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차희 Feb 23. 2023

아름다운 풍경

10:45am

꿈 속에서 꽤 크지만 허물어져가는, 문도 없는 집에 살고 있었다. 어느 한 시골 마을이었고, 대청마루같은 게 있어서 그곳에 앉아서 멀리 바라보면 농삿일하는 풍경, 강이 흐르는 풍경 등이 보였다. 조금 높이 위치한 곳이었다. 내부는 누군가 사용한 흔적이 있는 듯해 조금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공간의 크기와 위치 덕분에 꽤나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바로 옆 초등학교에서 쉬는시간인지 다함께 밖으로 나와 왁자지껄 노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근처를 지나가며 그 풍경을 보는데, 내내 흐뭇했다. 전반적으로 아름다운 풍경 속에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아름다운 풍경’에 대해서는 매번 다른 이미지가 갱신되는데, 언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아주 길고 넓은 나무테이블에 둘러앉아 떠들썩하게 식사하는 장면이었고, 언제는 내가 울고 있을 때 누군가가 가만히 다가와 나를 포옥 안아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단 한 번도 ‘풍경’하면 으레 떠올리는 자연의 이미지는 내 아름다움에 들어있지 않았다. 희한하게도 주로 사람들이 있는 풍경이었다. 다같이 둘러앉아 카페에서 얘기하는 풍경 속에서 나라는 영혼이 잠시 빠져나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카메라로 한 컷 찍어놓고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사람들과 함께있는 시간보다 홀로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어떤 ‘생생함’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홀로 카페에 앉아 조용히 보내는 시간을 ‘아름답다’라고 느낀 적은 별로 없었다. 무언가 멈춰있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고요한 순간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 바닷가 앞에서 나란히 앉아 맥주 한 캔을 모래에 꽂아놓고 밤바다를 바라보는 순간 역시 고요하지만 생생한 아름다움이다. 다같이 백담사에 갔다가 내려오는 숲길에서 다람쥐를 본 일, 우리 집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이야기하다가 누군가는 잠이 들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린 일, 지하철에 나란히 앉아 친구와 눈싸움을 한 일이라던지, 나에게는 이런 풍경들이 아름답다. 그런데 높은 곳에 위치한 허름한 집의 대청마루에서 먼 곳을 바라보고 아이들의 소리들을 들었던 이 꿈 속의 풍경이 새롭게 내 아름다운 풍경에 추가되었다. 꿈 속이었지만 시원했고, 가벼웠다. 가벼웠던 기분까지 풍경 목록에 잘 기록 해 두어야겠다.



2023년 1월 30일 월요일


아름다운 풍경, 10:45am

작가의 이전글 불안한 이차희 컨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