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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샛별 Jun 30. 2023

돌아보는 일은 잘 돌보는 일

상반기의, 2분기의, 6월의 마지막 하루를 보내며


6월 30일의 특별함


    이번 주 주간 미팅에서 한 주를 돌아보며 한 팀원이 작성한 메모가 인상 깊었다. 내일이면 상반기, 2분기, 6월이 모두 끝난다는 말이었다. 생각해 보면 매년 6월 30일은 그런 날이다. 거기다 올해의 6월 30일은 하필 금요일이기도 하니, 평일을 기준으로 주를 구분하는 보통의 직장인들에게는 반기, 분기, 월, 주가 모두 한 번에 끝나는 날인 셈이다. '오 그렇구나!'라는 깨달음이 스친 생각의 자리엔 금세 회의 주제와 논의가 채워졌지만, 회의 후 일상 속에서 내일이 꽤 의미 있는 날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2023년의 6월 말은 참 독특하다. 6월 28일은 만 나이가 공통 나이로 적용되면서 처음으로 '어제보다 더 어린' 하루를 살게 된 날이었다. 그리고 하루를 건너 6월의 마지막 날은 얼마만인지는 모르겠지만 주(week)까지 포함해 자주 쓰는 기간의 여러 단위가 다 겹친 신기한 날이다. 몇몇 행성들이 일렬로 늘어서면 뉴스에서부터 보도하고 다 같이 기다리는데 이런 날도 기념해 보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냥 평소의 금요일처럼, 평소의 월말처럼, 보통날처럼 흘러 보내기는 너무 아쉬워서다.


    내 경우 6월 30일이 워케이션의 마지막 날이라 미리 사용한 연차가 참 적당했다. 쉬는 날이라 평소와 같은 하루가 아니라 조금 낯선 하루를 보낼 수 있었으니까. 그것도 늘 영감을 채워주는, 낯선 곳에서! 평소보다도 30분이나 이른 새벽에 눈을 떴지만, 낮의 근무를 위해 애써 더 자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아침 운동을 나설 계획이었는데 좀처럼 그칠 줄 모르는 비를 내내 바라보면서도 조바심 대신 빗소리 자체를 즐기려 창문을 살짝 열어두는 여유를 부렸다. 바스락거리는 호텔 침구 위에 벌러덩 누운 채로 어젯밤 자기 전까지 보던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화면 속의 쨍쨍한 날씨로 대리만족도 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배가 고픈 시간에 식사를 챙겨 먹고, 계획과 어긋났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빗속으로 나섰다. 

    비가 내려서 한산한 모래사장 위에 비닐을 깔고 앉아 내일부터는 금지된다는 해변 음주를 즐겼다. 햇빛이 전혀 없어 보이는 찌푸린 하늘이지만 눈이 부시게 하는 자잘한 빛의 조각을 직접 느끼기도 한다. 딱 1년 전 비슷한 시기에 이 해변에 찾았던 기억을 불러내니 시간의 흐름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마치 손에 잡힐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똑같은 시기, 그대로인 바다, 마치 어제처럼 느껴질 만큼 그때와 비슷한 날씨. 1년 하고 고작 나흘을 더해서 찾아온 이 바닷가에서 오늘 마무리되는 반기, 분기, 한 달뿐만 아니라 지난 1년 까지를 돌아본다. 

돌아보는


돌아보다, 돌보다


    돌아본다는 건 어쩌면 잘 돌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행복한 삶을 계속해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잘 가고 있는지, 길을 잃지는 않았는지 계속 돌아볼 필요가 있다. 몸의 건강을 위해서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것처럼. 또 행복한 순간들이 너무 과거의 기억으로 말라버리기 전에 적절하게 생기를 유지하게 되는 효과도 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 돌아보는 즐거운 추억들은 그 행복의 크기를 두 배로 키우는 좋은 방법이다. 



