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심의위원회 자료 제출을 앞두며
오래된 기록들을 다시 정리하며, 우리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
북파 502비둘기요원이라 불렸던 해군 첩보부대의 동지들은 오랜 세월 자신의 임무를 말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작전의 특성상 기록은 제한적이었고, 침묵은 의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이제 그 침묵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비둘기편대의 임무는 흔히 “호송”이라는 단어로 단순하게 설명되곤 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은 결코 단순한 이동 지원이 아니었다. 잠수정이 목표 해역으로 침투하는 과정에서 길을 열어주고, 심해에 함께 접근하여 척후 역할을 수행하고, 작전이 끝나면 퇴출 경로를 확보해 직접 인솔하는 임무였다. 때로는 어뢰 공격 작전 환경을 조성하는 위험한 해상 작전의 일부이기도 했다.
군사작전에서 척후는 단순한 보조가 아니다. 가장 먼저 위험을 감수하며 길을 여는 임무다. 누군가는 앞에서 바다를 열어야 뒤에 오는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다.
나는 법과 제도의 문제를 떠나, 한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그들이 국가의 명령 아래, 위험을 감수하며 그 임무를 수행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있다.
이제라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고, 그 헌신을 기록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명예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침묵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 김진용
(비둘기요원 겸 수중훈련 교관 김정규 장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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