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두려움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by 무명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날 밤이 되기까지 내가 해왔던 행동에 설명을 붙여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내 인생을 돌아보았다. 미적지근하고 모순과 주저로 점철된 몽롱한 반생이었다. 나는 허망한 기분으로 지난 일을 생각했다. 허공 중에서 바람을 받은 한 조각 구름처럼 내 인생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어 갔다. 흩어졌다가는 다시 모이고, 모였다가는 다시 모습을 바꾸어, 차례로 백조가 되고, 개가 되고, 악마가 되고, 전갈이 되고, 원숭이가 되었다. 구름이란 영원히 흩날리고 찢기는 존재... 구름은 하늘의 바람과 무지개에 쫓겨 다니는 존재가 아닌가.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오늘의 나는...


설거지가 귀찮아 주야장천 라면만 끓여 먹던 내가 요리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던 내가 강의를 했다.


책과는 담을 쌓고 살던 내가 요즘에는 온종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다. 살고 볼 일이다.



무지의 역사


나는 고교 시절부터 글이나 말을 통해 나의 생각을 드러내는 일을 굉장히 어려워했다. 동아리 활동으로 교지를 만들어내는 일을 했음에도 졸업할 때까지 그럴싸한 기사 한 편 제대로 써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교내 행사 때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돌아다니는 일이나 기사마다 장난 같은 삽화 몇 점을 그려 넣는 게 거의 전부였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로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졌다. 리포트를 작성해야 할 때마다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아는 것이 별로 없는데다 책 조차 읽지 않았으니 글을 길게 풀어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서술형으로 출제되는 시험에서 남들은 답안지를 서너 장씩 채워 내는 동안 나는 고작 한 장을 채우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고 나는 점점 더 움츠러들었다.



조지 오웰의 에쎄이, 나는 왜쓰는가


그렇다면 나는 왜 쓰는가


나는 모든 새로운 경험에서 희열을 느낀다. 가보지 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전에 해보지 못한 일을 할 때 자꾸만 실수하는 어리숙한 내 모습이 좋다. 과거에 그토록 글쓰기를 싫어했던 내가 최근에는 어떻게 하면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으로 하루를 보낸다. 글을 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역시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는 못 배기는 성격인지라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쓸 뿐이다.



당신의 글쓰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


친구들이 종종 글 쓰는 일이 너무 어렵다고 토로한다.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니깐.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타인의 시선에 의한 부담감 때문이다.


처음부터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말자.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많이 하는 방법밖에 없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많이 읽고 많이 쓰다 보면 저절로 나아지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신경 쓰지 말자. 쓸데없는 자존심도 글 쓰는데 별 도움 안된다. 쓰레기통으로 과감히 던져 버리자.



유의미한 기록


내 생각을 말과 글로 드러낸 만큼 허점이 많아졌다. 내가 한 말에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때 이중성으로 비난받을지도 모른다. 나는 누군가에게 가식적으로 비칠 수고 있으며 또 위선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힐 지도 모른다. 지금 하고 있는 말을 또 다른 글에서 이미 했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때는 나의 두 가지 주장이 서로 모순되어 대립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나는 글을 쓰는 순간 만큼은 내 진심을 글 안에 온전히 담아낼 뿐이다.


"말은 느낌을 나타내

는 기호일 뿐 그 느낌

의 본질은 아니다."


말 주변이 별로 없는 나는 나의 생각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 글쓰기를 선택했다. 생각은 머릿속에만 있는 것으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일단은 드러내고 볼 일이다. (사실 글로도 내 생각과 느낌을 완전히 나타내지는 못하겠다.)


순간은 끊임없이 지나쳐 가고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진다. 흘러가는 것들을 시간과 함께 보내지 말고 열심히 기록해두자. 잘하지 못하면 뭐 어때 하지 않고 후회할 바에야 하고 후회하는 편이 훨씬 속이 후련한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