    주기적으로 돌아보는 건 업무에서는 굉장히 익숙하게 반복되는 과정이다. 피드백과 회고를 중요하게 강조하는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회사들이 어떤 식으로든 과거, 성과, 태도 등을 돌아보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료들과 함께 하는 업무의 회고나, 개인에 대한 피드백이 '일을 하는 나'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면, 일상을 살아가는 나 자신과 주고받는 대화와 회고는 '일상을 살아가는 나'의 성장에 필요하다. 

    데이터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내가 간혹 드는 예시가 있다. 성적을 올리고 싶은 학생이 있는데 채점 없이 반복적으로 문제만 푼다고 해서 문제를 더 잘 풀게 되고, 성적이 오르겠냐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단지 문제를 계속 푸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채점을 통해 내가 어떤 걸 제대로 풀었는지, 어떤 걸 잘못 알고 있고 무엇이 정답인지 알아야 앞으로 더 문제를 잘 풀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행복은 성적이 아니지만 (성적순도 아니고 �), 더 행복하고 싶다면 나의 일상을 채점하듯 돌아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언제 더 크게 행복을 느끼는지 어떨 때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방법이나 경험은 무엇이었는지 아는 건 일상을 돌아봐야 할 수 있다.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내고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둔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정답지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힘든 기억을 돌아보는 것이 비 내리는 시험지를 바라보듯 불편하다고 해도, 내가 그때 행복해 한 이유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힘들다고 해도 답을 알아내기 위해 나를 돌아보고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무리 일상이 바쁘더라도, 사실은 바쁘다면 더더욱 의도적으로 나의 시간을 돌아보는 채점을 해볼 필요가 있다. 


    내게는 '나 자신을 정말 잘 아는 사람'이라는 믿음과 자신감이 있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돌아보는 시간으로 나를 돌보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그 모든 걸 알아가고 싶어 진다. 그 누구보다 사랑해야 하는 사람은 나 자신인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부족하다면 나를 잘 모르고, 잘 돌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돌아보는 지나간 나의 시간


    올해 상반기 24권의 책을 읽었다. 작년에는 같은 기간 동안에 39권의 책을 읽었는데 거의 반토막이다. 스스로도 올해 책을 많이 못 읽고 있다는 걸 1분기를 돌아볼 때 깨달았다. 그래도 2분기에 의식적으로 노력했고 덕분에 24권 중 6월에 읽은 책이 7권이다. 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작년과 비교하면 평균 걸음도, 운동량도 형편없는 수준이다. 이것 역시 봄이 끝나갈 때쯤 스스로 판단하기에 '작년보다 더 건강한 상태 유지'라는 목표는 꿈도 못 꾸게 느껴졌다.

    책을 읽는 걸로 배우고, 그를 통해 내가 쓰거나 그리고 싶은 아이디어를 얻는 나로서는 책을 꾸준히, 다양하게 읽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건강 역시 내가 바라는 다양한 경험들을 충분히 잘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그러니 '책 읽고, 운동할 틈도 없이 바쁜' 일상 때문에 두 가지를 소홀하고 있다면 내 일상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였다. 


    다행히 6월 초에 오랜만의 여행으로 내 일상의 문제를 돌아볼 시기가 있었지만, 다시 한번 천천히 기록과 함께 나를 돌아보는, 아니 돌보는 시간이 생겨서 좋다. 사실은 지금 내 마음은 '좋다'보다는 '다행이다'라는 표현에 가깝다.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발견했기 때문에, 걱정되는 와중에서 슬며시 미소 지을 수 있는 안도감이랄까. 올해의 목표들을 다시 한번 꺼내 읽어보고, 일상에 변주를 주고자 했던 2분기 중간의 다짐을 다시 한번 단단하게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아직 6월 30일의 남은 시간이 10시간 가까이 된다. 그리고 다행히 시간은 끊어지지 않고 연속적으로 흐른다. 오늘 많은 시간의 단위가 끝이라는 건, 내일은 많은 시간의 단위가 시작된다는 의미다. 나를 돌아보며, 나를 잘 돌보고 맞는 새로운 한 달, 분기, 반기가 모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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