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모르는 내 마음
4월이다. 서울에서 가져온 짐, 기존 충청도 집에서 쓰던 짐, 두 종류의 짐을 합친 지도 한 달 반이 지난 것. 그 사이 아이는 어린이집에 적응을 했고, 우리 부부도 이곳 생활에 익숙해졌다.
다만 짐 정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 남편이 열을 올려 안방 베란다 창고 물건들을 쓸고 치웠다. 우리가 집 정리 시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던 곳이다. 그 안에는 남편이 애정했던 원예용품과 크리스마스 대형 트리가 있다. 남편은 죽은 목재들을 정리하고 화분 속 흙을 비웠다. 원예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착덕에 집은 늘 푸르렀고 생명이 넘쳐났다. 꽃봉오리가 피면 기뻐하고 스러지면 영양제를 사다 꽂으며 애지중지했다. 그러다 나의 임신과 출산으로 거처를 서울로 옮겼고, 한 겨울 화분 대이동을 걱정하던 남편은 고민을 거듭하다 손을 쓸 세도 없이 결국 아이들을 모두 하늘로 보내버렸다. 또 갓난아이가 집에 있으니 당분간 화분은 엄두도 못 낼 터다. 화분 속 잔뿌리를 잘라내고 쓰레기로 버리는 마음이 오죽할까 싶어 잠자코 그 과정을 지켜봤다.
“정리 다했어.” 그가 말했다. 약속대로 큰 화분들은 문 앞으로, 작은 화분들은 베란다에 모아두었단 뜻이다. 내가 이제 이들을 당근 매물로 올려도 된다는 말이렸다. 몇 번의 채팅과 약속으로 작은 화분들은 순조롭게 새 주인을 찾아갔다. 문제는 대형 화분들이다.
혼자 들 수 없는 큰 화분들. 그러던 중 화분물받이는 꼭 씻어야 한대서 그건 그것들끼리 목욕을 시킨 후 모아놨다. 결국 큰 녀석들을 처분한다는 건, 화분과 물받이와 화분받침 세트를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남편이 화분을 집 밖으로 빼놓는 작업 후, 그렇게 큰 화분들은 몇 주째 우리 집 현관 복도에 쌓여있었다. 몇 주 째. 집도 절도 아닌 저곳에 방치돼 있는 화분들은 무슨 죄인가.
“화분 정리 언제 할 거야?” 점심을 먹으며 마주한 그에게 독침을 날린다. “해야지.”란다. 더 센 독을 날린다. “여행 전까지 처분 완료해. 여보가 당근 직접 할 거지?” 곧 우리 가족은 한 달간 여행을 떠난다. 또 중고물품 정리용 당근은 늘 내 몫이었다. 남편은 답이 없다. 점심을 먹다 번개를 맞았다 생각할지 모르겠다. 왜 갑자기 화를 내시나 싶겠지.
벌써 4월이다, 화분처분이 안되니 베란다 정리가 끝나질 않는다, 나 혼자 맨날 힘들여 정리하면 뭐 하냐, 이 집은 나 혼자 사는 집이냐, 너만 피곤하냐 등등.. 목구멍까지 솟은 말들을 꾸역꾸역 삼킨다. (늘 그렇듯) 힘들다는 표정으로 앉아있는 그에게 잔소리로 들릴 말을 해서 뭐 하겠나. 내 입만 아프지.
아침 운동을 하고 앉을 새도 없이 베란다와 팬트리를 오가며 일부 짐을 정리했다. 하면 할수록 백팔번뇌에 시달리게 된다. 왜 나 혼자 해?(내가 잘하니까 참자), 모르는 척 눈감고 그냥 내가 해버려?(아마 내가 다 처분해도 그는 모를지 몰라. 용돈이나 벌지 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가 할 때까지 두 눈 질끈 감아?(문 앞 정승처럼 서있는 화분들이 내 어깨에 짐처럼 앉아있어도), 내일 살살 구슬려볼까?(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번뇌를 잊고 평화를 얻으려 책 한 권을 펼쳤다. 남편은 낮잠을 자러 들어간단다. 나는 왜 자꾸 혼자 우리 가족 살림을 고민하고 있는가. 속 편해 보이는 저 남자가 오늘따라 더 야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