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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숲 Nov 07. 2021

맛있는 거 먹고 놀러가자

뭐 먹을건데? 한우래, 근데 줄이 엄청 길어

  

 

구름이 뭉게뭉게 그림같이 피어오르고, 따스한 햇볕에 단풍이 노릇노릇해지는 계절의 주말마다 나는 경주에 간다. 놀러간다면 팔자 좋아 보이겠지만 자연해설 교육이 2달여 동안 있어서 가는 일정이다. 전부터 받아보고 싶은 교육이었는데 공고가 뜬 것을 보고 늦을세라 얼른 신청했다. 자격이 까다롭고 경쟁이 치열하대서 합격할 수 있을 지 불투명한 일이어서 남편에겐 말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합격 문자를 받았다.    

남편과 딸에게 경주 교육 일정을 말했다. 두 사람은 자기들도 경주에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놀러가는 게 아니야, 하루 종일 강의실에 있어야해.”

“괜찮아, 엄마는 공부하고 있어, 아빠랑 둘이서 놀면 되.”

“그래, 경주까지 내가 운전해줄게. 당신은 편하게 공부해.”
 경주까지 3시간여를 운전해주겠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나 좋은 공부한다고 주말에 집을 비우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참이라 그럼 좋겠다, 그래 같이 가자했다.

    

교육장인 경주캠퍼스에 도착해 나를 내려주고 둘은 대릉원으로 갔다. 수업 중간에 카톡으로 동산 같은 무덤을 배경으로 얼굴이 빨개진 아빠와 딸의 사진이 올라왔다. 넓은 곳을 걷느라 지쳤다면서도 두 사람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인다. 점심시간에 남편이 학교에 왔다. 딸은 맛 집에 줄서서 대기하고 있고 남편이 나를 데리러 왔다. 오가는 시간에 대기 순번이 맞춰져서 시간에 맞게 식사를 할 수 있을 거란 계산이다. 
 “뭐 먹는데?”

“한우래. 근데 줄이 엄청 길어.”
 “엄청난 맛 집 인가보네, 수업 시간에 늦을지 모르잖아.”

“야, 날씨가 이렇게 죽이는데, 맛있는 거 먹고 놀러가자.”
 “으이구, 내 이럴 줄 알았다.”    

맛 집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다는 그곳은 골목부터 사람들이 북적였다. 골목마다 주차한 차들과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10월이어도 한 낮의 햇볕은 무척 따가웠고 우리는 배롱나무가 큰 가지를 드리운 그늘을 찾아 우리 순번이 오기를 기다렸다. 내가 도착해서도 40여분이나 기다려 우린 테이블을 안내받았다. 나는 딸이 정해준 메뉴인 한우물회를 남편은 육회비빔밥을 골랐다. 

내가 “메밀묵무침도 먹어보자.”

딸이 “배부르지 않을까?”

남편이 “괜찮아, 내가 다 먹어줄 게.”

 

  

생선 물회는 먹어봤어도 한우 물회는 우리 모두 처음이었다. 큼직한 놋그릇에 담긴 살얼음 한 가운데 선홍빛 소고기가 천마총처럼 동그마니 떠 있는 모습은 매우 낯설었다. 소고기 동산을 배채와 오이채가 빙 둘러 에워싸고 있고 깨소금이 눈처럼 뿌려져있다. 이 생소한 음식을 한번 먹어보려고 우선 육회 한 점을 집어 입안에 넣어본다. 달달한 고기를 씹으니 진한 육향이 느껴진다. 한 번 더 씹어보니 입안에서 목 저편으로 꼴깍 넘어간다. 배채는 시원하고 오이채는 아삭하다. 빨간 육수는 보기보다 맵지 않고 새콤달콤하다. 이젠 생선 물회는 잊을 것 같다. 한우 물회를 알아버렸으니까.  

“엄마, 어때? 맛있어?”

“흠냐, 엄청 맛있다.”


 남편은 육회비빔밥을 비벼서 크게 한 숟갈 씩 딸과 나에게 덜어주고 내가 먹는 걸 지켜보다가 침을 삼키면서 맛있냐고 물어본다.
 “음, 맛있어. 근데 내께 더 맛있어. 먹어볼래?”
 남편은 내가 듬뿍 떠서 덜어준 육회접시에 입을 대고 호로록 짭짭 소리를 내며 먹는다.
 “아빠 내꺼도 한 숟갈 줄까?.”
 낯선 것을 잘 먹지 않는 남편은 물회는 더 먹지 않겠다고 한다. 밥이 모자란다고 내 밥을 덜어가서 다시 쓱쓱 비벼서 크게 한 숟갈 푹 떠서 또 짭짭 소리를 내며 먹는다. 나는 물회에 딸려 나온 소면을 넣어 후룩후룩 먹었다. 새콤달콤한 육수에서 아까는 눈치 채지 못했던 고소한 참기름의 풍미가 입안에 퍼진다. 남편이 덜어간 흰 쌀밥에서 아직도 뽀얀 김이 설설 올라온다. 남편의 당뇨식에 맟추어 현미밥을 먹다가 오랜 만에 본 쌀밥에 또 침이 고인다. 국수를 다 건져먹고 빨간 얼음 육수에 밥을 말았다. 그릇을 기울여 가라앉은 마지막 밥알까지 다 떠먹을 만큼 맛있었다.  

   

대기시간이 길어서 지친 남편과 내가 
 “이렇게 오래 기다리는데 맛이 없을 리가 있겠냐?”
 “맞아 배고프니까 무조건 맛있을 거야.”
 라고 했는데 오래 기다려서 맛있는 게 아니라 먹어보니까 진짜 맛있었다. 남편은 입맛에 보수적인 사람이라서 안 먹어 본 것은 잘 먹지 않는데 오늘은 맛있었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우린 동궁으로 불국사로 놀러다녔다. 어차피 수업에 늦어서 중간에 들어가기 민망한 김에 못이기는 척하고 불국사 일주문으로 들어갔다. 왕방울만한 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사천왕들의 무시무시한 호위를 받으며 화려한 불국토로 우린 들어갔다.  일상에서 벗어나 먼 곳으로 공부하러 왔다가 또다시 수업을 제치고 일탈을 감행했다. 다음 주엔 어림없다. 두 사람 따라오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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