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사다 #4

나의 하루 일과

by 무명
친구(親舊), 오래된 친한 사이라는 뜻부터 참 좋다


지난 추석, 고향 친구 두 녀석과 조촐한 술자리를 가졌다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해령이가 안산에 있는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를 다닌다는 것과 아마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경기테크노파크 바로 옆에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가 위치해 있다.) 소식을 듣자마자 페이스북을 통해서 연락을 했고 여전히 밝은 모습으로 답변이 돌아왔다.


해령이는 중학교 1, 2학년 때 같은 반을 지냈고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재영이와 함께 반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친구 중 한 명이었다. 나와 다르게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고 피아노를 참 잘 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이번 강사 일을 수락하지 않았으면 언제 안산을 오게 될 것이며 언제 해령이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될지 모르는 것이었다.


안산에서 강의를 하는 동안 해령이로부터 정말 많은 도움을 얻었다. 안산에서 일을 하는 동안 머물만한 곳이 필요했기에 고시원을 알아보러 다니는데 동행해주었으며 서울과 안산을 오가는 교통편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이래서 친구가 참 좋다. 해령이와 식사 한 번하고 하루는 커피도 마셨는데 사진을 한 장도 남기지 못해 아쉽다. 다음 주에 강의를 나간다면 꼭 만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사진 한 장 남겨야겠다.


안산의 한양대학교 본관


한 달도 머무르지 않을 텐데 방값을 지불하기 고시원 주인아저씨가 요구한 금액이 너무 비싼 데다가 침대 매트를 보았더니 왠지 누우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만큼 비위생적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서울을 왕복하거나 가끔은 해령이 집에서 신세를 지고 또 가끔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숙박하기로 결심했다. 돈을 써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돈으로 해결하면 좋지만 굳이 필요 없는 지출은 하지 않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이고 조금만 더 고생하고 참으면 해결될 일이다.

캠퍼스 안에 아주 좋은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


어쩔 수 없이 당분간 형의 집에 조금 더 얹혀 있기로 결정했다. 양해를 따로 구하진 않았으나 어쩌겠나. 오갈 곳 없는 동생을 거두어 들일 수밖에 없는 동생을 거두어 들이는 것이 형의 의무인 것을... 아무튼 나의 출근길은 대략 이렇다. 아침 여섯 시에 눈을 뜬다. 씻고 나갈 채비를 하여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홍대입구역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홍대입구역에서 신도림을 가는 2호선 외선 순환 열차에 몸을 싣는다. 신도림역에서 천안으로 가는 1호선 열차로 갈아탄다 - 늦게 일어나면 수많은 직장인들의 출근길과 겹치게 되어 무척 고통스럽다. 금정역에서 상 4호선 열차로 환승한다 - 1호선 열차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4호선 열차로 옮겨 탈 수 있다, 그래서 한 때 축구 선수 손흥민의 별명이 손금정이었다는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바로 갈아탄다고... 상록수역에 도착한다. 역 이름이 참 예쁘다. 상록수에서 경기테크노파크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이렇게 하면 9시 정도에 기술고도화동에 도착할 수 있게 되고 드디어 나의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나는 바로 갈아타는 금정이 아닌 항상 푸르른 상록수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10시부터 4시 30분까지 6시간의 강의가 끝나면 기가 쏙 빠진다. 수업 특성상 모든 사람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해야 할 수밖에 없다. 6시간을 주야장천 떠들고 나면 밥 생각도 안 난다. 이미 주변에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모두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내 몸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배우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다 보면 말 그대로 멘탈이 너덜너덜해진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해가 뉘웃 뉘웃 기울어가고 있다


선생님이 공부 잘하는 학생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라이노를 잘 따라 하는 사람 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더 좋다. 오히려 잘 하는 사람은 두렵다 - 나보다 모델링을 잘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내 밥그릇이 위험해진다. 처음 접해보는 것은 모르는 게 당연한 거고 모르면 질문을 하는 게 당연하다. 항상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집중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학생들은 이야기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누군가만 편애하지 마라고. 나 역시 그랬었다. 선생님이나 교수님이 누군가를 편애하는 게 못마땅했었다. 그런데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보니깐 이제는 알겠더라. 잘 못해도 좋으니 열심히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좋지 안됐을 때는 누구도 당신을 나무라지 않는다. 누구나 사정은 있고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것 때문에 지각이나 결석을 하는 것도 이해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본인이 지각을 하거나 결석을 해서 내가 앞서 설명한 부분을 개인적으로 질문을 해서 내가 해야 할 수업을 진행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시간 약속을 지킨 사람들에게 결례를 범한다는 사실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지리적으로 교통편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닌지라 점심 식사를 30분 단축하고 수업을 30분 마친다. 강의 시간 동안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나 보충해야 할 것에 대한 질문을 받기 위해 30분가량 더 내어 모든 사람이 강의실을 나간 이후에 대강의 정리를 한 후에 모든 강의를 종료한다.

수고했어, 오늘도


이번 라이노 수업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증거가 있다. 그것이 바로... 한양대 안산 캠퍼스와 신촌을 오가는 하교 버스가 올해 10월 1일부터 운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은 꽤 오래 걸리지만 2000원만 지불하면 아주 편안하게 신촌역까지 올 수 있다. 이 역시 해령이의 도움이 컸다.

이런 우연이 다 있나


학교 셔틀 버스를 타면 일곱 시 반이 되면 신촌역에 도착한다. 사실 강의하는 것보다 서울과 안산을 오가는 일이 더 힘들다. 어떤 날은 저녁을 먹고 귀가해 전날 밤의 수면 부족으로 여덟 시 반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지듯 잠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