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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숲 Feb 03.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발

마녀의 저주에 걸려서 새로 변한 오빠들을 소녀는 쐐기풀을 짜서 만든 스웨터로 구해냅니다. 막내오빠만이 완성되지 못한 옷을 입고 밤이 되면 다시 새가 된다는 결말이 안타까운 동화였습니다. 어릴 때 읽었던 백조왕자는 아련한 여운을 남긴 채 잊고 있었습니다. 백조는 북유럽 같은 추운 나라에나 살고 있는 새인줄 알았습니다.    


흰 눈같이 하얗고 기다란 목을 부드럽게 숙인 커다란 그 백조가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것은 몇 년 전에 알았습니다. 백조라고 알려진 동화속의 새를 부르는 우리말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백조를 부르는 우리말은 고니입니다. 고니는 기다란 목을 숙이거나 곧추 세울 때면 고니라는 이름이 고개를 들었다 움츠리는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딱 맞는 작명을 한 것 같습니다.     


고니가 추운 나라에만 산다고 짐작했던 것은 동화의 영향도 있지만 우리나라에 사계절 내내 사는 텃새가 아니라 늦가을에서 2월말까지만 머무르는 철새이기 때문 일 것입니다. 겨울이면 볼 수 있었지만 나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동화 속에서, 영상 속에서 보았던 고니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갑천에서 고니를 보고나서부터입니다. 새에 관심을 가지고 나서 지인들로부터 갑천에서 고니를 보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텀블러만한 렌즈가 달린 카메라에 망원경을 챙겨 메고 갑천으로 갑니다. 강가에 가려면 아직 멀었는데 가방의 무게에 걸음만 허둥거립니다.  망원경은 놓고 올걸 그랬습니다.
 
 갑천으로 들어가는 산책길에 다다라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하얀 배가 강물에 둥실둥실 떠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여러 척의 오리배가 갈대 무성한 강가에 정박한 것 같습니다. 인터넷으로 보아왔던 그림 속의 고니처럼 긴 목을 곧추 세운 단아한 자태에 홀려서 나의 어깨는 한없이 옹송그려졌습니다. 그날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참에 눈까지 내려서 갑천을 둘러싼 대기는 뿌옇게 흐렸습니다. 눈을 맞는 고니들은 열다섯 마리입니다. 고니는 가족단위로 움직인다고 하니 아마도 두 가족 쯤 되는 것 같습니다. 강풍에 흩날리는 눈발은 고니의 어깨 죽지와 날개깃에 차갑고 축축하게 쌓입니다. 눈을 맞는 고니들은 눈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는 듯 커다란 날개를 활짝 들어 펄럭거리며 날갯짓을 합니다. 나는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광경을 홀린 듯 바라봅니다.     

고니가족. 잿빛이 남아있는 고니는 청소년인것 같습니다


고니는 갈대가 무성한 강가에서 미끄러져 떠다니며 고개를 물속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풀을 뜯어먹습니다. 이렇게 커다란 새가 풀만 먹는 초식동물이라니 믿기지 않습니다. 겨울에 다 말라버려 바스라지는 풀줄기의 뿌리를 먹으려고 고니들은 물속에 긴 목을 넣습니다. 물속에 넣었던 부리 끝에 풀뿌리가 물려 있습니다. 뭍에 올라온 고니들의 먹이활동은 갈대밭에서도 끊이지 않습니다. 커다란 몸에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풀줄기를 얻는다 해도 배고픔은 주기적으로 리셋 됩니다. 탐색은 긴 목의 길이만큼 되풀이되어 얕은 강물에 끊임없이 담금질됩니다.

    

눈보라에 패딩후드를 쓰고 지나가던 노부부가 걸음을 멈춥니다.

“저 새 좀 봐. 와 예쁘다.”

하고 할머니가 말합니다. 할아버지가

“정말 멋지네. 저 새는 고니야.”

라고 알려줍니다.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은 큰고니가 강물에 떠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발걸음을 멈춥니다.  사람들이 쳐다보고 사진 찍어도 고니는 오늘 이 순간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성실하게 합니다. 고니들은 혹독한 시베리아의 추위를 피해서 멀고 위험한 비행을 하여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우리나라도 춥지만 영하 30도의 북쪽 추위에 비하면 우리의 겨울은 살 만한 곳인가 봅니다. 아무리 살 만한 곳이라도 까마득하게 먼 거리를 비행한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동하지 않고 굶어죽느냐, 위험을 무릅쓰고 이동하느냐는 그들이 선택한 진화한 결과입니다. 그들이 머무는 갑천은 고니들의 묵직한 삶의 얹혀 천천히 흐르는 것 같습니다.   


3월이 오기 전에 고니들은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 번식을 하고 그곳에서의 삶을 이어갈 것입니다. 갑천길을 걷는 사람들도 몰아치는 눈보라에 목을 움츠리고 바삐 걸음을 재촉합니다. 내일은 나아질 거야 하고 기대를 걸어보지만 당장 알 수 없는 내일에 사람들은 지쳐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려났던 희망이라는 땅에 돌아가기 위해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삶이란 잃어버리거나 얻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고 또 사랑하는 것임을 확신하는 과정이니까요. 고니들은 떠나야 살 수 있는 마법에 걸려있고 우리가 걸린 오늘이라는 마법은 내일을 살아갈 용기인 것 만 같습니다. 메마르고 춥다 하여도 그들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발’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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