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02

모든 것은 변한다

by 무명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01


서른여섯 살이 된 나는 지금 고향으로 돌아와 커피숍을 열어 3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께 용돈을 타던 스물여섯 살의 휴학생이 지금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지난밤 마신 술을 깨기 위해 카페를 찾던 대학생이 오늘은 매일 여섯 시에 일어나 다른 이들의 졸음을 깨워줄 커피를 만들어내기 위해 집을 나섭니다. 어떻게 카페를 창업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로써는 운이 따라주었다는 것 외에는 마땅한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취업할 자신이 없으니 창업을 해야 됐고 오래전부터 내 가게를 운영하고 싶었으며 커피를 배우고 싶어 커피를 배웠을 뿐입니다.

누군가 어떻게 마음의 병을 극복했냐고 묻는다면 역시 정확한 방법을 나는 알 수 없습니다. 나는 극복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변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무상함, 즉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곤 합니다. 젊음은 늙음으로, 아름다움은 추함으로, 건강은 아픔으로, 삶은 죽음으로 변합니다. 허망한 것을 허무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변한다는 것은 지금 있는 괴로움 역시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인연 따라 생긴 것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들숨이 있기에 날숨이 있습니다. 밤이 지나면 해가 뜨고 장마가 지나면 화창한 날이 찾아옵니다. 괴로움이 왔고 온 것이기 때문에 갔습니다.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 이유도 결국 모든 것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십 년 전 내가 붙잡고 있던 고민들은 지금 생각하면 전혀 문제가 될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자 했던 그 마음이 모든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내 글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나를 멈춰 세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생각이지 결코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내 글은 투박하지만 솔직했습니다. 오히려 엉성하기에 친근했습니다. 깊이가 없다고 느꼈지만 그래서 더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모든 핑곗거리는 내가 만든 것이었습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있는 그대로 완전했습니다. 두려움의 원인은 바깥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는 나만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이 이야기는 온 우주에서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소중합니다.


10년은 나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3년 전 집으로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습니다. 이듬해 할머니와 함께 15년을 지내온 강아지가 할머니를 찾아 떠나갔습니다. 작년 봄이 시작되기 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삼 개월 전 가장 의지하던 친구가 죽었습니다.


벚꽃은 피어난 지 일주일이 지나면 잎을 떨굽니다. 기다려온 시간에 비해 너무 빠르게 흩어집니다. 아쉬운 마음에 내년을 기약합니다. 하지만 내년에 피게 될 벚꽃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무리 길어봐야 100년, 지난 35년의 삶이 꿈같이 느껴지듯 앞으로 남은 시간 역시 찰나와 같이 짧은 시간일 것입니다.


벚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주 잠깐 강렬하게 피었다가 미련 없이 흩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1년 내내 피어 있다면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다르지 않습니다. 숨 쉬고 존재하는 이 순간을 당연하게 여기며,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합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순간을 끄집어내 후회하고 괴로워합니다. 미래를 생각하면서 불안해하고, 과거에 머물러 지금을 죽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평생토록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지금 이 순간뿐입니다. 현재만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진실입니다.


저 멀리 우주의 반대편에서 바라보면 내 삶은 티끌보다 작아 의미 없는 몸짓으로 보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유서가 될 수도, 자기소개서가 될 수도 있는 글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지금이 나의 전부이며, 현재 이 순간에도 모든 것은 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