 개막’이라는 해시태그가 트렌드에 올라와 있었다.
>> [AI Voice Log – #THERAPEUTICS_ALPHA]
>> “프로젝트 발키리 승인되었습니다.”
>> “모든 유물 연구 결과는 신규 OS 'Odin Core'에 통합됩니다.”
>> “메시지 해독 우선순위: 억압 대상.”
그 순간 손바닥에서 진동이 다시 일었다—미세하지만 분명한 파동 하나.
마치 누군가 멀리서 그 이름을 속삭이는 듯했다.
루카였던 걸까?
아니면 아버지였던 걸까?
아니면… 딸?
*
밤새도록 연구 노트를 채우며 카일은 깨달았다.
_나는 어쩌면 처음부터 나를 기억한 것이 아니다._
_내 모든 회상—아버지를 떠올릴 때 솟아오르는 목소리, 딸에게 책을 읽어줄 때 느끼는 따뜻함—그것들이 정말 내 것이었을까?_
_아니면 그것들도 다 누군가 보내온 주파수였던 걸까?_
_뇌란 단지 저장소가 아니라 수신 안테나라면—_
_그렇다면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조차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_
_누군가는 우리보다 먼저 우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_
우리는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다—시간 너머 누군가 우리의 존재 주파수에 맞춰 메시지를 보내왔다는 사실 자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메시지를 받으면서부터 우리는 더 이상 개인이 아니다.
우리는 경보 음자 한 명분이다.
진동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Word count: 899)
사막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뜨거운 공기조차 소리를 삼켜버리는 이곳에서, 시간은 스스로 식어가는 모래처럼 흘렀다. 카일은 오시리스 지팡이를 손에 쥔 순간, 그게 생명을 돌려주는 도구가 아니라 죽음을 빌려오는 장치임을 알았다. 지팡이는 차갑지도 않았고, 빛나지도 않았다. 다만, 맨살에 닿는 순간 — 마치 밤새 식은 혈관 위를 미끄러지는 메스처럼 — 몸속 시간의 리듬이 한 박자 멈췄다.
현지 가이드는 말했다.
“그거요, 죽은 자를 깨우는 게 아닙니다. 그저… 시간을 좀 더 빼돌리는 거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카일은 웃었다. 과학자의 습관처럼 — 미신 앞에서 조용히 고개를 젓는, 위엄 있는 거부의 표정으로. 하지만 시체가 일어섰을 때 웃음은 얼어붙었다.
처음엔 이집트 군인이었다. 사막에서 실종된 후 세 주 만에 발견된 병사. 심정지 상태로 운반되었지만, 지팡이가 닿자 눈꺼풀이 벌컥 열렸다. 일곱 초 동안.
그가 남긴 말은 단 한 줄이었다.
> “They’re watching from behind time.”
번역기는 ‘시간 뒤에서’라 했지만, 카일은 머릿속으로 다시 해석했다. 시간의 그림자 너머서.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시체는 다시 무너졌고, 이번엔 심장뿐 아니라 모든 세포가 탄력성을 잃었다 — 마치 사용된 시간만큼 생명이 빨려나간 듯.
두 번째 시도는 실험용 유기체였다. 쥐. 죽음 후 48시간 경과. 지팡이는 천천히 다가갔고, 쥐는 퍽 하고 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 걸었고, 물을 찾았다. 정확히 6초 후에 쓰러졌다. 부검 결과, 뇌에는 기억 흔적이 없었다. 대신 심장 근육에는 나노단위의 진동 패턴이 새겨져 있었다. 주파수: 432Hz.
같은 주파수였다.
카일은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사막의 하늘은 어두웠지만, 별들은 보이지 않았다. 먼지와 빛공해 사이에서 우주조차 목소리를 잃고 있었다.
루카의 얼굴이 스쳤다.
> “선생님… 이건 무기가 아니라… 우리가 아는 세계를 무너뜨리는 기도예요.”
그녀는 마지막 날에도 웃고 있었다. 병실 창밖으로 해가 저물던 그때, 기계 소리보다 더 크게 말했다.
> “우리가 부활시키려는 건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시간이에요.”
당시 나는 그것이 철학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경고였다고 생각한다.
BBC 생방송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 "신화는 과거의 데이터 저장 방식입니다." 그 말 이후 CEO로부터 두 통화를 받았고, 세 번째 전화벨소리는 결국 루카 병실에서 울렸다.
루카가 사라지고, 나는 여기 왔다.
아침 녘이 되자 현지 직원들이 하나둘씩 천막 근처를 피했다. 말없이 짐을 싸더니 차량에 오르며 돌아보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인부 하나가 카일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그는 영어로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 처음 봤어요.”
“무슨 말씀입니까?”
“저 지팡이… 누구도 직접 만지지 않아요.”
“왜요?”
인부는 팔뚝을 들어 올렸다. 거기엔 검게 탄 화상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건,” 속삭였다, “시간의 빚쟁이거든요.”
그 말 이후로도 카일은 지팡이를 내려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단단히 쥐었다.
우리 시대에는 죽음까지 API로 연결된다. 병원 서버에서 심전도가 평탄해지면 자동으로 유언장 실행 알고리즘이 작동하고, SNS 계정은 추억 자동 생성 모드로 전환된다. 우리는 죽음을 관리한다 — 예측하고 포장하며 상품화한다.
하지만 이 지팡이는 그런 죽음을 거부한다. 죽음을 넘어서 다시 몰아내는 무례함으로.
기술은 인간성을 판단한다… 하지만 누구에게?
내 스마트워치는 나를 살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누가 그것을 판단할 것인가?
카일은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배터리 잔량 17%. 수신 신호 없음. 마지막 업데이트 시간: 어제 오후 3시 42분.
