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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샛별 Jan 12. 2023

워케이션, 떠나야 하는 이유

낯선 일상 속 반가운 불편함을 만나러 갑니다

    사내 컬처북에 기고했던 글을 다시 옮깁니다. 워케이션 예찬론자의 하나로 참 일찌감치 올리고 싶었던 글이었고, 그간 브런치에 글을 쓰는데 많이 소홀했기에 (매달 알림을 보내오는 브런치에도 찔렸고) 더욱 간절했지만 적어도 발행이 된 이후에 공개하는 게 옳다는 나름의 기준으로 기다렸네요. 누구도 기다리지 않았지만, 저 자신은 기다렸던 2022년 저의 워케이션, 떠날 수밖에 없었고 또 떠날 것을 확신하는 "낯선 곳에서 일하는" 이야기입니다. 



Reload


    재택근무가 장기적으로 확정되었을 때, 리브애니웨어라는 장기 숙소 예약 서비스 앱을 설치했다. 언제, 얼마나 길게 떠날 것인지 정한 건 없었지만 틈날 때마다 워케이션에 적합한 지역이나 숙소를 검색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 SNS 피드에는 각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워케이션이나 ‘살아보기' 같은 프로그램, 그리고 숙박앱 광고로 가득 찼다. 그 이유를 잘 알지만 거리에서 전단지를 받는 느낌으로 의도적으로 클릭하며 노출 횟수를 더 늘렸다. 화면을 새로 불러오면, 또 새롭고 낯선 여행지와 호텔이 나를 유혹했다.


    가장 싫어하는 계절 겨울이 지나고 날이 포근해진 4월에야 드디어 첫 워케이션을 떠났다. 초록의 숲보다는 파랑의 바다를 편애하기에 해안선을 따라 고르다가 방문 때마다 만족스러웠던 부산을 선택했다. 난생처음 방문하는 곳보다는 익숙한 곳에서, 다만 낯선 방식으로 머무르고 싶어서였다. 이전의 부산여행은 길어야 이틀, 사흘 정도였는데 첫 워케이션은 10일이나 체류할 예정이었다. 해외여행 때나 사용하던, 그래서 코로나 19 이후로는 의도치 않게 봉인한 24인치 캐리어를 가득 채웠다.

    필요한 건 언제든 얻을 수 있는 집과 달리 낯설고 텅 빈 방에서 일주일이나 일할 생각을 하니 챙겨야 할 것이 끝도 없었다. 워케이션을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여행용 캐리어를 방 한가운데 열어뒀다. 휴가의 설렘으로 가득 채우고 다시 풀어내기를 여러 번 반복했던 가방에 짐을 채우고, 다시 덜어내고, 또 새롭게 채웠다. 캐리어를 반쯤이나 차지한 업무용 짐을 보다가 ‘가지 말까’, ‘사서 고생인가’, ‘그냥 휴가나 갈걸 그랬나’라는 생각을 하루에 최소 세 번은 했었던 걸 고백한다. 그때 여행 가방에 넣었다 빼기를 반복한 건 짐뿐만 아니라 떠나기로 했던 마음까지였다. 

    그 고민들은 토요일 이른 아침, 해운대행 버스에 여행용 캐리어를 싣고 좌석에 앉자마자 사라졌다. 나만큼, 그보다 나이 먹은 것 같은 남부터미널을 떠나는 버스에서 공항 면세구역에 들어서는 설렘을 닮은 오묘한 느낌에 기분이 들떴다.



Refresh


    월요일, 부산에서의 첫 출근을 앞두고 보낸 이틀 간의 주말은 그간 내가 부산에서 보낸 어떤 날보다 여유로웠다. 남은 날짜를 헤아리게 되는 여행자와 다르게 내겐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바쁘게 어딜 가야 할 필요도, 오늘 꼭 먹어야 할 음식도 없다. 부산에 도착해서 첫 식사를 양꼬치로 정한 것도 그 여유 덕분인 셈이다. 특별히 맛있을 것도 없는 흔한 메뉴, 좋아하지도 않는 흔한 병맥주를 마시고 나오면서도 찐 행복을 느낀 건 시시각각 나를 점점 채우는 새로운 에너지를 느껴서였다.

    해운대 바다를 마주하는 책상 위에 업무 환경 세팅을 끝낸 일요일 밤. 침대에서 고개만 돌리면 눈에 들어오는 작은 책상과 의자를 보는데 내일 해가 뜨면 바다로 가득 채워질 통창과 그 풍경을 보며 일할 하루가 기대됐다. 마치 처음 출근하는 날을 앞둔 것처럼, 설렘과 기대감이 너무 커서 걱정했던 사소한 일들은 머릿속에 떠오를 틈이 없었다. 이 느낌은 워케이션 내내 매일 밤 비슷했다. 집의 익숙한 환경에서 잠들 때는 좀처럼 느끼지 못한 흥분이었다.


