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고
이 책을 선택한 계기는 단순한 여러 가지가 겹쳐서다. 먼저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쓴 사람이 썼다. 매우 단순하지만 강하다. 물론 최근에 이런 선택에 배신감을 안겨준 작가도 있었지만. 그리고 내가 이 책을 봤을 때 (정확히는 이 책이 내 인스타그램 피드에 노출되었을 때) 주문하면 원고지 노트를 받을 수 있었고, 초판 한정으로 저자의 사인 인쇄본을 받을 수 있었다. 무려 한정판이 두 개! 사인본과 원고지 노트! 나는 증정품에 참 약하다. 제목이 직관적인 것도 좋았다. 나는 책을 주제별로 모아서 꽂아두는데, 얼마 전에 내 책꽂이에 술에 대한 책이 글쓰기에 대한 책 보다 훨씬 많아졌다는 걸 깨닫고 조금 죄책감을 느끼던 때였다. 마지막으로 표지에 고양이가 있다. 그것도 두 마리나.
하루 만에 책을 받고 추운 바깥 온도 때문에 습기가 묻어나는 표지를 한 장 넘기자마자 내 선택 (선택이라기보다는 마케팅에 '반응'한 것으로 봐야겠지만)에 감사했다. 인쇄된 저자 사인의 첫 문장이 고마워서였다.
2019년 여름에 독립출판으로 첫 책을 내고, 2020년에 두 번째 책을 내겠다고 다짐했다. 첫 출판의 꿈을 품었을 때로부터 꿈이 이뤄지기까지 20년은 걸렸던 걸 생각하면 두 번째 책이 세상에 나오지 않은 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래도 한번 바퀴가 돌기 시작하면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아 조금은 낙심한 내게 응원을 건네는 것 같았다. 공장에서 인쇄되어 나온 그 손글씨가 나에게.
당신이 글쓰기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인지 아닌지는, 작품을 몇 편 발표하기 전에는 당신 자신을 포함해서 누구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랜 욕망을 마주하고 풀어내면 분명히 통쾌할 거예요. 가끔은 고생스럽기도 하겠지만 그 고생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어 써 내려간 진심 어린 응원을 2년 전에 읽었다면 이렇게 따뜻하게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 번 해보면 안다'라는 말은 아직 걸음을 내디뎌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때로 공허하게 들리기도 하니까. 그래도 독립출판으로나마 내 글로 사람들을 마주해봤기 때문인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모른다고 했던 꿈을 쟁취한 그 기쁘고 통쾌한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가제본을 받아 돌아오던,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흐른 그 봄과 여름 사이의 공기와 햇빛까지도.
이 책은 장강명 작가가 상상하는 '책 중심 사회'로 시작한다. 의사소통의 핵심이 책인 세상이다. '플라톤도 공자도 인터넷이 뭔지 몰랐다'라는 문장이 와 닿았다. 한정된 글자 수에서 비약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책으로 의견을 주장하고 반박하는 사회. 이 사회에서는 누구나 책을 읽고, 쓰게 될 것이다. 그가 이 책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가 많아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도 장강명 작가가 그린 '책 중심 사회'에 살고 싶다. 인터넷 대신에 무거운 백과사전을 꺼내서 숙제를 해야 했던 어릴 때가 가끔 그립다. '아니면 말고' 식의 인스턴트 정보들 대신에 백과사전처럼 묵직한 지식과 철학의 무게가 필요할 때가 있다.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라면 내가 텍스트를 좋아한다는 걸 안다. 영화나 드라마는 즐겨보지 않고, 이왕이면 원작 소설을 본다. 오래 시간 화면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이 피곤하기도 하고 일상에서 큰 덩어리 시간을 차지하는 게 아깝다. 반대로 책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면 충분히 생각할 수 있고, 내용에 따라서는 멀티태스킹도 가능하다. 내 경우에는 읽는 속도가 빨라서 '시간면에서도' 경제적이다. 그런데 특히 소설에서 내가 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더 폭넓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이걸 느낀 건 해리포터를 영화로 봤을 때였다. 언제나 원작을 따라가기는 어려운 법이라지만, 내가 만들어낸 나만의 호그와트, 나만의 세계가 연기처럼 사라진 느낌이었다. 정말 아쉬웠던 건 영화를 본 이후부터 모든 상상력이 영화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내가 그렸던 '말포이'는 없어지고 영화 속에서 그 배역을 연기한 톰 펠튼만 남았다. (오해하지 마시라. 톰 펠튼이 싫은 게 아니었다. 사실 톰 펠튼 팬 페이지에도 자주 방문해서 아직도 이름을 기억한다.) 나는 작가가 써낸 책으로, 내가 만든 그 세계들을 다른 누군가의 것으로 대체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여전히 책이 좋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책 중심 사회' 라면 그런 사람들을 거리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 중 하나는 "나 같은 게 책은 무슨......"으로 시작하는 꼭지다. 독립출판으로 책을 낸 이후에 지인들을 만나면 종종 들었던 말이 "나도 한 때 책 내는 게 꿈이었는데"였다. 나이도 살아온 길도 다른 사람들인데 나와 같은 꿈을 품고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언제나 나는 "늦지 않았어요. 저도 했잖아요"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럼 또 그들은 한결같이 "이제 와서 무슨", "글재주가 없어서" 같은 말로 답했다.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작가들에게는 특출한 재능이 있기 때문에 범접할 수 없는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글을 쓰고 책으로 엮는 게 꿈이라면 그 빛나는 재능이 없는 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 첫 책을 갖게 된 것과 비슷한 수준의 기쁨과 행복은 느낀 적이 없었다. 나도 그냥 포기할 수 있었던 꿈이었다고, 그래도 한 번만 믿고 해 보라고 말하기에는 이제 막 습작 같은 책을 펴낸 내가 감히 하기 어려웠던 말을 이 책에서 찾았다.
장강명 작가는 "재능이 없으니 안 돼"라는 말도, "그거 써서 뭐하려고?"라는 말에도, "저 같은 게 책은 무슨..."도 책을 쓰지 않을 이유는 아니라고 말한다. 기자로 일하면서 틈틈이 글을 써 왔던 작가 본인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고 있는데, 떠오르는 작품만 여러 개인 그도 마찬가지로 다른 일로 생계를 책임지며 틈틈이 쓰던 글로 유명 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지 않으면 어떤가. 나 스스로만 설득하면, 지금 당장 글을 쓸 노트와 펜, 또는 워드프로세서만 있으면 내 오랜 꿈에 다가갈 수 있는데! 아이슬란드는 책을 한 권이상 출판한 사람이 인구의 10%나 된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독립출판으로 신선한 주제의 다양한 책들이 세상에 나오고 있다. 주로 독립서점에 찾아가야 만날 수 있는데, 기존 대형서점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 다양함이 좋다.
책에서 장강명 작가는 책을 쓰려는 사람들을 위한 팁도 많이 전달한다. 에세이, 소설, 논픽션 같은 영역별로 새겨두면 좋을 조언들이 많았다. (특히 최근에 소설을 쓰면서 고민했던 부분에 대해 도움을 받은 것도 있다)
아마 그 자신도 다른 일을 하며 글을 쓴 시간이 길었기에 더 단단한 내공이 쌓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책이나 방송에서 접했던 다정하고 섬세한 그의 말투가 책 전체에서 느껴져 오래 알고 지낸 사람으로부터 조언을 받는 기분도 든다.
글을 쓰는 게 좋고, 책을 쓰는 게 꿈인(이었던) 사람이라면 꼭 한번 쥐어주고 싶은 책이다.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일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