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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중독과 우울증을 경험했던 최유리 티처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누르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과 생각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건강한 자신을 찾기까지의 과정에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깨달음을 통해 글쓰기가 어떻게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 많은 분들께 나누고자 강연도 하고, 책도 쓰고, 강의도 하는 최유리 티처. 나의 마음을 괴롭히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면, 최유리 티처가 경험한 글쓰기의 힘을 만나보세요.
Q. 어떻게 글을 쓰게 되셨나요?
2013년 결혼 생활에서 위기를 겪으며 우울증이 왔습니다. 주위에 제 얘기에 경청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외롭고 서러웠죠. 하루에 세 시간을 울면서 그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러다가 궁금해졌어요.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그러자 과거에 내가 내렸던 다른 중요한 의사결정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됐습니다. 그러다 ‘행복하지 않다’는 진짜 마음의 소리에 나마저 경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 기간이 꽤 길었더라고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죠. 혼자서 질문하고 답하고. 이런 질문은 사실 20대 때 했었어야 했거든요. ‘질문하기를 미뤘더니 행복하지 않은 선택을 해온 거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때부터라도 혼자 묻고 혼자 답하는 그 작업을 기록하고 싶었어요. 그게 글쓰기의 시작이었죠. 글을 쓰다 보니 제가 글을 쓴다는 것과 내면의 목소리에 조용히 집중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것도 발견했고요.
Q. 마음이 복잡할 때, 글쓰기가 명상보다 더 효과적일까 궁금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명상을 제대로 해보지는 않았는데요. 그냥 생각을 하는 것과 글로 쓰는 것의 차이는 분명히 있어요. 떠오르는 생각을 적지 않고 내버려 두면 연기처럼 휘발되버리잖아요. 아무래도 머릿속에 잠시 머무르는 생각으로는 삶을 바꾸기는 어렵겠죠.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고 눈으로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기록하고, 그 생각을 눈으로 보며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이죠.
그런 면에서 글쓰기가 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Q. 마음을 정리하는 도구로써 글쓰기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첫 번째 장점은 일련의 과정을 연속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에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어도 바로 답할 필요가 없어요. 며칠 지나서 나만의 답을 찾은 후 그것을 기록하면, 가장 깊숙이 있던 진짜 내 마음을 바라봐 줄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 장점은 내 생각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죠. 흐릿하던 생각을 명확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쓰고, 눈으로 보고, 소리 내서 읽어 보세요. 내 생각을 또렷하게 알게 됩니다. 내 생각을 시각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인생이 바뀌는 시작이 될 수 있어요.
Q.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부정적 감정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그런가요?
사실 그런 부정적 감정의 뒷면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있어요. 상대방이 밉다면, 그건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 때 그런 거죠. 거기서 나아가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배우자와의 관계는 무엇일까?’ 친구에게 대한 배신감을 느꼈다면, 친구에게 내가 기대했던 바와 친구가 내게 기대했던 바가 다를 수 있겠죠. 그럼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와 친구가 되고 싶나? 내가 원하는 우정은 무엇일까?’
부정적인 감정에 괴로워하기보다 부정적 감정 뒷면을 들여다보세요. 거기에 나의 가장 중심 욕망, 가치관, 신념이 있어요.
Q. 글쓰기가 정체성을 대변하는 중심축이라고 하셨는데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누군가의 글에는 그 사람이 있어요. 하루키는 굴튀김에 대한 글을 써도 글에는 그 사람이 드러난다고 했다죠? 우리는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 문체나 글의 구조, 즐겨 쓰는 표현 등을 통해 그 사람을 이해합니다.
‘아하 이 작가는 이런 사람이로군.’
제가 아직 저를 몰랐던 때, 제 블로그에 써서 올린 글들을 읽고 또 읽었어요. 제가 그렇게 글을 썼다는 게 너무 좋아서요. 그런데 어느 순간 보이더군요.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가 하면 아무도 하지 않은 얘기를 겁 없이 하는 사람, 그게 제 글의 작가더라고요. ‘이 작가는 똘끼가 있구나’, ‘이 친구는 내향적이구나’, ‘얘 자유로운 거 되게 좋아하네?’ 이런 관찰이 축적되며 제 정체성을 찾아갔죠.
우리 자신이 쓴 글은 내 내면이 여과 없이 반영된 ‘내면의 사진’이 아닐까 해요.
나를 알고 싶다면, 내면의 사진 한 장만 있으면 안 되겠죠.
가급적 많이 찍어 보세요. 틀린 사진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내면의 사진 속 나를 관찰해 보세요. 그 사람의 정체성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보인답니다.
Q. 성찰 에세이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기 승 전 결' 중 어느 단계인가요?
‘전’이 제일 중요합니다. ‘전’의 단계를 잘 거쳐야 ‘결’에서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죠.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나’를 만나는 일에는 ‘뿌듯하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전’을 쓰시는 중에 감정의 소용돌이에 힘겨워 하시다 ‘결’까지 쓰신 분들의 얼굴이 피어나는 것을 저는 자주 목격합니다. 제가 글쓰기 선생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그 목격의 순간이 저를 행복하게 하거든요.
우리에겐 ‘살던 대로 살지 뭐’라는 관성이 있습니다. ‘전’ 단계는 이러한 관성을 떨쳐내는 과정인데요.
