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다른 사람들처럼 생각을 숨긴 채 조용히 잘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불안한 정서를 타고나서 인지 가만히 있지 못한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순환되는 생각들을 주체할 수 없다. 물론 주위 형들의 경험에서 비롯한 진심 어린 충고를 몰라서 따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할 일을 어쩔 수 없이 해내야만 한다. 주변 사람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듣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가야 하는 길을 그만 갈 수 없다. 나의 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과 진정한 나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고집은 필요하다고 본다. 과거의 실수를 거울 삼아 다시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작가들은 소설을 쓸 때 자기들이 하느님이라도 되듯 그 누군가의 인생사를 훤히 내려다보고 파악하여, 하느님이 몸소 이야기하듯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이 어디서나 핵심을 집어내어 써낼 수 있는 양 굴곤 한다. 나는 그럴 수 없다, 작가들도 그래서는 안 되듯이 - 헤르만 헤세
충분히 글을 쓸 때 있을법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이름을 갖다 붙여 꾸며낸 듯 써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은 나로써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니깐 말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은 못한다. 우리는 조금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을 거짓 없이 드러낼 용기가 필요하다.
지난 10월 2일부터의 라이노 강의가 성황리에 끝이 났다. 수업 마지막에 교육생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박수를 받았으니 3D 프린터 전문가 과정을 담당하고 계신 연구원님으로부터도 퍼펙트했다는 말을 들었으니 이만하면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나도 더 이상 최선을 다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교육으로 인해 깨달은 점 몇 가지를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은 바이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항상 강조했던 말이 있다. 라이노는 그렇게 어려운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마라,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누구나 모델링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필자의 어머니(이하 엄마)는 모기업 카드사에서 카드 영업을 하셨다. 영업 수완이 좋았고 어느샌가 교육을 하는 위치까지 오르셨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만족을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 누군가 나의 어머니를 고깝지 않게 여겨 본사에 교육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질이 의심된다는 의견을 보냈고 엄마는 본사로 대기 발령이 났다. (기업의 조직 생활을 겪어보지 못해서 회사 생활에서 사용되는 용어에 대한 지식이 없음에 양해를 구합니다.)
엄마는 결국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사직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대기발령부터 책상을 비우라는 말이나 다름없었으니깐 말이다. 그 후로 2년 동안 어머니는 공인 중개사 시험을 준비하셨다. 부모님의 벌이가 반토막 났으니 더 이상 어려운 형편에 손을 벌릴 수 없는 노릇이었고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것이 내가 지난 2년간 휴학을 했던 이유 중의 하나다.
익숙하지 않은 책상머리였을 텐데도, 예전만큼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결국 2년의 노력 끝에 공인중개사 자격을 따내셨다. 바로 옆에서 지켜보지 않아서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간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왔을지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한 요즈음에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아직 젊은 편인 뇌를 가지고 있음에도 읽지 않던 글들을 읽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엄마를 보아서 잘 안다. 더 이상할 수 없는 최선을 다 하면 누구나 노력에 따른 보상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것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사실도 덧붙이고 싶다.
나의 수업을 듣게 된 교육생들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이 사람들을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야만 하는 무거운 책임을 지니고 있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사람이다.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교육을 행해야만 한다. 나에게 당연한 것을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일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죽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미 교단에 서고 있는 친구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나의 고등학교 은사님들께서 내게 손찌검을 하지 않은 것 역시 나로써는 감히 이해할 수가 없다. 원래 폭력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 보니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오늘날의 한국 학교에서 체벌이 금지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공부 못하는 학생은 용서할 수 있어도 무례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학생에게는 어느 정도의 체벌이 필요하다.
