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것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 영화 달콤한 인생 중
영화 <달콤한 인생> 도입부에서 나무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장면과 함께 위 나레이션이 흘러나옵니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그 대사는 제게 적잖은 충격과 커다란 울림을 함께 주었습니다.
‘눈앞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사물은 나뭇가지이니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이다.’
‘하지만 나뭇가지는 바람이 불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다. 나뭇가지의 움직임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을 증명하는 모양이니 저것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생각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옵니다.
‘눈에 바람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오직 확연하게 드러나는 움직임의 주체는 나무다.‘
‘왜 나무가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왜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오직 마음만이 움직인다는 걸까?’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와 같이 풀리지 않는 논쟁처럼 아무리 곱씹어 봐도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마음이 움직인다는 말은 대체 무슨 말일까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저의 어리석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있어보이는 말을 영화 초반부에 넣어두어 영화를 있어보이게 만드는 장치로 단정짓고 말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마음공부를 하면서 영화 속 대사가 육조단경에 나오는 두 제자가 깃발과 바람의 움직임을 두고 논쟁하는 이야기를 각색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덕분에 오래된 의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함으로 저것이 생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생각은 있음과 없음, 좋고 싫음, 선과 악, 크고 작음, 깨끗함과 더러움, 젊음과 늙음, 삶과 죽음, 모든 상반되는 개념을 만들어내 비교를 통해서만 대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자는 나무가 움직인다는 생각 또는 바람이 움직인다는 생각 중 하나의 생각이 옳고 나머지 생각은 그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기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견해를 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려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중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분별을 내려놓는 공부를 하러 와서 여전히 분별에 사로잡혀 있는 제자를 보면서 스승님은 속이 답답해 울화통이 터질 법도 한데 어찌 이리도 너그러우실 수 있는지, 웃으시며 다정하게 대답해 주십니다. “움직이는 것은 오직 네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