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더타운 서비스와 함께 하는 재택근무에 대한 생각을 얼마 전 브런치에 남겼다. (Work ToGether with Gather) 발행한 글을 다시 읽다가 나의 여러 재택근무 경험을 돌아보게 됐다. 코로나 19 이후로 나처럼 재택근무가 일상이 된 사람들도 많고, 몇몇 IT 스타트업은 앞으로 전면 재택근무를 선언하기도 했다. 사실 재택근무가 이번의 전 지구적 재난으로 생겨난 것도 아니고, 그 이전에도 분명 존재했지만 이렇게 우리에게 익숙하지는 않았다.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는 "코로나 19가 바꾼 것은 변화가 아니라 속도"라고 말했다. 직장인에게는 꿈처럼 느껴졌던 재택근무를 일상에 가져온 걸 생각해보면 분명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기업 IT 계열사로 입사했고,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으로 오해하기도 하는 중견 화장품 제조사를 거쳐 지금은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회사원으로 일한 만 13년 동안 세 개의 서로 다른 규모의 회사를 경험한 셈이다. 업태와 규모만큼 문화도 제각기 달랐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그 모든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경험했다. 코로나 19 이전까지 재택근무가 일반적이지 않았던 걸 고려하면 흔하지 않은 경험이 아닐까 싶다. (첫 재택근무 경험은 무려 신입사원 시절인 2009년이다!) 짧게는 며칠에서 몇 주, 그리고 지금은 1년이 넘도록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사무실이 아니라 집에서 (또는 그 외의 공간에서) 일한다. 기본적인 형식은 다 같았지만 그 경험은 모두 달랐다. 마치 완전히 서로 다른 근무 형태였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내가 경험한 서로 다른 재택근무와 당시 느낌을 돌아보다 보니 그 차이를 만든 가장 큰 원인은 회사와 구성원의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택근무는 회사가 구성원을 어떻게 대하는지 사무실 근무보다 더 명확하게 보여줬다. 며칠간 그 기억들을 더듬으며 내가 큰 차이를 느낀 이유를 찾아보면서 간단하지만 중요한 하나의 요소에 도달했다. 오늘은 나의 오래된 재택근무들을 돌아보려고 한다. 추억여행의 목적은 회사와 구성원의 좋은 관계를 위한 열쇠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 글은, 재택근무 이야기인 동시에 회사와 구성원이 함께 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첫 재택근무
10여 년 전, 시키는 일을 잘 해내는 것이 미덕인 대기업 신입사원 시절에 재택근무 파일럿(Pilot) 대상으로 선정되어 한 달쯤 집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강제로 제시된 인사팀의 인원 할당에 준비한 핑계들(직무가 적합하지 않다거나, 사무실이 아니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거나)이 통하지 않자 팀장이 정한 참여자가 나였다. 그냥 가장 만만한 신입사원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야 한다며 막일에 가까운 자산, 문서 정리 작업이 나를 위해 차곡차곡 쌓였다. 본래 나의 일은 재택근무로는 할 수 없다는 판단에 억지로 만들어낸 일거리처럼 보였다. 결국 그 직무도 코로나 19 아래에서는 재택근무를 선택한 걸 생각해보면, '불가능'이란 건 믿음에 따라 정해졌던 게 아닌가 싶다. 원래 3개월로 계획된 파일럿 프로그램이었지만 팀장은 처음부터 나를 3개월이나(!) 집에서 일하게 둘 생각이 없었다. 늘 나에게 1달쯤 지나면 어떻게든 우겨서 파일럿에서 빼낼 거라고 다짐했다. 누구에게 무엇을 위한 다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회사에서는 웹캠과 헤드셋을 지급했다. 노트북에는 근무시간 측정을 위해 별도의 프로그램도 설치하게 했다. 마치 피시방처럼 (요즘 피시방은 어떤 시스템인지 모르지만) 근무 시작 버튼을 눌러 출근을 표시했다. 출근을 누르면 타이머가 동작하고 휴식 버튼을 누르면 타이머가 멈췄다.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바탕화면에는 파일럿 프로그램 교육 때부터 강조한 재택근무 수칙들이 있었는데, 그중 몇 가지는 이런 거였다.
