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천리 길도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큰 강물도 작은 시내가 모이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를 하자면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시작과 도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처음부터 너무 잘 할 생각하지 마세요. 자기 자신을 너무 과소 평가하지 말았으면 해요. 우리 모두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니깐요. '나는 강사다'를 연재하면서 가장하고 싶었던 말이었습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3주간의 교육을 진행하면서 신기할 정도로 우연한 일들을 마주했습니다. 10월 1일부터 제가 머무는 자취방과 가까운 신촌행 셔틀 버스가 운행되는가 하면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수업을 마치고 서울로 오는 버스에서, 그리고 여의도를 지나는 중에 저녁 식사를 하자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여의도에서 일을 하고 있는 형님이었습니다. 나를 지켜보기라도 한 듯이 정확한 타이밍에 전화가 걸려와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서울과 안산을 오가며 강의를 하느라 지친 동생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장어를 사주더군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그리고 나를 거쳐간 사람들과의 인연을 단순한 지구적인 의미의 에피소드로 치부하고 싶지 않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리가 이 곳에서 저의 글을 통해 만나는 것도 단순한 우연인 걸까요?
종종 주변 사람들이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고민들을 털어 놓을 때가 있습니다. 크기와 무게는 달라도 모두 저마다의 인생 살이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겠더라고요. 사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돌아가고 물가는 날이 갈수록 오르고 서울에서의 내 집 마련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니깐요. 꿈을 가져야 할 청춘들이 일자리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한다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여전히 서툴기 만한 글솜씨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자, 나 같은 놈도 이렇게 아득바득 살아내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하지 못할 것이 어디 있겠냐 싶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강사다'를 통해서 휴학을 한 뒤로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오늘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술 고도화동에서의 여성 경력단절자들의 대상으로 한 교육이 무사히 끝이 나고 이제는 3주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맡게 되었습니다. 전에 진행했던 수업이 어머니 같은 분들이었다면 새로 시작한 강좌를 수강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제 아버지뻘 되시는 분들입니다.
저는 항상 저의 아버지께 컴퓨터라도 배우는 게 어떠시겠냐고 여쭈어봅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단연코 거절하십니다. 아버지가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서 불편했던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컴퓨터라는 게 우리 아버지 세대에게는 당연한 물건이 아닌가 봅니다.
머리가 빠릿하게 돌아가는 대학생조차도 컴퓨터를 다루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는데 중년의 나이가 되어 3D 모델링이나 3D 프린트라는 첨단 기술을 배우는 일이 얼마나 고역일지 아직 그 나이를 겪어보지 못한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강의를 진행하다 보면 열정의 크기가 젊은 사람들의 것 이상으로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가정에는 먹여 살려야 할 당신만을 바라보는 처자식이 있기에 쉽게 포기해버릴 수가 없기에 배움과 삶에 대한 의지가 무척이나 강합니다. 평일에는 갖은 업무에 시달리다가 쉬는 날의 하루를 기어이 반납하고 나의 수업을 들으러 온다는 이야기에 어찌나 가슴이 메이던지요.
냉정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요즈음'의 젊은 세대의 징징거림이 지나친 것 또한 사실입니다. 부모가 당신께서 하신 고생을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아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자란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월급 봉투를, 눈물에 절어있는 돈을 만져보지 못해서 소위 말하는 '멘탈'이 나약한 젊은이들이 넘쳐납니다. 이기적이기 그지 없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어른 아이'들이 천지에 널려 있습니다. 참을성도 부족하고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하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불평, 불만을 입에 달고 있고 뭐든지 남탓 환경탓하기 바쁩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포기하려 합니다. 조금만 가르쳐 놓아도 이직을 생각합니다.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아니꼬울 수밖에 없겠지요. 잔인하게도 맞는 말입니다. 내가 사장이라도 경력직을 뽑습니다.
나는 누구의 편을 들고 싶은 것도 아니고 누구의 시시비비를 가려내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날의 한국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이 틀렸다고 이야기 합니다. 조금만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궂이 싸울 일이 없을 텐데 모두가 그저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하기에 문제가 생기지 않나 싶습니다. 반대로 생각해봅시다. 모든 사람이 상대방에게 하나라도 더 주려는 마음만을 갖는다면 우리에게 문제가 생길까요?
먼저 말을 하는 것보다 귀를 열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너그러움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소중하기에 남들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잘났다고 살 수 있는 세상도 아니며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가 소중한 한 사람이고 부모님 사랑의 결실입니다. 누구보다 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기에, 사람에 대한 온정이 넘쳐나기에 용기를 내어 내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나는 나의 한계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할 계획입니다. 삶이 주는 고통 속에서 처절하리만치 눈물겨운 몸부림을 칠 생각입니다. 세상이 주는 시련에 쉽게 무릎꿇고 좌절할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을, 그리고 나라를 너무 쉽게 포기하지는 말자는 말과 함께 저는 이 글의 끝을 맺으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희망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