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직만 뽑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나

프롤로그

by 무명



보통사람


나는 대한민국의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다. 집에 돈이 많지도 그렇다고 먹을게 없을 정도로 부족한 가정에서 자란 것도 아니다. 고교 시절 하고 싶은 일에 성적에 맞춰 대학교를 지원했다. 결국 어쩌다가 한국에 흔하디 흔한 지방 사립대에 입학하게 되었고 거의 모든 대학이 가지고 있는 디자인과에 들어왔다. 수많은 진로에 대한 명확한 길이 보이지 않아 내 또래들이 그러했듯 나 역시 무엇을 업으로 삼아 먹고살지 몰라 장기 휴학을 선택했다.

휴학을 하는 3년 내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치킨집, 고깃집, 카페 등을 전전하며 입에 풀칠을 해왔다. 신세 한탄을 하며 매일 밤 술 기운을 빌리지 않고서는 잠을 자지 못하는 때도 있었고 누군가에게 선택받지 못해 한 동안 지질하게 울어 대기도 했다. 외모가 특출 나게 빼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심하게 보기 싫은 것도 못하다.


결점을 따지고 보면 장점보다 훨씬 많다.


기다란 다리를 선호하는 한국 사회에서 살지만 키는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몸무게는 훨씬 그에 훨씬 못 미친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자라면 거의 대부분은 이행한다는 병역의 의무조차 이행하지 않았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다. 요리를 특출 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와인과 커피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다. 특출 난 포토그래퍼처럼 능수능란하게 사진기를 조작하는 방법도 모르며, 제대로 연주할 줄 아는 악기조차 없다. 죽마고우의 호소력 짙고 개성 있는 성대를 지닌 것도 아니다. 내 주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녀온 그렇게 흔해빠진 유럽 배낭 여행조차 가지 못했으며 나의 한국 여행기는 친구가 걸은 인도와 아프리카 길 앞에서 명함조차 내밀지 못한다. 내 글은 어딘가 모르게 맹탕이고 그렇게 오래도록 영어 교육을 받았으나 몸짓 발짓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외국인과 대화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청소, 설거지, 빨래... 당연히 싫어한다. 사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다.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어딘가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있는 것 같다, 내 천성이 그렇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빈둥대는 백수에게 가당 치도 않은 강의 제안이 들어왔다. 친한 형으로부터 나에게 명령 아닌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내가 속한 과에 나보다 모델링과 렌더링을 잘하는 사람들이 널렸는데 굳이 나에게 부탁을 해준 것이다. 내 자리가 아닌 것 같다고 판단했기에, 나보다 모델링과 렌더링을 잘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많기에, 나는 누군가를 가르칠만한 수준이 못된다고 생각했기에 몇 차례 거절을 했다.


나는 원래 변덕이 심하다.


그러다 또 어느 날 생각을 고쳐 먹게 되었다. (나는 원래 변덕이 심하다.) 전공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으며 취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나에게 전공 살려 취업을 해볼 생각은 죽어도 없냐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준은 된다는 것을 부모님께 증명해 보일 필요도 있었다. (적어도 디자인과를 나왔으면 누군가를 가르칠 정도의 수준은 돼야 디자인은 할 만큼 했으니 그만해도 될 것 같다는 말을 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호수 공원,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


그저 돈이 필요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가진 상태로 나는 경기 테크노 파크로 향했다. 수강 대상자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는 주제에 아주 치밀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안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그 결과, 나의 예상은 아주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매거진의 이전글땅 위의 모든 생명은 뿌리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