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성스님과 디오게네스 그리고 막행막식

by 무명

춘성스님과 디오게네스, 그리고 ‘막행막식’이라는 단어를 하나로 묶는다면, 겉으로 보이는 무질서 속에 숨겨진 질서, 혹은 파격 속에 내재된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춘성스님은 기존의 승려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침없는 언행, 세속적인 농담, 때로는 술과 고기를 거리낌 없이 대하는 모습은 일반적인 수행자의 모습과는 분명 달랐습니다. 그러나 그를 단순히 ‘막행막식’이라 규정하기에는 무언가 설명되지 않는 깊이가 있습니다. 그는 형식과 권위를 부수는 방식으로 오히려 집착을 끊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상(相)에 대한 집착’을 깨뜨리는 하나의 방식이었던 셈입니다.


한편, 디오게네스 역시 사회적 규범과 도덕을 철저히 비틀며 살았던 인물입니다. 통 속에서 생활하며, 대낮에 등불을 들고 “정직한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했던 그의 행동은 당대 기준으로는 기이하고 무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이함은 단순한 괴팍함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허위와 위선을 폭로하기 위한 철저한 실천이었습니다. 그는 최소한으로 살며, 욕망을 줄이고, 사회가 강요하는 기준 자체를 의심했습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형식’을 거부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형식을 버린 이유입니다. 단순히 편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질에 도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막행막식’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 단어를 무례함, 방종, 무책임과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춘성스님이나 디오게네스의 삶을 보면, 모든 ‘막행막식’이 같은 결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 안에 분명한 기준과 철학이 존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히려 형식에 집착하는 삶이 더 큰 위선일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예의 바르고 정돈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탐욕과 허위가 가득한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왜 그렇게 사느냐’입니다.


춘성스님은 파격을 통해 집착을 끊었고, 디오게네스는 파괴를 통해 진실을 드러냈습니다. 둘 다 사회의 기준에서는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그 이상함은 오히려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정말 본질을 향해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남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안전하게 머물고 있는가.


막행막식이라는 말이 단순한 비난으로 끝날지, 아니면 기존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될지는 결국 그 행위의 ‘의도’에 달려 있습니다.


형식을 깨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깨는지가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