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문

그리고 천국과 지옥의 문

by 무명

브런치는 천국의 문과 닮아 있습니다.

누구나 문 앞까지는 당도 가능합니다.

아이디만 있으면, 계정만 만들면

그 앞에 서는 일 자체는 어렵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문은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천국의 문 앞에는 수문장이 있고,

브런치의 문 앞에는

심사라는 이름의 침묵이 존재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글의 온도와 문장의 밀도,

그리고 무엇보다

왜 이 사람이 글을 쓰는지를.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착한 척이 아니라

삶의 무게라고들 합니다.

브런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교로 다듬어진 문장은 많지만,

실제로 살아본 문장과 기교가 함께 숨 쉬는 문장을 찾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저는 과거에 김훈 선생님의 문장을 가장 좋아했고

그와 같아지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문 앞에서

되돌아서는 사람들이 생기는가 봅니다.

“나는 글 재능이 없어.”

“여긴 나 같은 사람이 올 곳이 아니야.”


천국의 문은

잘난 사람에게 열리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낸 사람에게 열립니다.

브런치 역시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을 원하는지도 모릅니다.


이곳에서 환영받는 글은

정답을 아는 글이 아니라

질문을 품은 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완성된 사유보다

아직 다 쓰지 못한 인생 쪽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는 플랫폼인 듯합니다.


그래서 브런치는 느립니다.

좋아요가 쌓이는 속도도 느리고,

반응이 오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마치 기도와도 같이 느껴집니다.

당장 응답이 없어도

말을 건네는 행위 자체가

의미가 되는 곳입니다.


천국의 문 앞에서

“나는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미 자격을 갖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브런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글을 의심하는 사람,

자기 삶을 쉽게 미화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이곳에 어울려 보입니다.


문은 언제 열릴지 모릅니다.

어쩌면 끝내 열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문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

문 앞에 서는 선택 그 자체입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천국의 문 앞에서,

그리고 브런치의 문 앞에서

조심스럽게 글을 꺼내 들고 서 있을 것입니다.


그 장면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제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확보한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인생길의 수많은 관문을 통과했고,

여러 굴곡을 돌고 돌아 이 자리에 이르셨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의 열정은

조금 옅어졌을지 모르지만,

현실을 감당할 만한

경제적·정신적 여유는

어느 정도 갖추셨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삶과 예술 사이의 간극에 대해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 본 분들이기도 할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쉽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반가운 소식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에 비해

고통에 둔감해졌다는 뜻이고,

삶이라는

끝없는 시험에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저는 다른 글에서

고통은 시간을 늘리고,

행복은 시간을 짧게 만든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에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은

사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 필력이 특별히 뛰어난 것도 아니고,

내용 또한

이미 여기서 아니면 다른 곳에서

여러 번 들었을 이야기일 것이다.

저는 저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여전히

세속적인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말하고

행동할 때도 많습니다.


아마도

평생을 공부해도 부족하지 않을까요.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진 점이 있습니다.

하루에 한 편, 두 달에 걸친 일기장을 쓰면서


회고록과 참회록으로서의 글쓰기는

이제 졸업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충분히 과거를 돌아보았고,

지나간 선택들에 대한

반성도 할 만큼 했습니다.


저 역시 사람인지라

이제는 ‘성과’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언제까지나

이런 방식의 글만 쓰며

천천히 출간 작가가 되는

정도만을 걸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은 한정적이고,

인간의 수명은 유한합니다.

저는 더 많은 시행착오를

더 빠르게 겪어야만 합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을 돌아왔으니깐요.


그때

눈앞에 나타난 것이

‘스레드’라는 플랫폼이었습니다.


이곳은

천국과 지옥이 동시에 존재하는,

온라인 위의

중생 세간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 앞에만 서 있는 대신,

한 번 더 다른 문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로

회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