이 단계를 거쳐 ‘결’까지 가려면 치열해야 해요. ‘전’ 단계는 내 안의 비합리적 신념을 떨쳐내고,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나’가 어떤 사람인지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오랫동안 어렴풋이 알았었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던 무언가가 명확해지는 단계가 ‘전’이죠. 이 단계에서 ‘지금까지 이것도 모르고 살아왔었다니’라는 후회와 탄식, 스스로에 대한 책망, 자기 연민 등의 감정이 쏟아져 나오기도 합니다. ‘결’ 단계에서 ‘나는 이렇게 살 거다’라는 스스로와의 약속 나아가 삶까지도 변하는 단계로 가려면 ‘전’ 단계에서의 소용돌이는 피할 수 없어요.
그것을 돌파하는 분들만이 ‘러너스 하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원래 아름다움엔 고통이 수반되죠.
*러너스 하이 (Runners' High):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일정 시간을 뛰었을 때 밀려오는 행복감.
Q. 나에 대해 잘 성찰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끈질기게 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아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묻기 위한 노하우가 있을까요?
우선, ‘내 인생이 이대로 끝나도 괜찮은 걸까?’라고 질문을 던져 보세요.
이 질문이 저에겐 수많은 질문을 가능하게 했던 큰 질문이었어요.
저는 ‘이만하면 잘 살았어. 난 지금 죽어도 하나도 안 아쉬워.’라고
대답할 수 없었어요.
지금의 삶이 행복하지 않을 때, 이유를 외부에서 찾게 되죠. 그게 쉬운 반응이에요.
그러나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상황이나 다른 사람의 인격을 바꾸기는 어려워요. 나를 바꿀 수는 있지요.
나를 바꾸는 열쇠는 질문에 있습니다.
그리고 내 질문에 답한 나에게 공감해 보세요.
우리가 감정적으로 힘들 때 대화 상대를 찾게 됩니다. 그 사람이 ‘왜 그런 거야?’ 물어봐 주기를 기대하잖아요. 그런데 상대가 질문만 퍼부으면 우리는 답하기를 피하게 되고 대화도 중단됩니다. 대화가 아니라 심문 같으니까요. 답을 한 후 그 답에 담긴 내 감정을 보살펴 주세요. ‘너 많이 힘들었겠다.’ 그럼 내가 나에게 하는 거지만 진짜 위로가 돼요. 그럼 그 위로받는 느낌이 좋아서 또 질문을 던지게 돼요. 다정하게 내 이야기에 경청하면, 따뜻하고도 예리하게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는 질문을 계속해서 하실 수 있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왜’라는 질문을 어려워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은 책이 있어요. 이 책이 저에게는 상당히 이성적인 동력이 되어주었어요. 최근에 개정판이 나왔는데, 사이먼 시넥의《스타트 위드 와이:나는 이 일을 왜 하는가》입니다. 유튜브에 TED 영상도 있어요.
Q. 일기와 성찰 에세이가 다르다고 구분하셨어요. 일기와 성찰 에세이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내 입장을 고려하는 시선만 존재하는지, 상대방과 상황 등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보는 시선이 존재하는지에 따라 구분되지요. 일기에서는 내 입장에 대해서만 씁니다. 그러나 성찰 에세이에서는 내 입장만 고려하는 좁은 시선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과 전체 상황도 조망해 봅니다. 내가 오랫동안 동의해 온 전제가 누군가에 의해서 조종된 ‘비합리적 신념’인지, 진짜 내 목소리인지 구분하려면 나와 타인, 그리고 과거 및 현재의 전체 상황을 함께 보아야 하니까요.
글쓰기를 영화에 비유해 볼까요. 일기와 성찰 에세이 모두 내가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이때 주연 배우인 내가 내 몸에 한 대의 카메라만 달고 하루를 기록했다면 어떨까요? 그 영화에서는 주연 배우는 자신을 볼 수 없습니다. 그가 본 것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죠. 물론 순간순간의 감정이 소리로 기록될 수 있겠죠. 그러나 그 사람의 표정이 담겨 있지는 않아요. 주연 배우의 몸에 장착된 한 대의 카메라에 담긴 하루의 영상 기록 같은 글.
이런 글이 저는 일기라고 봐요.
반면 내가 주연 배우이면서 내가 감독이라면 어떨까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라 하더라도, 그 영화는 여러 대의 카메라가 다양한 각도에서 기록한 것을 편집합니다. 내가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선, 상대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 둘 다를 담은 투 샷, 그리고 두 사람이 기억하는 과거의 상황. 감독은 그 기록물을 편집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스토리를 들려줍니다. 아무리 본인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과거에 무기력하게 누군가에게 당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야기의 주도권은 감독에게 있어요. 자전적 이야기이면서 감독의 인사이트를 담은 영화. 이런 영화에 가까운 글이 저는 성찰 에세이라고 봅니다. 일기는 좋은 성찰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원본 기록이 될 수 있어요.
최유리 티처 이력
안녕하세요, 세바시 1101회 ‘나는 쇼핑중독자였습니다’라는 강연에서 제 이야기를 말씀드린 적 있는 최유리 작가입니다. 저서로는 《오늘 뭐 입지?》와 《샤넬백을 버린 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가 있습니다.
쇼핑중독이었던 제가 건강한 의생활을 찾기까지의 저의 고백과, 그 과정을 통해 제가 저를 찾아가기까지 겪었던 시행착오와 깨달음을 솔직하게 담은 성찰적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