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의 선악과
OECD 회원국 중 한국은 자살률 1위, 출산율 최하위, 노후 빈곤율 1위.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세계로부터 받은 성적표입니다. 한국전쟁으로 온 국토가 쑥대밭이 된 뒤로 7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루면서 경제강국이 되었지만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계층 간, 정치 이념 간, 성별 간, 세대 간, 지역 간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대한민국 전반에 갈등이 만연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총을 들지 않았을 뿐 이미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 아닌지 모릅니다. 이 전쟁은 남북 간이 아니라, 남한 사회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입니다.
모든 다툼의 원인은 인과관계가 너무 복잡해서 도저히 규명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사실 싸움의 뿌리는 너무나 명확합니다.
바로 ‘비교하고 분별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분별을 진실로 여기는 것은 무지이며, 무명이고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기 때문에 ‘나’와 ’너‘는 다르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비교 분별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분별은 모든 것을 이것과 저것으로 나눕니다. 이것은 좋은 느낌을 주고 저것은 나쁜 느낌을 줍니다. 하나는 좋은 것 다른 하나는 나쁜 것이 됩니다.
부는 좋고 가난은 나쁜 것. 대기업은 좋고 중소기업은 나쁜 것, 정규직은 좋고 비정규직은 나쁜 것. 사무직은 좋고 현장직은 나쁜 것. 이외에도 온갖 분별의 이름표를 갖다 붙입니다. 고귀한 것과 천한 것, 높은 것과 낮은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이와 같이 나에게 좋은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마찬가지로 나에게 나쁜 것을 셀 수 없이 많이 만들어냅니다. 좋은 느낌만 계속 느끼고 싶은 마음에 나에게 좋은 것은 어떻게든 가지려 하고 나쁜 느낌이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며 나쁜 것은 어떻게든 없애고자 하는 평생 끝나지 않는 전투가 시작됩니다.
어떤 부모는 본인의 유전자 절반을 물려받은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 일부 또는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부모는 자녀를 이루지 못한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줄 대리인이고 동시에 불안한 노후의 대비책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자식의 성공은 이제 부모의 성공이 되고, 자식의 실패는 부모의 실패가 되었습니다. 죄없는 자식은 경주마가 되어 차안대가 씌어져 오직 공부만을 바라보게 되었고 성공만을 향한 질주에 뛰어들게 됩니다. '좋은 것'은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기 때문에 희소성을 뜁니다. 희소한 가치를 지닌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들과의 경쟁에서 승리를 거머쥐어야만 합니다.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국,영,수, 탐이라는 먹이만 먹고 자란 한 경주마는 드디어 의대에 들어가는 쾌거를 이루어 냅니다. 그 경주마는 우월감에 도취되었고 내면에 다른 경주마들은 열등하다는 마음을 연습합니다. 하지만 모두의 기대와 달리 모두에게 공평하다고 여겨지던 레이스는 자기 밖에 모르는 엘리트 괴물을 탄생시키고 말았습니다.
의대 증원에 대한 반대로 의료 파업이 이어지던 동안, 의사나 의대생만 가입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의료파업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환자나 시민들을 “견민”, “개돼지”, “조센징” 등으로 부르기도 했고 작성자는 자신을 텔레그램 엔(n)번방 성착취 사건의 주범 조주빈에 빗대 “의주빈(의사+조주빈 합성어) 다 됐다”며 “이젠 2살 애기 사건 봐도 감흥이 떨어진다고 하거나 그냥 사람들이 다 죽어 나가면 좋겠다”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의사로서의 소명, 인간에 대한 사랑, 아픈 이들에 대한 동정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그에게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었고, 의사면허는 명예로운 표창장일 뿐이었습니다. 의료 행위는 특권층이 대중에게 베푸는 하사품이었습니다. 교육이 지닌 본래 목적은 의사가 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 교육받았으나 결코 교육되지는 못했습니다.
의사와 환자는 상호 의존적 관계입니다. 환자가 있어서 의사가 있는 것이고, 환자가 사라지면 의사도 사라집니다. 그의 말대로 사람들이 다 죽어나간다면 세상에는 장의사가 필요게 되지 의사는 필요없게 되어버립니다. 그는 책과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많았지만 지혜는 전혀 갖추지 못했습니다.
엘리트주의는 일부 정치인, 경제인, 법조인, 의료인, 지식인들에게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는 오만한 태도를 길러주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개는 인간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며, 주인이 위험에 처하면 목숨을 걸고 지키기도 하고,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수행하기도 합니다. 돼지는 지능 면에서 개를 훨씬 능가하며, 내장을 포함한 온몸을 남김없이 인간에게 내어줍니다.
결국 ‘개·돼지’라는 비하 표현은 국민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표현을 쓰는 엘리트들의 무지와 천박함을 드러낼 뿐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이를 이용하고 희생시키며 목숨까지 함부로 여기는 본인은 정작 개나 돼지보다 못한 존재가 아닐까요?
모든 정치인이 전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 권력은 5천만 국민이 주권을 위임한 결과임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그 권력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며,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되어서도 안 됩니다.
기업가 역시 모든 일을 혼자 해낼 수 없기에 다른 이들을 고용하게 됩니다. 피고용인들은 본인들의 기여에 대한 정당한 댓가로 보수를 받아가는 것입니다.
회사가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는 소비자들이 본래 가치 이상을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음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큰 위험을 감수한다고 해서 반드시 엄청난 경제적, 사회적 성공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성공에는 상당한 운이 따라준 것이고, 무수히 많은 이들의 실패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성공은 결코 개인 혼자의 힘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 바깥에는 ‘헬조선’이 없습니다. 모두 우리 생각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평등하며 자유로운 시대의 한반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누구나 대학에 진학해 원하는 분야의 공부를 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교육의 기회는 더 이상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보장된 권리가 되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정한 노력만 기울인다면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환경 속에 있습니다.
주거와 식생활 역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조선의 왕들조차 누리지 못했던 수준의 난방과 위생을 갖춘 공간에서 살며, 계절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음식을 소비합니다. 나아가 시간과 비용의 제약만 허락된다면 지구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것조차 일상이 되었습니다.
잘 구축된 상하수도 시스템 덕분에 깨끗한 물을 매일 마시고 씻을 수 있으며,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강한 국방력과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을 갖추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치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들을 종합해 보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역사적으로 보아도 극히 예외적으로 안전하고, 풍요로우며, 자유로운 환경임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자신과 견해가 다른 정치인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없이 내뱉을 수도 있습니다.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입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종교·사상·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죠.
동아시아 변방의 작은 반도 국가였던 한국은 이제 드라마와 K-팝을 앞세워 전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 강국으로 거듭났습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국적을 부러워합니다.
이렇게나 기적적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고작 작은 화면 안의 사람들의 모습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여 스스로를 비참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분별의 선악과를 따먹은 우리는 눈앞을 있는 그대로 보는 방법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일 누리고 있는 수많은 기적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져 소중함을 잊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만으로는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니 현실을 받아들이고 순응해야한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외부의 모양을 바꾸기 전에, 먼저 개인의 내면이 변화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타인을 변화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지만 불가능한 일입니다. 말을 물가에 데려올 수는 있지만 물을 먹을지는 말에게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내가 변해야 가족이 변하고, 가족의 변화는 지역 공동체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지역 공동체가 바뀔 때 비로소 나라가 달라집니다. 나라가 달라질 때 세상이 달라집니다. 내가 깨어날 때 온 우주가 동시에 깨어납니다. 지금 이 순간, 그 어느 때보다도 개인의 내적 변화가 절실합니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