1. 휴게시간에는 근무 시간 타이머 작동을 중지할 것
2. 업무를 마칠 땐 근무 종료 버튼을 눌러 표시할 것
3. 언제든 연락하면 바로 웹캠을 켜서 자리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킬 것
마치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연한 말을 문구로 적어두는 것이 왜 묘하게 기분을 나쁘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문구 하나하나가 나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도 내가 일하는 모습은 모든 동료들이 볼 수 있지만, 왠지 기분이 달랐다. 아마 그건 감시와 증명으로 느껴져서가 아니었을까. 회사에서 동료와 서로 책상을 마주하고 일하는 일을 서로를 감시한다고 여기지는 않는데, 노트북에 불안하게 달린 웹캠은 나까지 불안하게 했다. 당연한 것을 규칙으로 정하는 순간, 때로 그 당연함은 당연함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파일럿 프로그램 기간에 개인적인 일로 휴가를 썼다. 농담 반(이라고 믿는다) 진담 반으로 재택근무인데 휴가를 왜 쓰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재택근무가 근무형태라는 걸 많은 사람이 인식하는 지금이라면 어이없는 말이지만 그땐 그랬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이면, 왕복 3시간의 출퇴근은 피곤해도 업무 시간만큼은 정말 여유로웠다. 우리 팀이 그렇게 휴식시간이 많았는지 혼자 집에서 일하다 보니 새삼 깨달았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티 타임, 점심 먹고 산책 한 바퀴, 자리에서 함께 하는 잡담...
화장실에 잠깐 다녀오려고 해도 타이머를 중지하고, 혹시나 그 짧은 사이에 웹캠 콜이 오진 않을까 불안한 재택근무에 비하면 사무실에서 일하는 시간은 마음만 편한게 아니라 몸도 편했다.
파일럿을 시작할 때 통하지 않았던 팀장님의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이유"가 비로소 받아들여져, 나는 파일럿 프로그램 참여자 중 가장 먼저 종료하게 됐다. 그 결정에 오히려 내가 더 반가웠다. 예상했던 결과지만 그래도 혹시 3개월을 꼬박 채워야 하나 싶은 불안함도 있어서였다. 물론 많은 동료들은 이런 내 말을 진심으로 믿지 않은 기색이었지만.
두 번째 재택근무
첫 재택근무로부터 꽤 시간이 흐르고 다른 회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사무실 이전 과정에서 새로운 건물 환경에 문제가 있어 급하게 재택근무를 결정하게 됐다. 구성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빠른 조치에 꽤 고마운 마음이었다. 한 번도 재택근무를 한 적이 없던 상황에서 갑자기 모든 구성원이 재택근무를 하게 되니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사용할 수 있는 화상회의 솔루션이 있음에도 많은 회의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서면 보고로 대체됐다.
내 업무의 경우 어차피 각자 맡은 데이터 분석을 하면 되는 일이고 커뮤니케이션 빈도가 높지 않아 업무 효율은 오히려 좋았다. 조용한 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집중도 잘 되고 불필요했던 회의들이 많이 정리되면서 업무 시간도 많이 확보됐다. 출퇴근의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물론 장점이었다. 반면 오히려 재택근무를 하면서 더 빈번해진 커뮤니케이션이 생겼는데 바로 업무보고였다. 출근으로 시작해서 오늘 할 일을 보고하고, 퇴근할 때는 그날 한 일이나 자료를 공유하며 보고하라고 했다. 사무실에서는 매주 주간회의를 통해 일의 진척사항을 보고하거나 이슈가 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유하는 정도였다. 출근이나 퇴근할 때의 인사는 말 그대로 '인사'였지 보고가 아니었다. 업무에 최적화되지 않은 집에서 일을 하는 물리적 불편함보다 사무실에서는 없다가 재택근무에선 생긴 새로운 절차들이 재택근무를 피곤하게 했다.
결국 일주일쯤 지난 뒤에는 외부공간을 빌려 원래 우리 '사무실' 대신 또 다른 '임시 사무실'을 만들었다. 회의실 정도밖에 되지 않는 크기의 공간에 팀원이 다닥다닥 붙어서 하루 종일 일을 하다가 퇴근하면 차라리 빨리 사무실 복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모두가 불편하고 불신했던 짧은 재택근무가 끝나고 몇 년이 지난 뒤, 코로나 19 초반에 사내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재택근무가 다시 시작됐다.
10년 후, 하지만 똑같은
업무 특성에 따라 일부 직군은 재택근무를 하지 못했는데, 당시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재택근무를 누군가에게만 주어지는 차별적 복지로 꼬집는 글이 쏟아졌다. 대부분이 재택근무로 일하는 조직에 대한 비아냥거림도 적지 않았다. 내 첫 재택근무 경험으로부터 꼬박 10년이 지났는데, 시간을 거슬러 간 것처럼 똑같은 말들이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휴가를 왜 쓰냐는 말, 최고의 복지를 누리고 있어서 좋겠다는 말. 나는 사무실에서 고생하는데 누구는 집에서 쉬면서 같은 월급을 받는다는 말.
무엇보다 회사와 구성원의 관계를 정의할 때 흔히 쓰는 말대로 '사용자'가 아니라 똑같은 '노동자'끼리 그런 생각으로 날 선 공방을 이어간다는 것이 안타까웠고 또 답답했다. 재택근무를 하는 자신의 동료들이 그걸 휴가처럼 누리고 책임감 있게 제 일을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서로 간의 불신을 보여줬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은 초과 근무를 올리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 역시 '재택근무가 유연한 근무형태가 아니라 복지'라는 회사의, 또는 리더의 생각을 대변했다.
