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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차희 Feb 28. 2023

언니는 계속되어야 한다

12:16pm

언니라고 부른 적 없는 사람에게 ‘언니’라고 나도 모르게 불러버린 꿈을 꿨다. 계속해서 언니라고 부르고 싶었던 마음을 들켜버린 듯 했다. 그 사람은 좋아했고 어색해하지 않았다.


수평어의 시도가 잦아지고 연구가 많아지면서 우리사회에 필요한 언어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더이상 사용하지 않게 될 잃어버릴 언어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건 바로 ‘언니’라는 단어다. 언니들이나 K-장녀들이 들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실제 친언니를 두고 있는 막내인 나는 언니라고 부르는 일이 익숙했고 이어지는 말이 존댓말이든 반말이든 누군가를 언니라고 부를 때마다 느껴지는 든든함이 좋았다. 누구나 언니라 부를 수도, 혹은 불릴 수도 있기에 언니라는 든든함이 끊기지 않고 이어질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누군가에겐 언니기에 언니로서 느끼는 일종의 책임감과 보호하고 싶고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본능적으로 생기지만 나쁘지 않았다. 언제나 그건 좋은 내리사랑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끈끈함을 이어가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언니들을 부르곤 한다.


언니라는 단어는 왜 다른 나이많은 성별을 부르는 단어들보다 따뜻함이 묻어있을까. 내 주변의 언니들과 스쳐지나간 수많은 언니들을 떠올려보면 그들은 언제나 나를 안아줬고 내 이야기를 들어줬고 밥을 사줬다. 더 좋은 쪽을 나눠줬고 그들에게 보호받았다. 남성만이 여성을 보호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를 보호해주었다. 최근에 만난 모모 역시 내겐 그런 따뜻한 언니인데 모모가 또 밥을 사줬다. 나는 그렇게 하지 말자고 말했지만 결국 모모를 이기지 못했다. 모모는 영원히 내게 밥을 사줄 것 같은 언니다. “언니는 다른 동생들에게도 주로 밥을 사는 편이죠?” “그게 자꾸 그렇게 되네.” 그렇게 된다는 말엔 하고싶지 않은데 그렇게 된다는 뉘앙스보단 마음이 그렇게 하고 싶어지게 된다는 뉘앙스로 느껴졌다.


친언니 역시 항상 내게 좋은 것을 주는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자신에게 좋은 것들을 내것까지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좋은 것을 나 혼자만 더 많이 누리려고 하는 철없는 동생인 반면 언니는 장녀라 그랬는지 항상 나눠주었다. 내것까지 생각해주었다. 기본값이 마치 1+1인 것처럼 나를 생각했다. 몇 달 전 언니가 꿈에 자주 나왔는데 나올 때마다 언니는 나를 보호해주었고 그 이야길 언니에게 했을 때 언니는 울었다. 언니는 내가 모르는 책임감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K-장녀의 서러움과 부당함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수많은 언니들이 언니나 누나라는 이유만으로 포기하고 희생했어야 한 비좁은 자리를 알게되었다. 언니들이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언니라는 존재가 이어질수는 없는 걸까?


그런가보면 내가 가장 많이 의지했던 언니인 감자가 생각난다. 감자는 나와 같이 교회를 나와 모임을 하는 멤버들 중 가장 언니였다. 감자 역시 오래 전부터 언니라는 이유로 동생들에게 항상 밥과 커피를 사줬고 먼저 나서서 동생들을 대신 해 고생하는 편이었다. 그랬던 감자는 언니로서의 부담이 때로는 잘못 발현되고 언니가 아닌 친구로서의 관계에 언니라는 점이 방해된다고 생각해 자신의 언니임을 지우려고 했다. 그런 감자 덕분인지 우리는 수평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동등했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채 서로를 도왔다. 언니라는 말에 그 누구도 짐을 지우지 않았다. 나는 감자를 계속해서 언니라고 부를 수 있었다. 언어가 우리를 지배하지 않는 순간이었다.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언어를 뛰어넘어 서로를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나를 차희라고 부를 수도 있겠으나 언니라는 따스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음으로 ‘언니’를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니는 계속되어야한다.




2022년 2월 28일 화요일


언니는 계속되어야 한다, 12:16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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