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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잇나잇 Apr 28. 2020

내가 노르웨이에서 가져가고 싶은 것

'노르웨이 탐방기'의 시작

 남편을 따라 남편의 모국인 노르웨이에 온 지 5개월이 지났다. 2019년 12월 18일 오후 9시가 넘은 밤. 인천공항과 달리 공항에 마저도 사람이 많지 않았고, 짙은 밤하늘엔 하늘하늘 작은 눈송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텅 비다 시피한 입국장에서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바로 눈에 띄는 남편을 만나 (사람이 없어서 이다. 눈에 띄는 외모라서가 아니고.) 캄캄한 밤거리를 달려 혹시나 무스가 도로로 뛰어들지는 않으려나 걱정을 하며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우리 집'으로 왔었다. 

그리고 5개월이 흘렀다. 캄캄한 밤과 같았던 노르웨이의 겨울이 지나고, 마음이 설레기만 한 봄이 왔다. 거실 창을 통해 보이는 나무는 황량하기만 했던 나뭇가지에 어린 초록잎들을 키워내기 시작했고, 현관 앞 돌 틈에서는 기특한 민들레가 노오란 꽃을 피웠다. 

긴 노르웨이의 겨울날 동안 나는 언젠간 꼭 한국에 다시 돌아갈 수 있길 바랬다. 외국에 처음 살아본 것도 아닌데 20대와 30대가 다른 건지, 시간이 흐른 만큼, 한국에 더 많은 것들을 내가 두고 와서인지, 외국에서의 삶은 내게 설렘보다는 언제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기다림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나는 그 날들 동안 노르웨이에서의 삶에서의 '의미'를 찾아내야만 했다. 이곳에서 내가 무엇에 의미를 찾아서 한국에 돌아가, 이 곳에서의 날들이 헛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것들 말이다. 그리고 나는 '북유럽의 라이프 스타일'을 가져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나는 관찰하고 또 관찰했다. 이방인의 눈으로 끊임없이 관찰하며 무엇이 다른지를 찾아내려 했다. 어떤 것을 내가 배울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발견들을 글로 써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브런치에 '노르웨이 탐방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곳에서 나를 행복하게 했던 것들을 글로 남기고 메모로 남겨서 한국에서의 내 삶에 그대로 가져가고 싶었다. 다른 환경에, 다른 문화에 살아봄으로써 새로운 것들을 경험해 보고, 그중 나에게 맞는 것을 내 삶으로 가져가는 것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라이프 스타일이어야 했다. 예를 들어, 친구들을 초대해서 요리를 대접하기. 한국과 달리 외식이 흔치 않은 이 곳에서는 친구들 집에 놀러 가거나 놀러 와 음식을 대접하는 일이 잦았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통 만나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한번 공원에서 1미터 이상씩 자리를 띄우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왔었다.) 이 시간이 정말 행복했었다. 한국에서 친구들을 만나 맛집에 가서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에 누군가를 집에 초대한다는 것에서 오는 친밀함이 더해졌다. 나의 공간에 누군가를 들이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언제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한국에서 (원래는 여름에 예정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기약 없어져버렸다.) 이미 방문할 친구들 집도 약속을 해놨다. 어떤 집들이 선물을 들고 갈까,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게 될까 그런 것들이 벌써부터 설레게 만든다. 

 또는 사지 않고 만들어 보는 즐거움 같은 것 말이다. 남편은 '쌈무'를 미친 듯이 사랑한다. 한국에서 고기를 먹을 때면 우리는 항상 쌈무를 곁들여 먹었었다. 그런데 이곳에선 당연히 쌈무를 찾아볼 수 없다. 스웨덴에 있는 아시아마트에 쌈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장을 보러 가서 샅샅이 찾았으나 재고는 적어서인지 동이 나고 없었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실망해 돌아왔다. 이때까지는 쌈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못했다. 내가 했던 한국에서의 삶이 딱 그랬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간단히 살 수 있었다. 가격도 싸고, 구하기도 쉽고. 만드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었고 나는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것들이 가격이 비싸다. 구하기도 어렵다. 생각이 완전히 바뀌는 일이었다. 그런 것들이 사는 것들이 아니라 '만들 수도 있다'는 것. 머리에 전구 하나가 켜지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살 생각만 하고 만들어 볼 생각은 못했을까. 그래서 '쌈무'만들기에도 도전해 봤다. 그리 쉬운 음식이 어찌 실패할 수 있냐고 물으면 여기서 파는 '강초' 탓으로 돌리고 싶지만 어쨌든 실패했고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아 이렇게 흘러가면 안 되는데..) 무튼, 한국 식료품이 구하기 어렵다는 한계성으로 인해 나는 그것들이 꼭 사야만 하는 것들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정말 발견이다. 어째서 예전엔 그런 건 내 옵션에도 없었는지.) 그리고 언젠가 외할머니한테 메주 만드는 법, 고추장 만드는 법, 된장 만드는 법도 배워야겠다고 메모를 남겼다. (고추장이 떨어졌냐고 물으신다면 눈치가 빠르신 분이다.) 


 글을 쓰다 보니 나의 '노르웨이 탐방기'는 어쩌면 한국에 바치는 나의 향수병으로 점철된 '러브레터'가 아닌가 싶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서 잘할게 같은 느낌의. 그리고 글을 마치려는 지금은 내가 노르웨이에서의 삶을 긴 '한 달 살기 여행'같이 받아들이고 있던 건 아니었나 생각한다. 여기에서 '내 삶'이 펼쳐진 것이 아니라 나는 '긴 여행 중'이었다고. 뭐 '삶이든 여행이든', 그게 '어디든' 그게 그리 중요할 테냐, 인생 자체가 하나의 여정일 텐데. 내 삶이 어제보다 더 낫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가져가고 싶은 라이프 스타일이 있다면 내 삶에 적용해 내 것으로 만들면 될 것이다. 그게 어디에서든 나를 더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있으면 내 삶으로 끌어안고, 뺄 것이 있으면 빼면 될 것이다. 그게 한국이든, 노르웨이든, 저 멀리 마다가스카르의 섬이든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을 내 삶으로 들여올 것이냐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하루를 돌아보고, 이 사람의 글을 읽고, 저 사람의 삶을 엿본다. 이방인의 눈으로 탐방하며 내 삶을 어제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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