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 대학이나 직장을 다니면서도 독립해서 혼자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감히 한 번도 하지 못했었다. 성격상 그냥 엄마가 해 주시는 따뜻한 밥을 먹고 통금 시간에 맞춰서 집에 오는 게 편했나 보다. 그러다 30대 초반 결혼을 하고, 그때부터는 남편과 살면서 두 식구의 생활을 꾸려나갔다.
그러던 내가 갑자기 태국에 강사 자리를 구하게 되었고, 나는 혼자 살게 되었다. 내가 태국으로 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친한 언니들은 "에이그.. 부부는 같이 살아야 돼."라는 말로 약간의 우려를 표현했고,
심지어 태국 현지 선생님들도 "선생님, 남편 분도 함께 오시는 거지요?" 라며 나의 상황을 확인했다.
근데 나도 전혀 몰랐다. 혼자 사는 게 어떤 것인지 말이다. 심지어 한국이 아닌 타국에서 혼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인지 말이다.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집을 알아보고, 인터넷을 신청하고, 다이소 같은 가게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들였다.
"아니 혼자 산다는 것이 이렇게 신나는 일이었어?"
남편이 들으면 서운해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너무나 즐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 생활 7년을 외국에서 살면서 나는 남편과 항상 붙어 지냈다. 남편의 직장에 따라 이동하는 나라마다 너무나 낯설고 새로워서 한동안은 남편 없이는 집 밖에 나가지 않은 적도 있었고, 집 밖에 나갈 때엔 굉장한 용기를 무장하기 위해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오늘도 나는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도 새벽같이 일어나 셰이크를 갈아먹고, 아파트 헬스장으로 운동을 하러 간다.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집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 들어서면 주인아주머니는 내 얼굴만 보고 "라테 옌?" 하고 뚝딱 아이스 라테를 만들어 주신다.
가끔은 학교 가는 길에 점심 도시락을 사기도 한다. 학교 주변의 식당은 여러 가지 반찬을 조리해서 진열해 놓고 밥이나 국과 함께 파는데, 미리 밀폐용기를 준비해서 도시락을 사면 나중에 학과 사무실에서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기도 편하다. 생강채와 닭고기, 브로콜리를 볶은 것, 그린커리, 소시지 볶음 그리고 계란 프라이까지 얹어서 50-60밧에 살 수 있다. 한화로 계산하면 2000원에서 2400원 정도이다.
강의를 마치고 나면 배가 너무 고파서 학생들과의 인사도 허겁지겁 마무리하고 학과 사무실로 돌아와 밥을 먹게 된다. 숙제 검사도 하고, 강의 준비도 하면서 남은 시간을 학과 사무실에서 보내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집에 가는 길에는 마트에 들러서 간단한 재료를 사서 집에서 요리해 먹거나, 또 귀찮으면 나가서 먹기도 한다. 여기는 음식의 천국, 태국이니까!!!
밤이 되면 해가 업어서 조금 걸어볼 엄두가 난다. 음악을 들으면서 학교까지 걷다 보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신기한 스트리트 푸드들이 길거리에 즐비하다.
가끔은 학생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다가 "선생님!"하고 부르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주워 들어 맛있다는 간식을 사서 먹으면서 걷기도 한다.
결혼할 때 신랑들은 신부의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게 해 준다는 말을 흔히 한다. 그런데 나는 혼자 살면서 비로소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게 된 것이다.
나를 걱정하는 남편이 가끔 태국에 온다. 오랜만에 남편을 만나면 그것 또한 너무 반가워서, 그동안 내가 터득한 이곳의 삶의 노하우와 에피소드를 쏟아내곤 한다.
"여보, 그동안 말할 상대가 없어서 외로웠나 봐?"
"아니, 전혀 ㅎㅎ 근데 당신 언제 돌아 가?"
혼자가 되어본 6개월의 시간이 꿈처럼 흘러갔다. 누구는 혼자 살아 외롭고, 누구는 혼자 살아 행복하다. 인생에도 가끔의 쉼이 필요하듯, 나에게도 혼자인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