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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샛별 Jul 20. 2020

나의 첫 번째 북페어

싱얼롱페이퍼를 다녀와서

    어떤 책을 짧은 시간에 훑어보고 구매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얼굴을 내놓고, 또는 등을 내놓고 빼곡하게 공간을 채운 책들을 보면 마치 사전의 모든 단어들을 책으로 꺼내 늘어놓은 것 같다. 그러니 가득한 책 속에서 한 권을 고른다는 것은,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속에서 스쳐가던 이가 내 운명의 상대임을 알아본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 당연한 어려움과 힘겨움을 조금은 잊고 있었다.



   7월의 첫 번째 주말, <싱얼롱 페이퍼>라는 이름으로 열린 '2020년 인천 아트북페어'는 나의 첫 번째 북페어였다.


    당초 2019년 말로 예정되었던 북페어는 돼지열병으로 인해 올해로, 그리고 다시 코로나 19로 몇 차례 미뤄져 여름의 가운데에 열렸다. <잔이 비었는데요>를 이을 두 번째 책과 함께 참여하고 싶은 행사였기에 한 권을 가지고 가기 뻘쭘해서 참가를 오래 고민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크고 작은 북페어들이 코로나 19로 대부분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있어, 경험 삼아 참여해보기로 했다.


    행사가 열린 인천 아트 플랫폼은 인천역과 개항장 거리 근처에 있는 독특한 문화공간이었다. 건물 벽면에는 예전에 공장으로 쓰이던 이름이 그대로 남아있다. 성수동이나 을지로 골목 사이 노포들에서 느낄 수 있는 묘한 감각이 각 동에 걸린 여러 전시회 현수막에서 나풀거렸다.



    바로 길 건너편 호텔을 예약해두고 하루 전에 숙박하며 인천 여행의 기분을 냈다. 인천에 살았던 몇 년 동안에도 먹어본 적 없던 차이나타운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첫 북페어를 기다렸다. 호텔의 통창이 마주하는 인천항은 밤에는 기대와 달리 로맨틱한 밤바다를 보여주진 않았지만, 아침에 두꺼운 암막 커튼을 열 마치 가을 하늘처럼 뻥 뚫린 느낌이었다.


    코로나 19로 철저해진 출입 관리를 위해 QR코드 인증을 하고, 놀이공원의 자유이용권 같은 형광 밴드를 손목에 둘렀다. 한 때는 미술작품들과 클래식한 음악이 채웠을 전시공간은 텅 빈 테이블로 빼곡했다. 운 좋게 코너에 배치된 나의 첫 부스에 책과 캘리그래피 엽서들을 진열했다.



    두 차례에 걸쳐 인쇄한 책의 재고는 이제 100권을 조금 넘는다. 지금은 내 손을 떠나 누군가의 공간에 자리 잡은 책이 훨씬 많다. 하지만 친구와 지인들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빈 잔 같은 내 책을 골랐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에필로그에 인용한 임경선 작가의 말처럼 이 부족한 책이 다른 이들에게 사랑받기를 바랄 뿐이었다. 북페어는 내 책을 대하는 사람들을 바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그 이유로 첫 출판 때부터 꼭 한 번은 참가하고 싶었다. 나의 책이 독자를 마주하는 그 자리를 엿보고 싶어서.


    북페어가 진행된 7시간 동안 많은 이들이 행사장을 드나들었고, 부스에 놓인 내 책에 관심을 가진 분들도 각양각색이었다.

    제목에 웃음을 터트리며 지나치는 사람들, '너한테 딱이다'라며 일행을 놀리는 사람들, 조심스럽게 관심을 표하며 샘플 책을 들춰보는 사람들, 그리고 감사하게도 자리에서 책을 구매해주신 분들까지.


    140여 개의 부스로 채워진 행사 중에서도 큰 볼거리 없는 내 부스에서 처음 책에 관심을 가져주신 분이 나오기까지, 그리고 명함을 건네며 첫 대화를 나누기까지, 처음 책을 구매하신 분께 캘리그래피 엽서와 책을 건네드리기까지. 그 많은 각각의 순간까지 걸린 시간은 많은 책들 가운데 한 권으로 선택되는 것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하지만 선택받지 않아도 좋다. 북페어에선 부스에 다가오신 분들이 샘플북을 들춰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나름대로 신경 썼던 뒷 표지의 깨알 문구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책 제목, 내용으로 일행과 대화하거나 일부를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올 때도 마냥 웃음이 났다. 사인을 요청해주신 분의 책에 사인을 할 때는 그간의 어떤 사인보다 더 정성을 들였다.


    북페어에서 겪은 매 순간순간, 지나쳐 온 나의 다른 '처음'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의 설렘을 꽤 많이 잊은 것 같은, 습관이 되어버린 요즘의 날들을 다시 채색할 에너지도 얻었다.


.처음 가제본 된 책을 받으러 간 날

.1쇄 완성본이 도착한 날

.사인을 만들고 연습하던 날들

.첫 택배를 포장하던 날

.독립서점에 처음 입고하고 돌아오던 날

.진열대에 놓인 내 책을 처음 본 날

.2쇄가 도착한 날

.책을 테마로 열었던 첫 파티


그리고 한참 후인 오늘,

.첫 북페어



    2쇄로 나온 열 박스의 책이 집안을 채운 날보다 이 날의 첫 북페어가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내 책이 누군가의 눈길이나 손길에 닿고, 내 말들로 쓰인 페이지들이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누군가의 시간을 잠시 점유하는 상상을 할 수 있는 점이 좋다.


    북페어가 끝난 후, 7시간 동안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기고 강한 에어컨 바람에 떨었던 덕에 몸살 기운이 있었다. 테이블보로 썼던 담요를 몸에 두른 채 저녁을 먹고, 묵직한 책과 함께 1호선 전철에 올랐다.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지하철 안에서, 책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가장 울컥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 적었던 메모를 찾아 붙여본다.




    이 순간의 공기와 기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따뜻하고 느린 인사를 등 뒤에 남겨두고, 묵직한 유리문의 스토퍼를 손으로 느끼며 떠나온 서점. 서점에 들어설 때 우산에 후드득 떨어지던 빗방울이 그마치 구름 속을 걷는 듯 습한 공기. 멀찌감치 주택들이 다닥다닥한 해방촌 풍경이 언덕 아래로 보인다.


    후텁지근하고 축축한 공기 때문일까. 구름 위에 있어 영영 잡지 못할 것 같았던 꿈이 손끝에 잡힌 것 같은 기분 때문일까. 괜히 눈가에 눈물이 핑 맺힌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몸살 기운은 많이 사라졌다. 인천에서 포장해 온 닭강정에 좋아하는 맥주를 마시고 함께 돌아온 책을 정리했다. 북페어의 기억을 담은 샘플북이 언젠가 또 다른 북페어에서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길 바란다. 다만 그때는 책을 조금 적게 챙기더라도 꼭 도톰한 겉옷과 초콜릿을 먼저 챙겨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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