    일부러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은 통창으로 들어온 햇빛에 눈을 뜨면, 몸을 조금만 일으켜도 바다가 보였다. 대단한 결심이나 의지 없이도 아침 운동을 빼먹지 않고 나서게 된 건 하루를 시작하며 마주하는 바다 때문이었으리라. 여기까지 와서 바다를 창 너머로 바라만 볼 수 없지!라는 마음이 매일 나를 바닷가로 이끌었고, 어느 방향을 선택해도 만나는 바다 때문에 운동이 힘든 줄도 몰랐다. 바닷바람과 함께 한 운동을 마치면 오면 에너지는 어느 때보다 가득하게 채워져 있었다.

    바다 풍경이 무선 충전으로 체력을 채워주기라도 하듯, 저녁이 되어도 좀처럼 에너지가 방전되는 일이 없었다. 워케이션에서 업무를 마치고 나면 그 시간 나름의 보상이 있다. 종일 일하던 바로 그 책상에서 슬슬 노릇한 색으로 변하는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술 한 잔, 밤의 해운대를 느릿느릿 걸으며 음악 대신 듣는 파도 소리 같은 것. 오히려 짧은 여행이라면 느끼지 못했을 여유로움은 워케이션이라서, 길게 머무르는 곳이라서 주어진다. 아침저녁으로 매일 다르게 찾아오는 낯선 자극들은 가라앉을 수 있는 밤의 에너지를 신선한 기분으로 바꿔줬다.


나의 낯선 오피스


Return


    첫 워케이션이 끝나기도 전에 두 번째 워케이션을 계획했다. 예상했던 불편과 예상하지 못한 불편, 예상했던 좋은 점과 예상하지 못한 좋은 점들이 섞인 워케이션에서 좋았던 점이 불편보다 압도적으로 컸기 때문이다. 낯선 환경이기에 더욱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고 선택의 자유를 더 크게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떠나기 전 미리 계획한 저녁 일정이 하나도 없었는데도, 일하는 일주일 동안 갑작스럽게 부산에 있던 지인들과 몇 차례나 만나게 됐다. 오히려 혼자 저녁을 먹을 일이 하루밖에 없어서 가보고 싶었던 ‘혼술'에 적합한 많은 장소는 다음을 기약했다. 떠나보기 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워케이션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통적으로 들었던 단점은 업무 환경의 불편이었다. 나 역시 같은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집이 아닌 새로운 공간에서 일을 하는 건 생각보다 많이 불편하다. 손만 뻗으면 있었던 책꽂이도 없고, 긴 시간 일해도 편하게 몸을 받쳐주는 사무용 의자도 없다. 책상도 좁거니와, 한 번에 여러 개의 창을 띄워놓고 일할 수 있게 해 준 모니터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수시로 목 스트레칭은 필수다. 직접 방에 가보기 전에는 파악하기 어려운 조명 문제도 있다. 많은 경우 호텔 객실의 조명은 ‘쉼’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무실이나 집처럼 밝지 않아서다.



    호텔 조명의 아쉬움을 걱정했지만 눈부셔서 제대로 바라볼 수도 없는 해가 퇴근 때까지 빛났다. 때로 흐려서 빛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그런 날에도 노트북 화면 너머로 보기만 해도 파도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파란 바다가 끝에서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그 풍경에 잠시만 눈이 닿아도 업무 환경의 불편함은 금방 잊혀 버렸다.


    김영하 작가는 저서 <여행의 이유>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워케이션의 아쉬운 점이 불편함이라고 한다면, 그 불편함은 꼭 Workation이 아니라 Vacation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모두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한 건 각자의 집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꿈꾸고, 낯선 길에 오르는 건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 그 불편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집순이인 내게 여행은 그런 것이었고, 워케이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또 떠날 수밖에.





Replay


    내 두 번째 워케이션은 여름 성수기 직전의 6월 말, 또 부산 해운대였다. 경험이 좋았던 호텔로 다시 예약했고 객실까지 똑같이 배정받았지만 날씨는 완전히 달랐다. 첫날부터 부산 지역의 장마가 시작됐고 머무는 내내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이 흔했다. 조깅을 나갔다가 비에 쫄딱 젖어 돌아오기도 여러 차례였고, 쉬는 날엔 내내 비가 오다가 일할 때면 쨍쨍한 날씨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일상과 불편함이 그리워 다시 돌아간다. 집에 돌아온 다음 날, 나는 또 새로운 워케이션 계획을 세웠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아침 해가 빛나는) 바닷가에서 조깅을 마치고 돌아와, 출근을 앞두고 창 너머의 바다를 바라보며 노트에 적어뒀던 메모로 대신하려 한다.



  재택근무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워케이션은 새로운 삶의 방식 하나를 열어준다. 한정된 삶의 시간 안에서 내 지평을 넓히기 위해 새로운 경험이나 도전을 하는 걸 좋아한다. 이게 내가 누군가로부터 ‘재밌게 산다’는 말을 듣는 이유일 것이다.
 
  워케이션이 기존에 내가 했던 도전이나 새로움과 달랐던 건, 회사의 제도나 문화 없이 나 혼자의 노력으로는 할 수 없는 경험이라는 점이다.

  갖춰지기 쉽지 않은 조건이 모두 갖춰져 있다. 닫힌 문의 열쇠가 나에게 주어진 셈이다.

  이 경험의 문을 열어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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