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장 25절
2년 전 이맘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이모와 이모부, 삼촌과 사촌동생은
할아버지가 새로 마련하신 집으로 인사드리러 가셨지만 저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남아 매장을 운영해야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냉정하게도 저는 부모님께
“저는 제 부모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벅차기 때문에 두 분의 부모님은 각자 알아서 모셔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냉정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마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혈한이면서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애정을 가진 모순적인 사람입니다.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저는 선과 악, 흑과 백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양극단을 아우릅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괴로움보다는
오히려 행복에 가까운 이별이었습니다.
평생 술과 담배를 달고 사셨던 분이
아흔 살까지 장수하셨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적에 가깝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친가의 최칠분 할머니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냈을 때와는 달리,
저희 외가 식구들은
천천히 할아버지와 작별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할아버지의 건강은
산소 마스크 없이는 잠시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이미 크게 쇠약해진 상태였습니다.
생명과 마음을 이어 붙들고 있던 실은
이제 거미줄처럼 가늘어져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머지않아 끊어질 수밖에 없어 보였습니다.
할아버지의 몸은 쇠약해져있었지만
정신은 또렷했습니다.
이 세상에 더 이상 미련이 남아보이지 않으셨으며,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을 완전히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신 듯 보였습니다.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고 편안해 보였고
할아버지에게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평생토록 원하던 천국으로 향하는 관문이었습니다.
죽음은 기쁨입니다.
저는 예전에 발행한 글에서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죽음은
이 세상 수많은 사상가와 학자들조차
끝내 해결하지 못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해탈과 열반의 길을 제시한 부처님 외에도
죽음의 문제를 이미 해결한 사람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다만 그들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진리는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조 혜능 대사는
“불법은 불이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진리는 보편적이어야 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이 바로
‘진짜 나’이며,
그 ‘진짜 나’는 곧 ‘나 없음’입니다.
지금의 경험으로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나는 아직 죽지 않았고,
죽은 뒤에는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죽음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말은 곧
죽음은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할 뿐,
새로 생겨나거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늘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없으며,
깨끗한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반야심경의 가르침입니다.
제 글을 읽으며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꽤 계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깨달은 자, 즉 아라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가 특별하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깨달음이란 본래 지극히 평범한 것인데,
인간의 생각이
그 평범함을 자꾸만
특별하고 대단한 지위 위에 올려놓습니다.
밋밋한 얼굴 위에
두꺼운 화장을 덧바르며
스스로를 치장하는 것과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깨어남과 동시에
온 우주가 함께 깨어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역시
이미 그 깨어남 안에 있습니다.
당신의 주변이
지금 이 순간에도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바다에서 일어난 파도이며,
이 세상에는
둘이나 셋으로 나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1장 25절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말씀 역시 진실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야말로
당신의 삶을 구원으로 이끌어줄
유일한 구세주,
메시아입니다.
자신을 믿으세요.
이 세상에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ps. 제 주변 사람들 중 티내지 않지만 제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읽고 계신 분들이 꽤 많다는 사실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갑니다. 저는 생각보다 기회를 많이 드리지 않습니다. 저는 앞으로 먼저 다가가지 않으며 먼저 손을 건네지 않을 예정입니다.
오래되었다고, 가깝다고 모두가 좋은 인연이 아니라는 사실, 다시 한 번 상기해보시길 바랍니다. 이번 생의 죽음은 우리를 이번 생의 모든 것과 갈라놓습니다.
저는 완전히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인연이 닿으면 베풀고
멈추면 쉽니다.
이것이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