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벅 쿠폰이 있는데 우리 동네엔 DT점이 없어요.”
“내가 판암점 들려서 사올게요.”
동료 선생님에게 받은 커피쿠폰으로 커피를 사려고 스벅 판암점으로 향했다. 아침마다 텀블러에 커피를 내려가지만 이날은 공짜커피를 마시려고 챙기지 않았다. DT점으로 들어가는 길은 멀찍이 부터 차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평소엔 이렇게 차들이 많지 않았는데 명절 연휴 다음 날이라서 그러려니 하고 줄 끝으로 천천히 가서 섰다. 다행이 일찍 출발해서 여유가 있으니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 앞으로 5대의 차가 보이고 주문 마이크 모퉁이를 돌면 2대가 있을 것이다. ‘1대는 음료를 받아 나갈 것이고, 내 차례가 되기까지 넉넉히 10분이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조금 더 붙였다. DT점 갓길에는 이미 드라이브스루를 포기하고 정차한 차들이 있었다. 내 앞의 차량이 고맙게도 갓길로 차를 빼 정차하고 운전자가 차에서 내렸다. ‘나도 직접 내려서 살까. 아니야. 길이 너무 좁아.’ 나는 앞차가 빠져 널찍해진 줄을 재빨리 메꿨다.
새벽부터 흐렸던 하늘이 어두컴컴해졌는가 싶었는데 빗방울이 유리창에 떨어진다. 가느다란 빗방울은 점점 시야를 가릴 만큼 면적을 넓혀 와이퍼를 켜야 했다. 이런 날은 카페 2층에 앉아 따스한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비 내리는 창밖을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는 것도 좋겠다. 나는 철제 지붕을 텅! 텅! 텅! 울리며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지붕에 떨어지는 청량한 빗소리에 출근길인 것도 잊고 기분이 설렜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주문마이크를 지나 너무 앞으로 전진한 탓에 나는 고개를 뒤로 한껏 내밀고 크게 소리쳐야 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톨 2잔이랑 카스테라 케잌 하나요.”
“네, 준비하겠습니다. 천천히 진입하십시오.”
친절하게 안내하는 멘트를 들으면서 이른 아침 일과부터 손님들이 많아서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방문차량을 내보내야 직원들도 마음이 편할 것이다. 아침 출근시간은 누구나 기다리고 싶지 않을 테니까. 음료 나오는 창 바깥으로 상체를 한껏 내민 카페 직원의 초록색 앞치마가 보인다. 마찬가지로 차창 밖으로 상체를 내민 운전자가 그의 손에 들린 커피를 받는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카페직원이 몸을 한껏 내밀지 않도록 창 쪽으로 바짝 붙여 다가갔다. 창 안쪽으로 계산대와 싱크대가 보이고 좁은 주방을 네 명의 카페직원들이 주문받고 음료 만들고 서빙하고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저 멀리 창가 테이블에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도 좋을 부러운 손님도 앉아있다.
직원들의 초록색 앞치마는 아침 업무에 푹 젖어 더 짙은 녹색이 되어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우렁각시 같아 보인다. 출근길에 받아갈 커피를 만들기 위해 요술 상자 속에서 쉬지 않고 움직이는 집요정들을 보고 있자니 꼭 내가 방금 전에 벗어난 우리 집 부엌 같다. 추석 명절에 모인 우리 아이들과 어머니를 위해 나는 식구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양껏 준비했다. 집안 구석구석 청소하고 닦고 장보고 추석 전부터 바빴다. 우리 아이들과 다 같이 모여 맛있는 거 먹고 이야기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니 연휴가 순식간에 사라진 느낌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일터로 향하면서 다른 이의 노동으로 받아든 커피에서 나를 위로하는 듯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네,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커피 컵에는 손을 잡은 작은 사람들이 빙글 빙글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이 세계의 저 편에서 열심히 오늘도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