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서 두 달 동안 아무리 고군분투해도
끝내 닿지 않던 성과가,
스레드에서는 고작 하루 만에 도달됩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다시 한 번
장사의 첫 번째 원칙을 체감했습니다.
결국 모든 장사는 ‘목 좋은 곳’을 찾아내는 일이라는 사실을요.
사람들은 진실을 원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진실 그 자체보다는
자신이 이미 믿고 싶은 방식으로 가공된 진실을 원합니다.
세상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드라마와 예능, 영화가 소비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물과 산소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물과 산소를 보러 극장에 가지 않습니다.
너무 당연하게 주어져 있고,
아무런 자극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맵고,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매체 역시 같은 기준으로 소비합니다.
담백한 사실보다
자극적인 서사,
중립적인 분석보다
편 가르기가 훨씬 빠르게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그래서 저는 실험을 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지역 분쟁을
의도적으로 하나 만들어보았습니다.
김해가 교토를 따라잡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경주 정도라면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넘어설 수 있다는
주장을 던졌습니다.
결과는 예상보다 더 정확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 말에 ‘긁혔고’,
구름처럼 몰려와 웅성거렸습니다.
하루 만에 만 명의 사람들이 유입되었습니다.
누군가는 분노했고,
누군가는 반박했고,
누군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자존심을 대신 지켜주려 들었습니다.
중요한 건 옳고 그름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반응할 만한 지점을 정확히 건드렸다는 사실입니다.
저라는 개인이,
자본도 조직도 없이
이 정도의 파급력을 하루 만에 만들어낼 수 있다면,
방송과 언론,
그리고 거대한 플랫폼들은
과연 어느 정도의 파급력을
의도적으로 설계하고 있을까요.
정보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유통되는 순간,
그 정보는 이미 상품이 됩니다.
그리고 상품에는
언제나 의도와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을 소비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극을 소비하고,
분노를 소비하고,
확증 편향을 소비하고 있을 뿐입니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저에게는 전라도에 대한 편견이 분명히 남아 있었습니다.
누군가 심어놓았고, 저는 깊이 따져보지 않은 채
그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 편견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환경과 서사, 그리고 반복적으로 주입된 프레임의 결과였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불균형으로 인한 갈등이
점점 노골적인 형태로 표면화되고 있습니다.
기회는 수도권에 집중되고,
사람과 자본, 정보 역시 한 방향으로만 흐릅니다.
그러나 이 갈등의 본질은
특정 지역이나 사람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구도를 만들었고,
그 구도 위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쉽게 분노하도록 설계되어 왔습니다.
지역 갈등은 자연 발생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사회가 감당해야 할 구조적 실패를
개인과 지역의 문제로 전가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식일 뿐입니다.
저 역시 그 구조 안에서
편견의 수혜자이자 가담자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직접 사람을 만나고, 삶을 들여다보면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지역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갈라놓는 말들이 아니라
갈라놓아야만 유지되는 시스템이 문제입니다.
결국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서로가 아닙니다.
수도권도, 비수도권도,
전라도도, 경상도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부족했던 것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시선이었습니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지역 갈등은 분노의 이유가 아니라
넘어서야 할 과제로 보이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