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가는 날이다. 자연해설교육이 있는 경주까지는 자동차로 3시간 정도 걸린다. 토요일 수업이 있는 날은 전날 밤에 일찍 잠자리에 든다. 혹시 먼 거리에 졸음운전을 할까봐 걱정이 되어서이다. 오후 5시 수업이 끝나고 밤 운전을 해서 집으로 오는 동안 조금이라도 덜 피곤하게 충분히 자두려고 한다.
하지만 내일은 1박2일 수업이라서 묘하게 기대가 된다. 하루에 장거리를 오고 가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과 ‘오래된 수도 서라벌 한두 곳은 가 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갈 때 마다 학교에서 교육 받고 끝나자마자 집으로 오게 되어서 토함산 석굴암, 남산 마애불 같은 곳에 가보고 싶어서 아쉬웠었다. 오후수업이니 오전에 가면 토함산, 다음날은 남산 이렇게 가면 좋을 것이다. 경주로 가기 전날 밤 조금 긴장이 된다. 수업 교재를 넣어 책가방 싸고, 여행가방 따로 챙기고 여행지는 인터넷 검색을 해둔다. 내일 날씨 앱에 일교차가 매우 크다고 하니 두꺼운 점퍼도 하나 더 넣느라 가방이 불룩해졌다.
새벽 6시의 고속도로는 캄캄하다. 황간을 지날 때 해가 뜨려고 하늘이 희부윰해지기 시작하다가 구미 쯤에 이르면 사방은 완전히 환해진다. 찬 새벽길엔 가끔 화물차들만 지나간다. 온 사방 적막한 곳에 나만 홀로 이곳을 달리고 있다. 외롭고 말간 아침 해가 산 위로 한 30센티는 떠오르고 있고 잔나비의 <꿈과 책과 힘과 벽>이 흐른다.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 하루하루가 참 무거운 짐이야, 더는 못갈 거야” 음울한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면서 왜인지 지금 이 서늘한 순간이 좋다. 건천 IC로 나와 경주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흰별 제빵소가 있다. 방금 구운 보드랍고 따뜻한 커피번과 커피를 사면 작고 하얀 흰별 도넛을 서비스로 준다. 동그란 흰 별도 트레이에 담아 손님하나 없는 창가에서 아침을 먹는다. 간결하고 소박하지만 맛있는 아침이다. 텀블러에 오늘하루 나를 지탱해줄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 나오면서 한잔 더 마시면 속 쓰릴 텐데 하는 염려는 잊는다.
석굴암으로 가는 토함산 아홉 구비길이 아슬아슬하다. 왼쪽으로는 거친 절벽이 우뚝하고 오른쪽으로는 동해가 머금은 안개에 가린 수평선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아찔한 굽이 길을 한참 올라와 일주문에서 석굴암 가는 숲길을 걷는다. 이른 시간 사람들도 많지 않은 길을 혼자 뚜벅뚜벅 올라간다. 숲 안쪽에서 들리는 호랑지빠귀 노래 소리가 경쾌하다. 어떻게 저런 발랄한 소리를 낼까. 야생의 새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입이 벙싯 벌어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동그란 산등으로부터 절의 머리 지붕이 겨우 빠져나오고 반쯤은 산 속에 파묻힌 석굴암에 왔다. 수학여행 때 줄서서 들어가 줄에 떠밀려, 들어간 줄도 모르고 나왔었던 곳이다.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였던가 석굴암 부처님이 표지모델이었다. 석굴 내부로 들어서자 장엄하고 웅장한 부처님이 계셨다. 문살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은 따스했고 부처님의 둥근 어깨는 부드러웠다. 부처님의 얼굴은 뭐랄까 이 세상 것이 아닌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운 풍진 세상살이는 초월한 구도자의 표정이었다. 한 점 옷자락은 어깨에서 흘러내려 가부좌로 앉은 튼튼한 종아리를 덮고 찰랑거렸다. 부처님과 나는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았다.
석굴암 세계문화유산 홈페이지 사진
순간 무엇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여 목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부처님은 나를 내려다보면서
“고생한다. 힘들지, 너의 텅 빈 방을 채우려 많이도 걸어왔구나.”
초승달 같은 눈매는 내 어깨를 쓰다듬듯이 말했다.
“네, 그래요. 저는 아직도 걸어야 할 길이 있어요. 해마다 고군분투하며 걸어요. “삶은 길단다. 한 번에 다 채우지 않아도 돼. 가질 수 없는 것도 있지.”
“알겠어요. 그럴게요. 조금 더 겸손해질게요.”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처님, 감사해요. 안녕히 계세요.”
오랜 침묵이 이어지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숙이고 손바닥을 마주 모아 허리를 깊이 굽혀 본존불게 인사드렸다.
토함산은 올라갈 때 보다 내려올 때가 더 아슬아슬했지만 천천히 내려오는 길은 평온했다. 나는 하루 더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잠시 후 학교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