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어깨에 짊어진 인생의 무게

나는 짐작조차 못하겠습니다

by 무명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버지의 흰머리와 주름 그리고 축 처진 어깨가 눈에 자주 들어온다. 외면할 수 없었던 현실이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항상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가족 식사 모임에 가고 있는데 내비게이션의 말을 듣지 않고 다른 길을 택하시기에 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내 말 역시 묵살하셨고 잘못된 길로 들어버렸다. 속으로 '그러게 내 말 좀 들으시지'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다. 아버지만의 신념으로 일생과 가족을 이끌어 오셨다. 당신의 선택만을 믿고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도 꿈이 있었다


아버지도 나와 같은 스물여섯 살이었던 시절이 있었겠지. 꿈이 있을 나이였지만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버지에겐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고작 4살 밖에 안되던 해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나의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말을 평생도록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셨다. 할아버지의 무덤 앞에서만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부를 뿐이었다. 나에겐 그리도 쉬운 것이거늘.


꿈이었던 축구 선수를 포기하고 상고로 진학했고 대학교에 입학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으로써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대학 졸업을 포기하고 돈을 벌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집에 남자라고는 나의 아버지 단 한 사람뿐이었으니깐. 항상 무언가를 포기하고 살아와야만 했던 인생은 과연 어떤 기분이셨을까.


아버지도 한 때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내니라는 대기업을 다니던 시절이 있었고 서울로 발령이 나서 어쩔 수 없이 금쪽같은 아들들을 머나먼 고향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심경은 어떠했으며 고민이 있을 때 털어놓을 아버지가 없는 마음은 어땠을지 감히 나로써는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꿈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다


나의 아버지는 고향에서 십년이 넘도록 작은 축구 용품 가게를 운영하고 계신다. 조기 축구회도 몇 개 운영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돈을 잘 버는 아빠는 아니지만 인자하고 인정이 넘쳐서 항상 사람이 따른다. 축구 선수가 되지는 못하셨지만 여전히 공을 차러 나가신다.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기에 당신께서 받지 못한 사랑을 우리 두 아들들에게 담뿍 안겨주셨다. 자라면서 손찌검 한 번 하시지 않으셨고 나의 초라한 성적에도, 나의 비행에도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철이 없고 이기적인 어른으로 자랐나 보다.


아직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 내 새끼를 안겨드릴 날이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지지만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아버지가 되겠지. 내 한 목숨 건사하기에도 이렇게 벅찬데 아버지의 어깨에 짊어진 짐을 지고 걸어오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어서 조금이라도 그 짐 내가 덜어드려야 하는데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렇게나 잘 알고 있음에도 아버지 뜻을 따르지 않고 싶은 대로 하고, 살고 싶은 대로 살아 죄송한 마음만 든다. 요즘 이래 저래 마음이 많이 심란하다. 나 자신에게 가까워질수록 다른 사람들로부터 멀어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