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10월 2일 아침 9시 경, 내가 강의할 곳인 경기테크노파크의 기술고도화동에 도착했다. 수강 대상자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했고 수업을 진행할 '창조교육실'이 어떠한 환경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기에 준비가 부족하면 어떤 돌발 상황에 대응을 하기 어렵다.
첫날부터 순탄치 않았다. 교육을 진행해야 하는 컴퓨터에 라이노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적잖이 당황했다. 스무 대가 넘는 컴퓨터에 혼자서 라이노 설치 파일을 옮겨야 할 판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이 라이노 설치 파일을 USB에 가지고 온데다 수강생 한 분이 미리 와서 옮겨 담는 작업을 도와줬기에 강의 시작 시간 전에 모든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교육을 담당하는 연구원님으로 부터 정확하게는 '여성 경력 단절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었으며 3D 프린터 전문가 양성 과정 중에 내게 주어진 과목이 라이노라는 사업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 머리가 아찔했다. 구차한 변명일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라이노를 이용해 모델링이 어떤 것인지와 간략한 렌더링이 어떤 건지 대강 보여주는 정도라고 전해 들었고 3D 프린팅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사실 3D 프린터를 구경은 커녕 RP(Rapid prototyping)조차 제대로 사용한 경험 조차 없다.)
전체 커리큘럼을 살펴보니 이미 교육생분들은 Photoshop과 Illustrator, Auto CAD 강의에 이어 123D Design이라는 나도 생전 처음 들어본 소프트웨어에 대한 교육을 수강한 상태였으며 내 라이노 강의에 이어 Inventor와 3ds max까지 듣는 어마어마한 일정을 소화해내는 중이었다. 현실적으로 하루 6시간, 2주가량의 강의를 듣는다고 해서 하나의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조차 어렵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데 이렇게나 짧은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아서 한 분야의 전문가로 거듭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과 다름 없다.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든 결국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기존에 교육생을 담당하던 책임자가 내 순서에서 변경되었고 내게 이번 일을 알선해준 회사의 대리님은 물론 회사의 입장까지 난처한 상태였다. 내 두 어깨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할 경우에 사업 전체에 손실을 입힐 수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부터 먹튀를 할 생각은 없었고 무책임하게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라이노, 어렵지 않아요.
헤치지도 않고요
라이노라는 소프트웨어가 어떤 원리로 점과 선, 면을 형성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하나의 형태를 갖춘 입체물을 만들어내는지 이해만 한다면 사실 모델링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개념을 라이노를 난생처음 켜보는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사고 체계가 이미 형성된 어른들을 대상으로 NURBS가 무엇인지, 함수와 방정식 따위의 수학과 공학적인 개념을 차용해가면서 수포자인 한국의 문돌이가 설명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디자인에 대한 교육을 어느 정도 받은 대학생들도 모델링과 입체물을 다루는 것에 어려움을 느껴 제품 디자인을 포기한다. 나 역시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내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디자인을 포기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기에 무조건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이해를 시켜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선생님 소리를 듣다
선생(先生)님이라는 말의 본래 뜻을 따지고 보면 먼저 태어난 사람에게 예를 갖춰 부르는 호칭이다. 학교의 선생님들이 서로를 선생님이라 부르기도 하고 학부모의 입장에서 자녀의 선생님을 선생님이라 부르기에 교육생분들에게는 그냥 입에 붙은 호칭일지도 모른다. 한 번도 내가 선생님의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난생처음으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려지는 상황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교육생분들의 대다수가 이미 나이 지긋한 중년의 여성분들이었고 심지어 나의 은사님들과 비슷한 연배였다.('저기요'라는 말은 나를 무시하는 듯한 기분이 들고 조금 무례하다고 생각이 돼 차라리 강사님이라고 불러주는 편이 편할 것 같다).
수업을 시작하니 생각보다 수업을 듣는 분들(사실 아직도 내가 교육생분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애매하다)의 열정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세월의 풍파를 겪을 대로 겪은대다 사회의 쓴 맛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런지 모든 분들이 집념이 대단했다. 강의실은 나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고자 하는 의지들이 넘쳐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배움에 대한 뜻이 어마어마했다.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여자로 살기 어려운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여전히 남성과 여성의 임금격차가 나는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고 육아와 출산으로 인해서 꿈을 포기하는 것을 강요받는 일이 허다하고 단지 다른 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약한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여성이기에 가능할 지도 모른다
호프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굉장히 무례한 치과 의사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술에 취하기만 하면 그는 거들먹거리며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나를 멸시와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정말 많은 사람을 겪으면서 남성이기에 굉장히 오만하고 독선적인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남성에 비해 공간 지각 능력은 떨어질지 모르나 공감 능력은 남성에 비해 월등하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쉽게 부르는 것도 여성이기에 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냉혹한 사회로부터 미끄러져 넘어진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일이 더 수월할지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겠고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원래 사람에 대한 마음을 많이 쓴다. 내 심장은 좌심방, 좌심실, 우심방, 우심실보다 훨씬 더 많은 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남자'에 비해 공감하는 능력을 훨씬 더 많이 가지고 태어난 대다(둘 째로 태어나서 다행이다) 후천적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학습해왔다(연상녀들과의 연애, 여자 사장님과 일을 하면서). 내 모델링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음에도 말하고 가르치는 능력이 다소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이번 교육은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수업 진행을 잘 했는지 못했는지는 이번 강의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아주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