지각을 하는 사람은 항상 지각을 한다. 그 날도 역시 그 사람은 지각을 했다. 심지어는 첫 번째 수업은 결석을 했다. 분명 첫 수업 시간에 충분한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눈치 없이 굴었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나의 대답을 요구하면서 원활한 수업 진행을 방해했다. 나와의 시간 약속을 지킨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것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제법 오랜 시간을 서비스업에 임하면서 별에 별 사람들을 다 겪었더니 이제는 제법 사람을 대하는 일에 도를 텄다. 어딜 가나 꼭 나같이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교육생 중의 한 사람인 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난처한 입장이었다.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도 납득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 사람이 지각했을 때 설명했던 부분도 아주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불만을 표현한다면 나는 더 이상할 수 있는 말이 없다. 하지만 그녀는 역시 나의 수업 일정이 끝날 때까지 지각과 결석을 병행했고 수업 시간이 끝나기 전임에도 누구보다 빨리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이제 나는 누군가 나를 욕해도 더 이상 기분이 나쁘지가 않다. 이 수업을 진행했던 다른 강사님이라면, 그리고 전체 교육을 담당하는 분이라면 그리고 연결되어 있는 회사의 이사님이라면 내가 얼마나 인내하였을지 이해해 주시리라...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계기가 되었다. 처음부터 불만이 많은 사람은 끝까지 불만을 지니고 간다.(한 사람을 제외하고서는 모든 분들이 너무나도 좋은 분들이었고 오히려 내가 감사를 드린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멋모르는 시절에는 내가 잘난 맛에 살았지만 지금은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에게는 뛰어난 점을 배우면 되고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된 사람을 다른 관점에서 좋은 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장점만 지니고 있는 사람은 없고 단점만 지니고 있는 사람 역시 없다. 나보다 못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중이다.
질문을 해오는 사람들에게 모두 개인적으로 설명을 하다 보면 사실 실력이 늘어가는 것은 내가 된다. 누군가를 가르치다 보면 내가 이해가 되지 않던 것들을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를 한다. 반복적으로 설명을 하다 보면 나의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동시에 가르치는 능력까지 발전한다.
하루는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 나누는 이야기를 잠깐 들으니 수업 시간에 내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모든 분들이 저마다의 가정이 있는 누군가의 아내였고 가족들의 먹을거리를 생각하는 한 사람의 엄마였다. 나에게는 친구도 있고 형도 있고 동생도 있지만 엄마에게는 우리 가족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엄마한테 잘해야지 잘해야지 하면서 실천은 쥐뿔도 하지도 못하는 못난 아들이다.
하루하루 수업을 진행하면서 교육생분들(앞으로는 반대로 선생님이라 부르겠다), 선생님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게 되었다. CAD를 이용해 도면을 작성하던 분이 있었고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던 분도 있었다. 중,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사를 꿈꾸는 분도 계셨으며, 3D 프린터에 관심을 갖는 분도 계셨다. 한 선생님은 전업 주부임에도 항상 어떤 수업을 듣는 것을 낙으로 여기기도했다(내 수업을 듣고 나면 제자백가에 관한 수업을 들으러 간다고 했다) 누군가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임에 만족하지 않고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한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중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소중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매일 아침 수업 시간 전에 다과회가 열린다. 마음 넉넉한 아줌마들이 대부분인지라 고구마, 밤, 김밥을 비롯한 각종 주전부리들을 열심히 준비해 오셔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내게 건네주셨다. 하루는 아침부터 치킨을 두 마리 사 오시더니 내게 치킨에 맥주 한 잔씩 하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셨다. 안될 이유가 없지 원래 모델링은 살짝 취해 있는 상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맨 정신으로 컴퓨터와 씨름을 하다 보면 좋은 성격도 다 버리니깐 말이다.
원래 내가 하기로 했던 수업은 8월 14일까지였으나 하루 더 수업을 해줄 수 있냐는 담당 선생님의 부탁에 예정보다 하루 더 진행을 했다. 하지 못할 아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흔쾌히 승낙하였다. 잘 하진 않더라도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먼저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깐 말이다. 결국 거의 모든 분들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결실을 얻어 냈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기쁠 수 있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내가 희망을 얻을 수 있었고 관계에 대해서 걱정을 하던 내가 위로를 받는 시간들이었다.
디자인을 더 이상하지 않겠다고 아주 쉽게 단정 지었지만 사람 일이란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이렇게 또 나의 숨은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기에 조금의 후회도 남아 있지 않다. 매일 매일을 하얗게 불태 우는 나날들이었다. 이렇게 좋은 경험을, 좋은 기회와 인연을 선사해주신 티움 솔루션의 이재훈 대리님과 중간에서 의견을 조율하느라 고생이 많았을 전소영 연구원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이렇게 '나는 강사다'의 막을 내리려 한다.
+ 에필로그로 돌아오겠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즐거운 금요일과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