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다
나의 드림하우스. 거실 창을 열면 바로 이어진 아담한 마당의 잔디가 카펫처럼 깔려 있고 그 위에 사뿐히 놓인 테이블에서 누군가와 커피를 홀짝이며 담소를 나누는 나의 모습. 자동차를 좋아하는 나로서 조금 욕심을 더하자면 그 마당 앞에 차를 세워놓고 거실에서 감상할 수 있는 그런 집이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이런 집을 상상할 때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다. 주택에 대한 나의 애착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드림하우스의 스펙까지 말할 수 있음은 내가 1998년 영국에서 CSV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 임시로 머물렀던 코티지(cottage)가 그 시작점이었음을. (이쯤 되면 일종의 향수병?)
오늘날 대학생들의 필수 코스가 된 해외 어학 연수는 1990년대부터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속된 말로 '개나 소나' 어학 연수를 가던 때였다. 하지만 내게 어학 연수는 단순히 시대의 유행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세상 밖으로의 탐험이자 진심으로 영어를 터득하기 위한 절실함이었다. 특히 유럽은 그야말로 꿈에서도 그리던 곳이었다. 직접 가서 모든 것을 겪어보고 내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물론 능수능란하게 영어를 내뱉는 나의 멋진 모습도 그리면서. 당시 내 눈에 '더 넓은 세상'은 우리에게 '배울 것이 많다고 배운 선진국' 미주와 유럽뿐이었는데,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은 자연스럽게 영국이었다.
훗날 영국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입사한 나의 첫 직장. 외부 미팅 때마다 함께 다니던 본부장님(후에 사장님이 되셨다)은 상대 회사에 나를 소개할 때마다 마치 명문대에 합격한 자식이라도 자랑하듯 "이번에 400대 1의 경쟁을 뚫고 채용된 유 사원이 '영국 유학 출신'입니다" 이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때마다 속으로 '대학을 다닌 것도 아닌데 유학은 무슨...'이라 민망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한참 뒤 돌이켜 보면 큰 그림으로는 2년간의 영국경험이 단순히 학교에서 공부한 '진짜 유학'보다 더 진정한 유학이 아니었을까 느끼게 된다. 인생을 경험하면 할수록 더욱 그렇다. 또 내게는 단순히 영어실력을 늘려 온 '언어 연수' 이상으로 인생의 큰 변화를 얻은 분기점이 되었는데 앞서 말한 '집에 대한 애착'은 그런 변화 중 극히 일부의 사례에 불과하다.
한동안 금수저, 흙수저란 말이 유행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아마 앞으로도 계속 쓰일 것 같다. 아무튼 이 단어가 쓰이는 '취지'는 나 역시 공감하지만...왠만하면 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단어에는 뭔가 체념이라는 정서가 풍기기 때문이다. 물론 살면 살수록 우리 개개 인생은 분명 어떤 흐름 또는 길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닌가'하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이 꼭 저항하지 말고 될대로 되라는 인생을 살라는 의미는 아니다. 분명 될 것은 되고 안 될 것은 안 되지만, 그것이 될 지 안 될지는 직접 해봐야 알기 때문이다.
처음 영국행 비행기가 착륙할 무렵 아무 연고 없는 낯선 땅을 조금은 긴장된 눈빛으로 내려다 보던 나, 반면 귀국 비행기에 올랐을 때는 영국은 물론 유럽 본토 위를 날 때까지도 '저 아래 내 친구 누구, 누구... 또 누구가 있네' 하며 뿌듯했던 나의 모습이 교차한다. 온전히 나의 의지로 꿈꾸고 실행했으며 행운 또한 이에 호응해 준 영국 프로젝트. 하지만 내가 스스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알 길이 없다. 역시 어떠한 상황에서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기 마련이다. 나의 이 '영국 상륙 작전'이 그것을 분명히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