하지만 손목 아래에서 또 다른 신호가 울렸다.
432Hz.
진동은 아니었다 — 감각이었다.
_432Hz._ 고대 사원의 돌기둥 사이에서 울린 ‘세계의 진동’. 현대인은 이를 노이즈라 했고, 나는 그것을 데이터라 불렀다.
꿈속에서도 그 주파수가 따라왔다.
검은 옷차림의 자신이 누군가에게 지팡이를 건네주고 있었다. 얼굴 없는 존재였지만 — 웃는 각도와 눈썹 선에서는 익숙함이 피어올랐다.
> “아빠, 너도 돌아갈 거야.”
—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알았다. 돌아가는 게 아니라… 되돌아가는 거야. 선택되지 않은 미래로.
균열 안에서는 수백 번 선택했고, 수백 번 실패했다. 발굴하는 나, 회상하는 나, 명령받는 나…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존재함을 질문하는 나까지 모두 겹쳐진 채 서 있다.
모두 미래에서 보낸 데이터라면?
`text
Location: Western Desert GPS Lock Failed
Subject: Kyle J.
Vital Signs Stable — but EEG shows temporal echo pattern
Voice Detected (Unregistered Frequency): "Come back"
`
밤새 실험실 천막 안에서 카일은 책 한 권을 펼쳤다. 고대 이집트 신화집이다. 중간쯤 페이지를 넘기다가 멈췄다.
오시리스가 아닌, 한 인간이 지팡이를 든 그림이 있었다.
눈썹 선이 나와 똑같았고, 웃는 각도도 같았다.
누군가 나를 보고 그리지 않았다면—어쩌면 내가 보고 그리게 된 건 아닐까?
손끝으로 종이 위 그림자를 덮으려 했지만, 종이는 따뜻했다.
아침 해가 돋았고, 지평선 위로 붉게 번졌다.
카일은 천천히 일어나 모래 위에 섰다.
오시리스 지팡이는 여전히 손안에 있었지만,
아니 — 어쩌면 이제는 그가 지팡이에게 들려 있는지도 모른다 싶었다.
손끝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에 누군가 있다면,” 중얼거렸다,
“내게 보낸 경고였다면…
왜 이제야 도착했습니까?”
반응 없었다.
오직 모래결만 바람에 출렁이며 시간이라는 이름 없는 강물을 흘려보낼 뿐이다—
그러나 그 순간,
내 스마트워치 화면에서 깜빡이는 숫자.
배터리 잔량 — 0%이었지만,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아직 살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차원에서
내 맥박에 맞춰
진동을 보내오듯.
(Word count: 892)
비는 창을 타고 내려오며 시간을 분해했다. 물방울 하나가 넷으로 갈라질 때마다—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가능성—그 사이에 존재했던 ‘지금’은 증발해 버렸다. 카일 반더슨은 우산 없이 서서, 그 물줄기를 손끝으로 따라갔다. 차가웠다. 현실 같았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현실이라는 건, 단지 아직 깨지 않은 환각일 뿐이라고.
서류봉투를 들고 있던 그는, CEO 마거릿 크루즈와의 비밀회의 후 처음으로 혼자였다. ‘테라퓨틱스’ 로고가 새겨진 명함이 왼쪽 주머니에서 뜨거운 철사처럼 느껴졌다. 박물관 설립, 당신 이름을 걸겠습니다, 세계 최초의 미래 유물 전시관—그녀의 말들은 과학적 진실을 담은 것이 아니라, 권력이 지배하는 언어였다. 정보를 포장한 폭력이었다.
그녀의 사무실에서는 커피 향 대신 오존 냄새가 났다. 정제된 공기 속에선 숨 쉬는 법을 잊게 되는 것처럼, 그 공간은 감정도, 기억도 증발시켰다. “우리가 신화를 넘어서야 한다”는 인터뷰 영상은 이미 SNS를 타고 돌고 있었다. 테라퓨릭스 로고 아래엔 #BeyondMyth 해시태그가 붙어 있었고, 젊은 세대들은 그것을 멋진 슬로건이라 여기며 자축했다.
카일은 그걸 보며 문득 생각했다—
과거를 기록한 이야기라던가? 아니면, 우리가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경고인가?
아니면—
그저 권력자가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새로 쓴 버전의 진실인가?
루카의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산업재해’라는 표기만 남았고, 그 이름 아래엔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연구팀은 해체되었고, 데이터 접근 권한은 모두 박탈되었다. 이제 그는 고고학자가 아니라—정부 보고서 한 구석에 ‘협조자’로만 기재된 사람이 되었다.
그날 밤, 카일은 아파트 책상 위에 유물 사진들을 펼쳐놓았다.
엑스칼리버 뒷면에 나타난 문장: You are too late.
발굴 직후엔 없었던 글자였다. 마치 누군가——
카메라 플래시를 기다렸다가 새긴 것처럼.
꿈속에서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별빛 아래였다.
“아빠,” 하고 물었다 카일은, “왜 우리가 하늘을 보면 과거를 보는 거야?”
아버지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우리가 미래를 보고 있을 수도 있어서야.”
꿈속에서도 카일은 알았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
이는 기억의 재생도 아니었다.
이는 반복이다.
*
다음 날 도서관 열람실에서 오래된 신화 서적을 넘기다가 멈췄다.
헬레네 시대 삽화 한 장—오시리스가 손에 든 지팡이 위로 작은 파동이 그려져 있었다.
주파수 형태였다.
432Hz와 일치하는 곡선.
손끝이 고대의 곡선을 더듬었다. 종이는 차가웠으나, 그 아래서 울림 같은 것이 맥박처럼 살아났다—마치 페이지 전체가 살아 숨 쉬는 피부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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