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C코스를 뽑았다.
1편에서 이어집니다.
도로 주행 강습을 시작할 때는 어느새 계절이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왔다. A, B, C, D 네 코스나 숙지해야 하고, 시험 당일이 되어서야 내가 시험 볼 코스를 알게 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내 마음속엔 ‘불가능’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차라리 중간에 떨어졌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번잡한 도시 한복판 S운전면허학원의 도로 주행시험은 어렵기로 악명이 높았다. 도로에 차가 가장 없는 시간에 연습하기 위해 새벽 여섯시에 시작하는 첫 타임을 모조리 예약했다. 집에서는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야 했다.
도로 주행 선생님은 ‘교사’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점잖은 중년 남자였다. 주행 강습 내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했지만 길석보다는 발음이 훨씬 좋아 알아듣기 편했다.
한겨울 새벽 도로는 그야말로 칠흑같이 어두웠다. 눈도 자주 왔기에 도로 위의 차선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 눈이 녹아서 도로가 반짝거리기도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그냥 가셔야 합니다.”는 선생님 목소리와 함께 내 감각을 믿으면서 운전하는 일도 많았다. 그렇게 코스를 한번 돌고 오면 어느덧 해가 밝아오고 도로 위의 차들이 많이 늘어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란색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학원을 빠져나오는 모습이 제법 자연스러웠다.
“살면서 남들에게 해코지 한번 안 하고 살았을 거 같은 사람으로 보이네요.”
“이제 운전을 배웠으므로 그렇게 살기 글렀습니다.”
몇 주가 지나니 강습 중 선생님하고 농담도 하게 되었다.
처음엔 한 타임에 A코스만 완주해도 시간이 빠듯하다가 강습 횟수가 쌓일수록 A, B, C, D 코스를 한 번에 다 완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시험에 등록했다. 그동안 나는 노트필기를 해가며 차선을 바꾸는 시점과 도로마다 봐야하는 신호등 신호를 치밀하게 체크했다. 지금 면허를 따지 못한다면 다시 이곳까지 오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반드시 도로 주행을 마치리라. 시험 전날 밤, 나는 비장했다. 실격하여 중간에 도로에서 내리는 상상은 하기 싫었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시험을 치러왔고, 모두 합격했다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시험 당일, 시험은 수험생 두 명이 짝을 이루고 시험 감독관을 포함하여 셋이 한 차에 타면서 진행되었다. 내 짝꿍은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신림유도’라고 인쇄된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는데 왠지 그 사실만으로도 그가 운전을 잘할 거 같았다. 그가 먼저 시험을 보고 나는 참관해야 했기에 뒷좌석에 탔다. 우리가 타는 노란 차에 적힌 숫자는 ‘77’이었다.
시험시간은 주말 오후였기에 혼잡한 도로에서 시험을 보게 되었다. 신림동 유도남이 B코스를 뽑았다. 시험난이도가 왠지 A부터 순서대로 더 어렵다고 생각했기에 내심 그가 부러웠다. 하지만 그의 시험시간은 매우 짧았다. 너무 빨리 잘못된 차로로 향하고 있을 때 나는 속으로 외쳤다
'거기 아니야! 거기 아니야!’
그는 시험 감독관이 몇 번의 언질 주었으나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차선을 바꾸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가지 못하고 도로 위에서 실격했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에서 감독관과 신림동 유도남이 자리를 바꿔 타고 우리는 시험장으로 돌아왔다. 처음부터 조용했던 차 안이었지만 유독 정적이 무겁게 느껴졌다.
내가 아는 남자들은 대부분 이미 십몇 년 전부터 차를 가지고 있었고 마치 그들에겐 태어날 때부터 운전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신림동 유도남을 보면서 운전하는 중년 남자들의 시작점을 엿보고 있는 듯했다. 누구나 처음은 서투르고 남자라고 당연히 나보다 운전을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제 내 차례다.
나는 C코스를 뽑았다. 이 코스에는 가속하면서 고가도로를 타는 코스가 있다. 익숙하게 학원을 나와 고가도로 방향으로 달린다. 겨울 해가 그날 따라 눈 부시기에 자연스럽게 머리 위 가리개를 내려 햇빛을 가린다. 이제 차선을 바꾸어 속도를 높여 고가도로로 올라가면 된다. 액셀을 지그시 밟는 감각을 살린다. 선생님은 내가 액셀을 서투르게 밟을 때 자주 잔소리를 하곤 했다.
“지금 실제 시험이었으면 실격했습니다.”
“저런 실격, 참 안되셨네요.”
“이러면 바로 실격이다.”
지금 나는 내 감각을 믿지 못하는 망설임만 제어하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어느덧 가속 구간 테스트가 끝났음을 알리는 기계음이 들린다. 그렇게 난 고가도로 한복판에서 달리고 있다. 옆에 트럭도 지나가고 있다. 고가도로에서 내려오는 내리막길엔 눈 녹은 물들이 도로 위에서 반짝거린다. 이젠 익숙한 겨울 풍경이다. 주말에만 학원을 올 수 있었기에 면허시험장에서 두 계절을 지냈다. 그사이 온 가족의 코로나 확진, 한겨울의 월드컵이 운전면허시험보다 옅은 농도로 날 지나쳐 갔다.
고가에서 내려와 목적지를 향해간다. 동영상을 무한 반복하며 차선을 바꾸는 위치를 외웠었는데 그곳에 생각지도 못한 버스가 정차 중이다. 머리로 공부한 것으로는 더 이상 의존할 수 없다. 그저 운전해야 할 뿐이다. 차가 막힌다는 것, 횡단보도에 사람이 없을 때 우회전하려 했는데 직진하는 차들이 너무 많아 신호를 한 번 더 기다리는 순간을 모두 처음 겪는다. 어느덧 C코스 막바지, 좌회전을 연속해서 세 번 해야 하는 구간까지 왔다. 이것만 지나면 곧 학원이다. 좌측 등을 켰다가 끄고 다시 켜야 하는데 나는 방향등을 끈다는 게 실수로 상향등을 켠다. 연습 때도 자주 했던 실수다. 다급히 상향등을 끄고 다시 좌측 등을 켠다. 등을 켜는 동작이 매끄럽지가 않다. 앗, 또 방향 등을 끈다는 걸 상향등을... 손이 바쁘고 현란해진다. 나는 지금 감점을 마구마구 당하는 중일까? 현재 내 점수는 얼마일까?
학원 입구가 보인다. 학원 들어가는 오르막길에서 실수가 잦았기에 신경을 곤두세워 올라간다. 이제 차를 세운다. 만일 합격했다면, 바로 지금 기계음으로 “합격입니다.” 하는 소리가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었나? 아니면 점수 미달 불합격인 건가? 의문을 가진 채 시동을 끈다.
시험 감독관이 먼저 신림동 유도남에게 시험 등록을 다시 하려면 저 컨테이너 건물로 들어가라고 말한다. 그는 내린다. 잠깐의 적막 동안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다.
‘아, 제발! 제발!’
감독관은 내게 흰 종이를 건네준다. 그리고 말한다.
“면허증은 한 달 안에 발급받아야 합니다.”
S역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곧 출발하려 하기에 나는 달려간다. 셔틀버스를 운전하는 학원 선생님이 내 표정을 보며 활짝 웃으며 외친다. 우리는 아는 사이가 아니지만 지금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합격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