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김첨지의 귀빠진 날

by 무명

마흔이라는 숫자가 성큼 다가오고 있는 요즘도, 우리 ‘FC 거고 오심욕해’ 동창들은 여전히 서로의 이름을 거꾸로 뒤집어 부르곤 한다. 유치하지만 그 부름 속에는 십 대의 치기가 그대로 박제되어 있다. 오늘의 이야기는 나의 본명 대신, 그 시절 친구들이 지어준 나의 또 다른 인격체 ‘훈성’에 관한 기록이다.


거창고등학교 56회 남자 생활관 34호. 그 좁고 북적였던 방에서 친구들은 나에게 ‘김첨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2026년 3월 12일,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사실 나는 내가 왜 김첨지가 되었는지 아직도 그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다만, 소설 속 주인공처럼 나에게도 비 오는 날은 늘 예사롭지 않은 사건들이 겹치곤 했다.


나의 생일인 3월 초순은 유독 봄비가 자주 찾아온다. 누구나 화창한 생일을 꿈꾸겠지만, 나는 비 내리는 우울한 생일을 맞이할 때면 나만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위안하곤 했다. “하늘이 나를 세상에 빼앗긴 게 너무 슬퍼서, 나 대신 눈물을 흘려주는 거야.”라고. 조금은 오글거리는 이 문장이 비에 젖은 나의 생일을 버티게 한 힘이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며 삶의 궤적을 그린 도시는 김해와 거창, 원주 그리고 서울까지 총 네 군데다. 1990년부터 2024년까지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 도시들에 비가 내린 3월 12일의 풍경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서울은 1990년을 시작으로 아홉 번의 비가 내렸고, 원주는 여덟 번, 거창과 김해는 각각 여덟 번과 아홉 번의 빗줄기가 생일을 적셨다.


내가 태어난 1990년 그날에는 서울과 원주에 비가 내렸고, 첫 번째 생일인 1991년에는 김해와 거창에 비가 내렸다.


탄생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내가 태어난 날에는 부산과 김해에 비를 내려주지 않았지만 깊은 마음의 병을 앓고 살아갈 서울과 원주에는 비가 내렸다.


첫 번째 생일에는 내가 살아가면서 겪을 끔찍한 고통을 예견하는 듯이 김해와 거창에 비가 내렸고,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잠시 머물고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듯이 서울과 원주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특히 네 개 도시에서 동시에 비가 내렸던 1998년, 2007년, 2010년, 2015년, 2018년, 2021년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1998년에는 김해에서 아홉 살 인생의 비 오는 생일을 보냈고, 2007년에는 거창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대학교 2학년이던 2010년의 생일은 특히나 잊을 수 없다. 학생회 활동을 시작하고 산업디자인학 전공을 선택하며 새 학기의 설렘에 부풀어 있던 때였다.


하지만 비 내리는 생일날 내가 마주한 것은 낭만이 아닌, 생전 처음 보는 선배들이 말아주던 역겨운 생일주와 “니가 학과 생활을 그렇게 안 한다며, 뒤질래?”라는 서슬 퍼런 핀잔, 그리고 덤으로 얹어진 생일빵이었다.


당시 우리에게 생일은 단 하루로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었다. 혈기 왕성했던 우리는 일주일 내내 ‘탄생 주간’을 선포하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술판을 벌이며 축제를 즐겼다. 아쉽게도 싸이월드가 문을 닫으며 그때의 사진들이 많이 소실되었지만, 비 냄새와 섞인 술기운의 기억만은 여전히 선명하다.


2015년에도 생일은 주간 단위로 이어졌다. 생일 며칠 전인 3월 7일에는 형우 형과 인왕산에 올라 부암동을 걷고 맛있는 저녁을 얻어먹은 뒤 강남으로 넘어가 술을 마셨고, 다음 날인 8일에도 어김없이 강남에서 파티를 열었다.


시집은 갔으니깐 이런거 올려도 되제 칭구야?


생일 전날인 11일에는 현우 형, 재홍 형, 용선 형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전야제를 치렀고, 마침내 맞이한 생일 당일에는 애증의 친구 ‘김다솔’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며 그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되돌아보니 나의 3월 12일은 늘 비와 술, 그리고 사람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마흔을 앞둔 지금, 이제는 비 오는 생일이 우울하기보다는 익숙한 손님처럼 반갑게 느껴진다. 올해의 빗줄기는 또 어떤 기억의 무늬를 남기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