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시 조교글 EP.4
요즘 학생들의 고민은 무엇일까요?
외모? 친구관계? 진학?
저도 학창시절에 친구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더 예쁘게 보일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고민은 대학 진학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중학생 시절 꽤 상위권 성적을 받는 학생이었어요. 제가 살았던 시골 특성 상 누가 점수를 잘 받았고, 누가 어떤 학원을 다니는지 소문이 잘 났는데요. 다른 학부모님들이 저희 부모님께 제가 어떤 학원에 다니는지, 어떻게 공부했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어서, 제 성적은 자연스레 부모님의 관심사이자 자랑거리가 되었어요. 당시에는 크게 부담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고등학생이 되어 대입 준비를 시작하자 ‘부모님의 자랑거리’였던 제 자부심은 점점 부담감이 되더라고요.
작은 시골에서 벗어나 첫 전국모의고사 성적을 받은 후, 제 부담감은 점점 커졌어요.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도 자연스레 오를 줄 알았는데, 성취감보다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한 후부터는 전처럼 쉽게 오르지도 않았어요. 왜 성적이 오르지 않는지에 대한 고민보다,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렸다는 생각이 저를 많이 옭아맸던 것 같아요. 저희 부모님은 저를 전적으로 믿고 지원해주시면서도 성적으로 크게 부담을 주지는 않으셨어요. 그런데 ‘나는 부모님의 자랑거리야.’라는 생각이 스스로 더 부담감을 느끼게 만들더라고요.
이걸 깨달은 후부터는 저는 부모님이 아닌 ‘나’를 위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던 시기를 지나, 공부를 한 만큼 성적이 오른다는 걸 체감도 했었고요! 물론 부담감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었어요. 성적을 받을 때마다 부모님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도 했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는 생각도 가득했으니까요.
부모님을 위한 공부와 나를 위한 공부 사이에서 고민하며 3년이 지났고, 어느새 대학 입학 결과가 나오는 시기가 되었어요. 고등학교 3년 동안 가장 가고 싶었던 대학의 합격 소식을 들은 후, 저는 바로 부모님께 합격 소식을 알렸는데, 제가 더 좋은 대학교에 가기를 바랐던 부모님의 반응은 크게 기뻐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오히려 다른 대학의 합격 발표 일정을 물어보시면서 실망감을 보이셨어요.
그때 저는 처음으로 치열하게 공부했던 3년의 시간이 후회됐던 것 같아요. ‘나는 원하는 대학에 붙었는데, 부모님이 만족하지 못하신다는 이유로 실컷 기뻐할 수도 없는 걸까?’, ‘결국 나를 위한 공부가 아니었나?’ 등 잡다한 생각에 다른 대학교의 합격 소식에도 전혀 기쁘지가 않았어요.
대학 입시를 위해 울면서 힘들게 공부했던 시간과 노력들이 모두 물거품이 된 것 같았어요. 지금까지 저희 부모님은 저에게 모든 지원을 해주셨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이때 부모님의 목소리와 제가 느꼈던 감정이 잊혀지지 않을 만큼 상처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부모님과 생각이 달라도 토를 달거나 다른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었는데, 실망스러운 목소리르 듣고만 있으면 저 스스로 노력했던 3년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께 속상한 마음을 모두 털어놨어요. 부모님과 충분히, 또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었고, “너가 한 노력만큼 보상받기를 원했을 뿐이지, 절대 너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은 건 아니다.”는 부모님의 진짜 속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학부모님들의 고민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자녀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게 만들 수 있을까?'일 텐데요. 자녀들 역시 ‘어떻게 하면 부모님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많을 거예요. 저도 이 고민을 직접 하고, 또 갈등도 겪어본 사람으로서, 저는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은 스스로에게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어요.
만약 제가 부모님의 기대를 만족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만으로 공부했다면, 부모님의 실망 가득한 말씀에도 제 의견은 내세우지 못했지 않았을까요?
왜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과한 기대를 할까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현수 교수님은 이 질문에 대해 아래처럼 답을 해주셨는데요.
“너가 우리를 사랑하면 공부 열심히 해야지”, “나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너는 성공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교수님의 의견에 정말 공감했어요. 저희 부모님도 은연 중에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신 것 같았고, 저도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기가 있었으니까요.
나의 부모님이 내게 이런 기대를 갖고 있거나, 내가 나의 자녀에게 이런 기대를 갖고 있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이 기대를 어떻게, 얼만큼 표현하고 느낄 수 있는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이런 기대로 인해 갈등이 생기더라도, 서로에 대한 충분한 대화와 이해가 있으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