때때로 실제로 회사나 구성원들이 서로를 의심하는 그대로 재택근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구성원이 있기에 의심이 당연한거라고 생각하기엔 10년 전 그 경험, 의심과 증명으로 시작된 재택근무가 마음에 남긴 흔적이 컸다. 이땐 내가 회사를 떠나기로 결정한 시점이었는데 내부의 문화적인 그늘들을 보며 떠나길 잘 선택했다며 스스로를 응원했다.
지금 나는 1년이 넘도록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공간과 업무 공간이 분리되지 않아 워라밸이 깨지기도 했지만 이제 안정적인 흐름을 찾았다. 업무용 커뮤니케이션 채널에서 누군가 긴 시간 응답이 없어도 '놀고 있었나'하는 의심은 전혀 하지 않는다. 나 역시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 나를 찾아왔던 기록이 게더에 남았더라도 나의 성실함을 의심받을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구성원 사이에 그 사람이 자율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전 회사 구성원과 지금 구성원의 차이 때문일까? 나는 반대한다. 이런 믿음의 시작은 회사가 구성원을 믿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번 글을 쓰면서 나의 재택근무 경험을 생각했을 때 이전의 재택근무를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그 글에 오늘 돌아본 예전의 재택근무가 담기지 않은 이유다. 그 근무 경험에 대한 나의 기억이 지금의 일하는 방식과 너무 달랐기 때문에 처음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회사도 코로나 19로 여러 차례 전사 재택근무를 했고, 그 모든 과정에 우려가 하나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의 가장 큰 우려는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이었다. 회사 전체를 하나의 목표를 향해가는 '원 팀'으로 생각하고 긴밀하게 서로 소통하는 우리의 일하는 방식에서 재택근무가 우리 강점을 막는 게 아닐까 우려했다. 그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여러 도구들을 찾았고 그중 하나가 지난번 소개한 게더 타운이었던 셈이다.
오늘 돌아본 나의 옛 재택근무 들에서 회사가 가장 우려했던 점은 '생산성', '성실성'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회사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구성원이었던 내가 그 모든 업무 방식과 경험에서 느낀 건 그랬다. 사무실에서 다른 구성원, 리더의 감시 하에 있지 않을 때 과연 직원들이 제대로 일을 할 것인가를 의심했기에 그걸 해소할 여러 절차와 도구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회사는 구성원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사무실에서 서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던 건가.
회사가 나를 믿는가
상대가 나를 믿는지 의심하는지는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러니 회사가 구성원을 얼마나 믿는지 구성원이 모른다고 생각하면 정말 큰 착각이다. 이런 믿음은 회사가 계속해서 말로 '믿음'을 강조한다고 해서 만들어지거나 보이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나를 믿는다고 말해도 믿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그 말은 의미를 잃는다. 이전에 리뷰했던 책 <그래서, 인터널 브랜딩> (https://brunch.co.kr/@secreties86/66)에서는 조직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구성원에게 전해진다고 썼다. 계속 회사가 구성원을 의심하거나 감시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면 누구라도 이 회사는 구성원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서 마음을 열고 내 태도를 정하는 걸 계산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인간관계에서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본다. 묵직한 마음에는 묵직하게, 가벼운 마음에는 가볍게 대하기 마련이니까. 그런 면에서 회사에 '돈 받는 만큼만 한다, 받는 것보다 적게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구성원이 많다면 그걸 탓하기 전에 회사가 구성원을 대하는 태도에 원인은 없는지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분명 회사와 그 구성원이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에게서 가치를 발견하고 마음에 드는 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랬던 관계가 망가지고 있다면 외부(그 사람이 원래 이상했어, 요즘 세대들이 다 이래)보다는 관계 안에서 해소할 방법을 찾아보는 게 낫다고 보인다.
나는 늘 회사와 구성원의 관계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건강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믿음이 중요한 것도 너무 닮았다. 물론 믿음이 성과를 만들어준다고 보장할 수는 없지만, 믿음이 없이 건강한 성과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긴 어렵다고 본다. 둘 사이에 믿음이 없는 회사와의 동행은 불안하게 높이 쌓아 올린 젠가 조각들 같다. 언제 어디서 문제가 생겨서 와르르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상태처럼.
재택근무에 대한 회사의 걱정들 안에는 단지 '재택근무'라는 형태 때문이 아니라 그냥 구성원과 조직을 대하는 회사의 생각이 녹아 있다. 재택근무는 그저 그 속살을 조금 더 잘 보여줄 뿐이다. 경험하는 동안에는 그냥 마음이 불편하고 초조했던 나의 옛 재택근무들이 그 불안했던 관계의 민낯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보여줬다. 몸이 편한 대신에 마음이 불편한 재택근무는 모두 과거의 유산으로 떠나보내고, 앞으로는 모든 재택러들이 몸과 마음이 모두 편한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코로나 19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하는 재택근무가 아니라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한 유연한 근무 형태로 제대로 자리잡기도 함께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