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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 Sep 16. 2023

머리숱

손과 발이 유독 차가운 나는 어릴 때부터 잠잘 때 동생손을 꼭 잡고, 가끔은 나의 발로 동생의 손을 포개어서 잠들곤 했다.


그런데,, 비상상황이 생기는 날이 있다.

우리 둘은 아주 자주 싸웠다.

나는 동생이 너무 미웠다. 외동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유난스럽게 동생한테 짜증 내고 괴롭혔던 거 같다.

그 당시에는 속마음 깊이도 싫어했던 거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질투심이었던 거 같기도..

하지만 어린 그 시절은 너무너무 동생이 싫었다.


친가 외가에서 모두 사랑을 독차지하던 나에게, 새롭게 등장한 동생은

나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외래종 같은 느낌이었나 보다.

네가 살아남거나 내가 살아남거나 둘이 함께는 공존할 수 없다는 듯이 싸웠다.


나의 기억조차 없는 어린 시절에도 동생을 이뻐하는 척하면서 엄마가 안 볼 때면 꼬집고 울렸던걸 보면

그냥 나는 동생의 탄생이 몹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생 첫 번째 시련이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의 말로는 동생이 태어나고 얼마 안 되어서 간에 열이 차서 한약을 먹었다고도 했다.. 아마 화병이 아니었나 싶다.)

나중에 커서 들으니 첫째에게 둘째의 탄생은 남편이 상간년을 집에 데리고 오는 격이라고 하던데,,, 그럴만하다.

그래서 나는 자식을 낳으면 절대 둘째는 부모가 아닌 제삼자가 데리고 와야 하다는 육아지식을 어릴 적부터 학습했었다.


다시 돌아와서...

내 비상상황은 동생과 싸우고 잠이 들어야 하는 그때였다.

중학생이 되기 이전에는 동생과 나는 한방을 썼는데, 나는 잠에 들기 위해서는 쪽쪽이 무는 어린아이처럼 동생의 손이 필요했다.

동생이 잘못한 경우에는 당당하게 손 달라고 요구하면,, 그게 마치 용서의 제스처처럼 느껴져서 스무스하게 동생의 손을 얻을 수 있었지만

내가 잘못한 경우(사실 내가 잘못해도 동생이 잘못한 거였다..ㅋㅋ, 내가 잘못한 건 애초에 없었다. 내가 그냥 그랬다.. )는 구걸을 할 자존심 굳힘은

절대 할 수 없고, 동생이 잠이 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동생도 화가 잔뜩 난 날에는 손을 꼭꼭 숨겨서 내가 잠못자게 복수라도 하는 것처럼 자곤 했다.

하지만 어릴 때의 세 살 차이는 힘으로는 이길 수 없기에 잠든 동생의 손을 끌어당겨 편안하게 잠들었다.

발이 너무 시려서 차가운 발을 갖다 대면 동생이 잠에서 깰까 봐 내손으로 예열을 한 뒤 따듯한 동생손에 올리고 잠을 잤다.

 

그런데 동생이 아파졌다.

고3 갑자기 심한 감기에 걸린 거처럼 고열에 시달리면서, 원인을 찾지 못하고 병원 신세를 졌다.

나는 내가 그동안 동생에게 줬다 스트레스가 아프게 만든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아직도 들곤 한다.

머리숱이 너무 많아서 고무줄이 끊어지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제 탈모로 머리가 비어있고 가발을 사야 한다.

어릴 때 인형보다 칼을 좋아하고, 마음대로 안되면 땅에 누워버렸던 동생이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하루종일 누워있곤 한다.


하지만 난 이제 내 동생이 너무 좋다.

나는 잘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그것도 영어선생님이 되고,

필라테스와 테니스를 아주 즐겁게 즐기고,

면허 따고 10년 동안 운전 못하는 나와 달리 면허 따고 바로 운전을 하는.

이제는 맛있는 것도 사주는,

그리고 내가 제일 못하고 마음의 숙제의 아빠와의 대화를 나보다 잘하고,

인생에서 엄마 아빠의 딸로 똑같은 생각을 서로 나누고 그거에 대해서 나쁘다 좋다가 아닌 서로에게 진정한 위로를 할 수 있는

내가 외동이 아니고 사랑스러운 동생이 있다는 걸 감사할 수 있게 만든 내 동생이 좋다.


그리고 동생이 아프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해줄 것이고

언제 간 소소한 일상들이 컨디션이 나빠서 미루지 않는 동생이 되길 바란다.

나는 아직 머리숱이 많으니,, 너에게 가발이 필요하다면 내가 머릿결 관리를 미리 해볼게!

걱정하지 마 혼자는 절대 아닐 거야, 너한테는 지랄 맞지만 너를 사랑하는 언니가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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