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가 아직 깨달음을 얻기 전인 수행자 시절,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라자가하)에 나타나자 빔비사라 왕은 그의 비범함에 반해 "나라의 절반을 줄 테니 정치를 함께하자"고 제안합니다.
싯다르타는 이를 정중히 거절하며 "나는 오직 생로병사의 해탈을 구하러 갈 뿐"이라고 답하며 거절했습니다.
감동한 왕은 "그렇다면 깨달음을 얻은 후에 반드시 다시 나를 찾아와 법을 설해달라"고 청했고, 싯다르타는 이를 약속합니다.
성불하게 된 붓다는 약속대로 왕사성을 방문했고, 빔비사라 왕은 기쁘게 영접하며 불교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竹林精舍)'를 지어 봉헌합니다.
저는 굉장히 냉정한 사람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저 자신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내려놓은 사람입니다.
현재 제 삶에서 끝까지 책임지려는 관계는
여자친구, 아버지,어머니, 형 네 사람뿐입니다.
네 사람은 이번 생의 천륜입니다.
그 외의 모든 관계는 언제든지 정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이미 두 차례나 단절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망설임도, 미련도 없습니다.
마음은 오래전에 이미 출가했습니다.
세속의 욕망에서 한 발 물러나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질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아무리 값비싸고 견고해 보여도
50년도 지나지 않아 대부분은 쓰레기통으로 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몸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언젠가는 늙고, 주름지고, 기능을 잃습니다.
호흡은 멎고, 육신은 불길 속에서 사라져
결국 하얀 가루로 남게 됩니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제 입 안에서 들끓는 가래가 참을 수 없어 뱉고 싶은데
무엇하러 남이 뱉은 가래를 주워서 삼키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매일 커피를 만들고, 글을 쓰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제 커피를 마시고
제 글을 읽는 이들의 시간이
하얀 가루로 환원되는 그 순간이
조금이라도 늦춰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잠시라도 정신이 깨어 있고,
잠시라도 자기 삶을 더 또렷이 감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지장보살의 마음으로 세간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단호합니다.
제 카페는 감정이나 호의로 운영되는 공간이 아닙니다.
제 명의로, 합법적으로
건물주와 계약을 맺고 임대해 영업을 영위하는 장소입니다.
저는 두 곳의 사업장에 각각 보증금을 납부했고,
매월 약속된 기일에
약속된 금액을 성실히 지불하고 있습니다.
그 대가로 저는 계약서에 명시된 기간 동안
해당 공간을 사용할 전권을 가집니다.
그 기간 동안,
그 공간의 책임자이자 결정권자는 저입니다.
비유가 아니라 사실로서 그렇습니다.
계약이 유효한 한
그곳에서 왕은 저입니다.
이 공간은 공적인 공간입니다.
이곳의 유일한 통치자와 책임자는 저이며,
이곳에서 저는 아들도, 동생도 아닙니다.
저의 명함에는 직함으로 ‘대표’라고 적혀 있습니다.
저는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순진한 장사꾼도 아닙니다.
머릿속 계산기는 늘 돌아가고 있습니다.
사장은 수많은 책임을 떠안고,
말과 행동에 대해 책임지며 살아갑니다.
사장이 되어보지 못한 이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자리입니다.
왕관을 쓰려는 자는 그 무게를 견뎌내야 합니다.
저의 목적은 행복이며,
제 모든 행동은 오로지 저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타인의 행복 역시, 어쩌면
저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모든 거래 관계에서
‘갑’과 ‘을’이라는 단어를 지우려고 노력합니다.
평등을 희망하고, 평화를 추구합니다.
저는 체구가 작은 편이라
몸으로 하는 싸움은 잘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말싸움에서 지는 일만큼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저의 브런치 글만 보신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친구들은
저의 본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얼마 전에 직장 상사를 협박했고,
은사라 불리던 이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이력이 있습니다.
대형 베이커리 카페를 비판했고,
그보다 더 큰 자본을 겨냥해 돌을 던진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겁이 많은 저는
아직까지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심하게 숨어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부를 추구하는 이유는
힘을 가지기 위함이고,
힘을 가지려는 이유는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커피도, 카페도 아닌
글쓰기라는 취미 생활입니다.
저는 태생적으로 게으르게 태어났습니다.
언젠가는 글이나 쓰며
놀러다니고 살겠다는 마음으로
개같이 벌어, 개같이 쓰고 있습니다.
저의 우선순위는
가족과, 가족이 될 사람입니다.
지난 3년간 카페를 운영하며
그들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고,
신규 매장을 준비하면서
또다시 큰 책임과 부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굉장히 솔직하고 투명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고,
말을 둘러서 표현하는 일에도 서툽니다.
그러니 제발,
제 땅에 침을 뱉지 말아주시고
선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집에서 36년 동안
너무나 많은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견뎌왔습니다.
인고의 시간은 체감상 억겁에 가까웠습니다.
이제 저는 가까운 사람들과 싸우는 것에 지쳤습니다.
오늘은 주택청약저축을 해약하러 가는 날입니다.
수행자가 세속인의 모습으로
속세를 살아가는 것은 고단하기만 합니다.
지장보살은 불교의 수많은 보살 중에서도 '가장 뜨겁고 눈물겨운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입니다.지장보살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대원(大願)'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파격적인 서원을 세웠습니다.
"지옥이 텅 비지 않는다면, 결코 성불하지 않으리라. 모든 중생이 구제된 후에야 나 또한 깨달음을 얻으리라."
보통의 수행자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기를 목표로 한다면, 지장보살은 다른 모든 존재를 먼저 부처로 만든 뒤 자신은 가장 나중에 성불하겠다는 '역행(逆行)의 자비'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