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라 그동안 사용하지 못했던 휴가를 조각내어 쓰고 있다.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특별히 갈 곳도 가고픈 곳도 없어서 조용한 관사에서 책을 읽었다.
요즘 다른 생각을 하고싶지 않아 도피처처럼 책이나 영화를 찾아 멍때리며 보곤한다.
이번에 선택한 책은 오래전 읽었던 '위대한 개츠비'이다.
원주 집에서 몇 권 가져올 책을 찾다가 갑자기 마음이 당겨 들고왔는데, 예전에 읽었을 때와는 감상이 제법 다르다.
나이가 든만큼 삶을 이해하는 폭이 달라져서일까
개츠비도, 그리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데이지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로 끊임없이 흘러들어가면서도 해류에 맞서 배를 띄우고 파도를 가른다.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부분이다.
과거로 끊임없이 흘러들어가면서도~
어떻게 과거에서 무심하게 걸어나갈 수 있을까
개츠비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과거라는 해류에서 표류하는 중은 아닐까
개츠비는 오로지 초록색 불빛만 믿었다.
그것은 해가 갈 수록 우리 앞에서 멀어지는
가슴 벅찬미래였다.
과거란,
특히 버리지 못하는 과거란 그렇다.
마음 속에 초록색 희망의 불빛을 남겨놓고
해가 갈수록 그 불빛에 색을 입히고 온도를 더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자신의 마음속에서 과거는
추억과 그리움과 애태움이 더해져
실제의 과거보다 더 가슴 벅차오르는 희망이 될 수도 있는...
개츠비가 부두 끝에 있는
데이지의 초록색 불빛을
처음 찾아냈을 때 느꼈을 경이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이 푸른 잔디밭을 향해
머나먼 길을 달려왔고
그의 끝은 너무 가까이 있어
금방이라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으리라.
어떤 방식이든 부를 축적해 데이지 집 강 건너편에 대저택을 마련한 개츠비에게 보이는 데이지 집의 초록색 불빛은, 불빛 이상의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위대한 사랑은
화려한 파티후 남겨진 너저분한 쓰레기들처럼
처참함을 안겨주고 만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부숴버리고 난 뒤
돈이나 엄청난 무관심
또는 자기들을 묶어주는 것이
무엇이든 그 뒤로 물러나서는
자기들이 만들어낸 쓰레기를
다른 사람들이 치우도록 하는 족속..
소설 속에서 화자였던 닉 캐러웨이가 개츠비가 죽고 몇년 뒤 거리에서 만난 데이지의 남편 톰을 향해 내뱉은 뒷말이다.
1920년대 미국의 사회상이 반영된 소설이라 시대를 좀더 부연해야겠지만, 그걸 떠나서라도 데이지와 톰은 반성이 필요한 족속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안쓰럽게 느껴진 이유는
가진 것을 놓치 못하는, 한번도 상실해보지 못한 그들이 갖고 있는 불안함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저 '위대한'개츠비의 사랑을 추모하며
와인 한 잔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