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스쳐 지나간 얼굴들

부재 속에서 더 선명해지는 존재의 감정

by Second Ride Lab Travel
© Namho 南昊  Nagoya (1).png

플랫폼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은 이상하게 마음을 붙잡는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방금까지 여기 머물렀던 누군가의 기척이 공기 속에 흐르고 있다. 천장 아래로 길게 늘어진 선로, 바람에 스치는 먼 소리, 신호등의 작은 불빛까지 모든 풍경이 사람의 존재를 읽었음에도 오히려 누군가 있었음을 더 강하게 말해 준다.


나는 이런 장면을 오래 바라보곤 한다. 사람은 사라졌지만, 사람의 흔적만이 남아 있는 순간. 여행을 떠나면 얼굴과 표정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그들이 남기고 간 감정의 결은 의외로 오래 마음속을 떠돌곤 한다. 이름도 관계도 없던 사람들인데, 묘하게도 어떤 감정은 낯선 도시의 공기처럼 오래 남는다.


여행은 결국 우리가 익명의 얼굴들을 지나 치는 과정이다. 플랫폼, 골목, 카페, 횡단보도 같은 장소들은 잠깐 스쳤을 뿐인데도 각자의 감정이 겹겹이 쌓여 있는 곳이다. 서로의 목적도 다르고 삶의 무게도 다르지만 사람들은 한순간 같은 공간에 머물며 서로의 기척을 나누고, 다시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진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크 오제는 이런 장소를 '비장소(Non-Place)'라고 불렀지만, 나는 오히려 이곳이 가장 많은 감정이 오가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관계가 없기 때문에 더 솔직하고, 역사가 없기 때문에 더 생생하다.


사람이 사라진 플랫폼을 바라보고 있으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사람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웃으며 떠나는 사람, 무겁게 서 있던 사람, 서둘러 뛰어가는 사람, 아주 천천히 걸어 내려오던 사람. 표정은 흐릿한데, 그 순간의 결은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풍경이 조용할수록 사람의 흔적은 더 또렷해지고, 누군가 떠나 자리에는 체온의 잔향 같은 것이 머문다. 우리는 풍경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속에서 '사람'을 읽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스쳐 지나간 얼굴들은 결국 우리의 여행을 만들어 주는 존재가 된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어도, 감정의 반응은 우리 안에 쌓인다. 어떤 날은 낯선 이의 표정 하나가 도시의 인상을 바꾸고, 어떤 순간은 지나가는 걸음 소리가 여행의 분위기를 완성한다. 풍경보다 사람이 더 큰 감정의 결을 남기는 이유는, 우리가 결국 사람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 플랫폼 사진 속에는 아무도 없지만, 나는 많은 얼굴을 떠 올린다. 낯선 도시에서, 떠나는 무언가를 향해 서 있던 사람들. 부재는 텅 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가 지나간 자리만이 가질 수 있는 충만한을 품고 있다. 그래서 어떤 풍경은 사람이 있을 때보다 사람이 없을 때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비어 있는 장면 속에서 우리는 지나간 사람들을, 그리고 그 속에서 흔들 리던 감정들을 다시 느끼게 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오늘도 떠난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남기고 간 조용한 울림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그 잔향이 있다면, 여행은 이미 의미를 갖는다. 떠남은 결국 얼굴이 아니라 감정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이고, 풍경은 그 흔적을 조용히 말해 주는 가장 솔직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 마크오제(Marc Augé) 프랑스인류학자

그의 '비장소' 이론은 우리가 낯선 공간 속에서 느끼는 감정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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