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가야의 멸망

그리고 가야의 이동하는 중심

by 무명

서기 532년, 신라 법흥왕 19년.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깨닫는다.


왕과 왕비, 세 아들은 보물을 지니고 금관성을 나와 신라에 투항한다.

한때 낙동강 유역을 장악하고 해상 교역을 주도하던 나라의 종말이었다.




1. 400년, 이미 시작된 균열


금관가야의 몰락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다.

균열은 이미 5세기 초, 400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399년, 왜 세력과 손잡고 신라를 압박하던 가야 연합군은

이듬해 ‘광개토대왕’의 남정(南征)에 의해 격퇴된다.


이 사건은 단순한 군사적 패배가 아니었다.

금관가야 중심의 정치적 위상이 흔들렸고, 김해 대성동 고분군의 축조가 중단되는 등

맹주국으로서의 상징적 권위 역시 급격히 약화되었다.


가야 연맹의 중심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2. 신라의 압박, 낙동강을 향한 확장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에 이르러

신라는 낙동강 유역으로 세력을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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