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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샛별 Jun 24. 2020

THE WINNER TAKES IT ALL

    내게 스포츠에 어울리는 노래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ABBA의 “The winner takes it all”을 고르겠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발표되었던(1980년 발표) 이 곡은 사실 사랑에 관련된 노래라고 한다. 2절에 들어서면 나오는 사랑에 대한 노랫말과는 달리, 1절과 후렴은 상당히 스포츠의 성격을 떠올리게 한다.

  

I don't want to talk about things we've gone through. 
지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Though it's hurting me. Now it's history. 
가슴 아파도 지금은 추억이에요. 

I've played all my cards And that's what you've done too. 
나는 모든 카드를 썼어요. 당신도 그랬겠죠.

Nothing more to say. No more ace to play.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더 이상 이길 패가 없네요.

The winner takes it all.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요. 

The loser standing small beside the victory. 
패자는 승리 옆에서 쓸쓸히 서있죠.

That's her destiny. 
그것이 그녀의 운명이에요.     


    이 노래가 내게 특별하게 기억된 건 어떤 해의 프로야구 중계 때문이었다. 그 해 포스트시즌 마지막 경기 중계를 마칠 때의 클로징 음악으로 사용되었는데, 우승기를 휘날리며 기뻐하는 우승팀의 선수들 아래로 느리게 지나가는 방송 스태프 이름들이 묘하게 아직도 생생하다. 그 해에 내가 응원하던 팀이 우승을 놓쳤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도?) 


    특히나 축구와 달리 페넌트레이스 종료 후에 포스트시즌이 치러지는 프로야구의 매 경기는 이 노랫말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나간 정규 시즌의 영광이나 안 좋은 상대전적, 어제의 경기는 모두 잊어야 한다. 모든 경기는 오늘의 1승을 위해 가능한 모든 카드를 쏟아부어야 하는 총력전이다. 시즌 내내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던 에이스 선발투수가 중간, 또는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는 일은 이제 특별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내일을 위해 카드를 아낄 수 없다. 내일이 없다면 아껴둔 카드는 꺼내보지도 못한 채 무대에서 내려가야 하고, 조명도 꺼질 테니까. 


    그렇게 양 팀이 모든 것을 쏟아붓는 시리즈를 펼쳐도 모든 시리즈가 종료되고 축제의 주인공이 되는 건 승자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과 함께 격려의 박수를 쳐도 패자에게는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긴 한 시즌을 완주하고 준우승을 이뤘지만 그 누구도 준우승을 축하하지 않는다. 준우승팀(패자)은 때때로 시상대에 나오기를 거부하는 사례도 있었으나, 대체로는 승자 옆에서 씁쓸한 표정으로 박수를 보낼 뿐이다. 


    올림픽 시즌에 시상식을 살펴보면, 동메달을 딴 선수의 표정이 은메달을 딴 선수보다 밝을 때가 있다. 1:1로 진행하는 많은 종목의 경우 동메달 결정전을 통해 메달의 주인공을 가리게 되는데, 아마 마지막을 ‘승리’로 장식한 기억 때문이지 않을까. 


    어쩌면 스포츠를 직업으로 삼지 않아(못해서) 다행이다. 우리의 일은 그래도 ‘The winner takes it all’ 까지는 아니니까. All 대신 Almost 정도는 되는 듯해 좌절하는 날도 있다. 분명 똑같이 최선을 다하는데 좀처럼 이길 수 없는 연패의 늪에 빠지는 시기도 온다. 패배한 경기에서 홈런을 친 선수의 마음처럼 늘 타이밍이 어긋나는 아쉬움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스포츠 경기와는 다르다. 노래가 부르듯 승자 옆에 쓸쓸히 서있는 것 말고, 승패와 상관없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낸 만족감이 우리의 운명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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