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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쥐 쌤 Feb 27. 2022

학생들과의 밀당

중간고사를 앞두고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잘하는 애들은 어떤 문제를 내도 잘할 것이 분명했지만, 이미 한국어에 흥미를 잃어 기초부터 부족한 아이들은 시험 자체가 지옥처럼 느껴질 것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학습 동기를 잃지 않도록 하면서 성적 분포도 고르게 하는 시험문제를   있을까 하는 고민에 연일 생각이 많아졌다. 역시 선생의 입장과 학생의 입장은 이리도 다른 거였다. 시험  수업시간에 그동안 배운 내용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시험에 대한 팁을 조금 주기로 마음먹었다.




여러분, 10쪽을 보세요. 회사의 직급을 공부했어요. 대리 다음에 뭐라고 했죠? 과장 옳지.. 시험에 나오겠지요?”

한국인에게는 조금 우습게 보일 수도 있지만 비즈니스 한국어 과목에서는 한국 회사의 일반적인 직급, 관광업, 제조업 등에  관한 용어를 필수로 배운다.


이만큼 시험에 나올만한 내용을 목청껏 얘기했으면 공부를 하겠지 하는 마음에 조금 기대를 해 보기로 했다. 시험 날짜는 2주 전 학과장에게 통보를 해야 하고, 시험 문제는 1주 전 교내 서무실에 제출하여 복사를 맡긴다. 복사를 맡길 때는 작은 종이에 시험날짜, 과목, 복사 매수 등을 적는데, 태국어로 되어있는 양식이라 처음에는 조교의 도움을 받아서 작성했다. 그렇다.. 나도 배우고 있다!


드디어 시험 날.

교실에 들어서니 학생들은 스스로 5열로 자리를 배치하여 학번 순으로 앉아있었다. 사뭇 다른 분위기에 나도 깜짝 놀라 근엄한 얼굴로 시험지를 세었다. 긴장된 얼굴로 앉아있는 학생들이 너무 귀여워서 약간 웃음이 나왔지만, 시험을 앞둔 그들의 심각한 분위기에 나도 함께 긴장을 하게 되었다.

 줄의 앞사람에게 시험지들을 나눠주고


“시작!”

동시에 빠르게 시험지를 넘기며 머리까지 질끈 묶고 몰두하는 학생들을 보니 새삼 나의 어깨에 책임감이 느껴졌다.


이들의 인생에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선생인 나도 함께하고 있구나.’

학생들은 시험을 끝낸 순서대로 차례로 교실을 떠났다. 드디어 마지막 학생이 떠나고, 약간은 뭉클해진 마음에 교실을  바퀴 돌며 감상에 젖었다. 오늘 시험에 나온 문제들은 학생들이 졸업하고 한국 회사에서 일하게 되면 요긴하게 쓰일 지식이 되겠지 하는 마음에 은근한 자부심까지 들었다.


그러다 문득 눈에  책상  구석의 낙서.

대리, 과장, 차장

아니…이 녀석들이. ㅠㅠ


직급이 잘 안 외워졌는지 책상 한 구석에 연필로 희미하게 커닝 페이퍼를 만들어 놓은 거였다. 선생이 시험에 나온다고 강조는 했고, 잊을까 걱정은 되고.. 하니 적어 놓은 듯했다.


하아 녀석들 진짜 어떡하지?’

잠깐 뭉클했는데 커닝 페이퍼를 보니 살짝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 나는 이토록 학생들을 짝사랑하지만 학생들은 또 내 마음을 이렇게 실망시킨다.


‘에라이…’

주섬주섬 짐을 챙겨 텅 빈 교실을 나선다. 또 이걸 어떻게 할지 머리가 다시 아파오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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