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바바박.
앞 발로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라는 밤이의 신호다. 방문을 빼꼼 여니 밤이가 뒷 발 사이에 앞 발을 가지런히 두고 앉아있었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나는 걸보니 아빠는 샤워 중인 모양이었다. 내가 거실 소파에 앉자, 이번엔 욕실 문 앞에 가더니 또다시 앞 발로 문을 두드렸다. 파바바바박.
몇 분 뒤 아빠가 나와서 소파에 앉자, 밤이는 그제야 고롱고롱 낮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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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입양하기 전, 어디선가 그런 글을 보았다.
‘토끼는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
혼자 살면서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직업이라 반려동물을 들이는 것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토끼는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니! 덤으로 야행성이라 낮에 출근하면 잠을 잔다고 하니, 괜찮을 것 같았다.
토끼를 입양하고 나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낮에는 대부분을 잤고 멀찌감치 떨어져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다. 정말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난 밤이가 잘 지내는 줄 알았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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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니 집에는 사람 둘, 토끼 하나가 되었고, 원룸에서 거실과 방이 두 개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밤이는 대부분 거실에서 생활했다.
우리가 정말 바쁜 시기가 있었다. 난 작은 방에서 일을 했고 남편은 침실에서 일을 했다. 그런데 거실에서 잘 놀던 밤이가 자꾸만 각 방을 돌아다녔다. 방 문이 닫혀있으면 쪼끄만 발로 문을 벅벅 긁기까지 했다. 그러다 누군가 한 명이 거실로 나오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누워서 잠을 잤다.
그런 날들이 며칠이나 반복되었고 우리는 문득 의미를 알게되었다. 밤이가 같이 있고 싶어 한다는 것을. 한 공간에, 서로가 보이는 곳에, 있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동안 원룸에서 혼자 지냈을 밤이를 생각하니 충격이었다. 내가 외롭고 싶지 않아서 나의 반려동물을 외롭게 했다니, 죄책감에 마음이 구렁텅이로 떨어졌다.
토끼는 한 마리 더 입양하는 것은 어땠을까. 처음부터 두 마리를 입양했다면 서로 의지하면서 잘 지냈겠지만 성토가 된 후 다른 토끼와 합사 하는 것은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밤이 같이 영역에 더욱 예민한 토끼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요즘 밤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셋이 함께 거실에서 쉴 때다. 앉거나 혹은 누워있는 편안한 자세로 있으면 밤이도 마음이 노곤해지는지 푹 쉬고는 한다.
남편과 나는 밤이때문에 방에서 일을 할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문을 조금씩 열어두어야 하지만, 덕분에 외롭지 않다. 함께하고 싶어 하는귀여운 솜뭉치가 있어서.
작은 집에 토끼랑 함께 삽니다.
1남편 1아내 1토끼가 사는 이야기. (정말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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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밤이의 작지만 큰 세계, 집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지내는 이야기예요. 장난꾸러기 토끼이지만 보송한 얼굴로 두 발을 곱게 모으고 앉아있으면 마음은 어느새 고롱고롱 해지곤 해요.
토끼와 살면서 라이프 스타일이 변했고, 소소한 습관들도 변했어요. 맥시멀 리스트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었고, 청소라고는 한 달에 한 번쯤 하던 사람이 매일 아침마다 대청소하는 부지런한 인간이 되었죠.
토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능청스러운 밤이에게 우리는 7년째 길들여지고 있어요.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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