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준비하고 있는 시니어들을 만나다
"AI 시대라는데, 대체 뭘 해야 하지?"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기술 뉴스 앞에서, 40대인 나조차도 종종 막연함에 사로잡히곤 했다. 내 나이 마흔 언저리, 이제껏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 앞에서는 누구나 작아지기 마련인가 보다.
생각을 비우려 무작정 서울 강남의 대형 서점으로 향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빼든 책은 두꺼운 『손자병법』이었다. 옛 명장들의 일화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잠시, 빽빽한 활자에 집중력이 흐려질 즈음 무심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앉은 곳은 12명 남짓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원목 탁상이었다.
내 양옆과 맞은편에는 나이 지긋하신 시니어 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들 무언가를 열심히 읽고, 밑줄을 치고, 노트에 꾹꾹 눌러쓰며 필기에 여념이 없었다. 호기심에 슬쩍 책의 표지를 살폈다.
놀랍게도 그들이 파고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인공지능(AI)' 관련 서적들이었다.
순간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AI를 책으로 공부하다니? 그게 가능한가?'
하지만 이내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AI 시대에 뒤처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그 거대한 파도 앞에서 저분들은 자신이 평생 해왔던 가장 익숙하고 확실한 방법, 즉 '두꺼운 책을 펴고 펜을 쥐는 것'으로 필사적인 생존 수영을 치고 계셨던 것이다.
'기술의 최전선을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마주하는 사람들.'
그 낯설고도 숭고한 풍경은 내게 강렬한 질문을 던졌다.
그날 이후, 나는 동네에서 작은 오픈 커피챗을 열었다.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였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은 놀랍도록 닯아 있었다.
"AI 시대에 도태될까 봐 너무 두려워요. 그런데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몰라요."
뉴스에서는 챗GPT가 대중화되었다고 떠들고, 전문가들은 이미 제미나이(Gemini), 클로드(Claude)를 넘어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에이전틱(Agentic) 시대를 논하고 있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챗GPT의 프롬프트 창조차 열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태반이다. 기술이 달려가는 속도와 대중이 체감하는 현실 사이의 간극은 아찔할 정도로 아득했다.
그 간극을 보며 나는 결심했다. 내가 먼저 부딪혀보고, 그 경험을 나누는 징검다리가 되기로.
첫 한 달은 말 그대로 AI에 파묻혀 살았다.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다 해보았다.
당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는 '유튜브 쇼츠를 자동으로 만들어서 쉽게 돈 버는 법'에 쏠려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방향에 단호히 선을 그었다. AI를 그저 얄팍한 돈벌이 수단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나에게 AI란, 영상 제작의 효율을 높이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을 조금 더 주도적이고 멋지게 만들어가는 도구여야 했다. 사람들의 내면에 숨겨진 진짜 욕망을 끌어내고, 그것을 AI라는 무기와 연결해 주는 것.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걷고, 뛰고, 달리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만드는 것이 내 목표가 되었다.
동네에서 소박하게 시작했던 모임은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더니 30명, 50명을 넘어 어느새 70명 규모로 훌쩍 커버렸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는 곳엔 늘 성장통이 따르는 법이다. 참가비가 없다 보니 노쇼(No-show)가 빈번했고, 무지성으로 신청하거나 수동적으로 앉아만 있는 경우도 많았다. 모임이 삐그덕대기 시작했다.
나는 과감하게 그라운드 룰을 세웠다. 최소한의 컨벤션과 참여 의지를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문턱을 높이면 사람들이 떠날 줄 알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오히려 참여자들의 밀도와 퀄리티가 높아졌고, 모임은 비로소 단단하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매주 스터디에서 만나는 30대부터 60대까지의 멤버들을 볼 때면 깊은 존경심이 든다.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의 영역에 발을 내딛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나 역시 처음엔 두려웠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깨기 위해 공부했고, 이제는 그들에게 작은 트리거(Trigger)를 당겨주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 모임은 나 자신을 위한 구명줄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 사람들과의 약속이 결국 나의 동기를 가장 뚜렷하고 꾸준하게 만들어주었으니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의 방아쇠가 되어주고 있는 셈이다.
이제 갓 돛을 올린 이 모임이 앞으로 어떤 항로를 그리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이제 가만히 앉아 두려워하는 대신 다 함께 한 발을 내디뎠다는 사실이다.
강남 교보문고에서 펜을 쥐고 AI를 공부하던 시니어분들에게, 그리고 여전히 두려움에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AI를 책으로 읽었다면, 이제 책을 덮고 직접 써봐야 할 때라고.
내 손으로 프롬프트 창에 첫 문장을 입력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영원히 나의 세계가 될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