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르쿤, Meta를 떠나 1.5조 원을 들고 LLM에 선전포고하다
# 자기가 만든 세계에 반기를 든 남자
**얀 르쿤, Meta를 떠나 1.5조 원을 들고 LLM에 선전포고하다**
2025년 11월, 한 남자가 회사를 떠났다.
12년 동안 그가 이끈 연구소는 PyTorch를 만들었고, Segment Anything을 만들었다. 오늘날 AI 연구자들이 매일 쓰는 도구 상당수가 그의 팀에서 나왔다. 얀 르쿤. 딥러닝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 튜링상 수상자.
그런 사람이 Meta를 떠났다.
이유를 알려면 2025년 4월로 돌아가야 한다.
Meta가 야심 차게 내놓은 Llama 4가 출시되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벤치마크 점수를 부풀렸다는 의혹이었다. 테스트용으로 특별히 손본 모델을 내놓고 성적표를 꾸몄다는 것이다. Google DeepMind의 연구자들이 이를 공개적으로 지적했고, 시장은 술렁였다.
르쿤에게 이건 단순한 스캔들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줄곧 같은 말을 해왔다. 지금의 대규모 언어 모델, 그러니까 ChatGPT니 Claude니 하는 것들의 근본적인 접근 방식이 한계가 있다고.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방식으로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만 Meta의 전략은 정반대였다. Llama 시리즈에 올인. 더 큰 모델, 더 많은 데이터, 더 높은 벤치마크 점수. 르쿤이 보기엔 잘못된 방향으로 전력 질주하는 셈이었다.
연말, 그는 조용히 짐을 쌌다.
4개월 뒤, 르쿤은 파리에서 돌아왔다.
2026년 3월 10일. AMI Labs. Advanced Machine Intelligence Labs.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시드 라운드 규모가 1조 5천억 원이다. 유럽 스타트업 역대 최대. 기업가치는 약 5조 원으로 매겨졌다. 시드 라운드에서 이 숫자는 비현실적이다. 2023년에 프랑스의 Mistral AI가 시드로 약 1,500억 원을 모았을 때도 업계가 깜짝 놀랐는데, AMI Labs는 그 아홉 배다.
투자자 명단을 보면 이게 단순한 연구소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NVIDIA가 돈을 넣었다. Samsung이 넣었다. Toyota가 넣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개인 자금으로 들어왔고, 전 Google CEO 에릭 슈미트도 이름을 올렸다. 마크 큐번, 프랑스의 통신 재벌 자비에 니엘까지.
이 사람들이 왜 한꺼번에 몰렸을까.
답은 JEPA에 있다.
Joint Embedding Predictive Architecture. 이름은 어렵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지금의 AI, 그러니까 GPT나 Claude 같은 것들은 결국 이런 기계다. 엄청나게 많은 텍스트를 읽고, 다음에 올 단어를 맞추는 훈련을 수십조 번 반복한 것. 그래서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르쿤의 표현을 빌리면, 이건 세상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단어의 통계적 패턴을 외운 것에 불과하다.
JEPA는 다르다. 단어를 예측하는 대신, 세계의 추상적인 표현을 학습한다. 아기가 중력을 배우듯이. 물건을 던지면 떨어진다는 걸 수천 번의 관찰을 통해 체득하듯이. JEPA는 영상과 센서 데이터를 보면서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익힌다.
르쿤의 팀이 Meta 시절 만든 V-JEPA는 영상에서 가려진 부분을 예측하는 모델이었다. 픽셀을 복원하는 게 아니라, 의미를 예측하는 것이다. 이걸 더 키우면? 로봇이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법을 이해하거나, 자율주행차가 교차로에서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게 가능해진다.
텍스트가 아닌 물리적 세계를 모델링하는 AI. 르쿤은 이걸 만들겠다는 것이다.
르쿤의 발언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다.
"자기회귀 LLM은 끝장이다(doomed)." 2025년 AI 액션 서밋에서, NYU 세미나에서, 그리고 수많은 인터뷰에서 그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5년 안에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아무도 이걸 쓰지 않을 것이다."
2026년 1월 다보스에서는 AI 업계의 거물들이 전면 충돌했다. Anthropic의 다리오 아모데이와 DeepMind의 데미스 하사비스가 "AGI 이후의 날"이라는 세션에서 맞붙었고, 머스크는 블랙록의 래리 핑크와 별도 대담을 가졌다. OpenAI의 샘 올트먼은 아예 불참했다.
진영은 갈렸다. 아모데이는 모델을 키우면 된다고 했고, 르쿤은 방향 자체가 틀렸다고 했다. 하사비스는 둘 다 맞을 수 있다고 했다. 이건 학술 토론이 아니다. 수천억 달러의 투자 방향이 걸린 싸움이다.
르쿤의 주장에 근거가 있을까.
완전히 허풍은 아니다. Epoch AI의 연구에 따르면, 고품질 텍스트 데이터는 이르면 2026년, 늦어도 2032년 사이에 고갈될 가능성이 있다. 2024년에는 네이처 본지에 충격적인 논문이 실렸다. AI가 만든 데이터로 AI를 훈련시키면 모델이 붕괴한다는 내용이었다. 자기 꼬리를 먹는 뱀처럼.
물론 반론도 있다. OpenAI의 o1처럼 추론할 때 더 많은 연산을 투입하는 방식이 효과를 보이고 있고, 이미지와 영상까지 함께 학습하면 이해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주장도 타당하다. 무엇보다, 이론적 한계와 별개로 지금의 LLM은 실무에서 이미 압도적인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확실한 건 하나다. 두 가지 접근이 동시에 경쟁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
AMI Labs가 노리는 시장은 챗봇이 아니다.
제조. 자동차. 항공우주.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고 조작하는 AI, 이른바 Physical AI 영역이다. NVIDIA가 투자한 것도, Toyota가 투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경쟁자는 만만치 않다. NVIDIA는 Cosmos라는 자체 세계 모델을 만들고 있고, Tesla의 Optimus 로봇은 이미 공장에서 시범 가동 중이다. Figure AI는 휴머노이드 로봇에 4조 원의 가치평가를 받았고, Boston Dynamics는 전기 구동 Atlas를 CES 2026에서 공개했다. Google DeepMind도 Gemini Robotics를 발표하며 뛰어들었다.
르쿤의 차별점은 아키텍처 수준의 혁신이다. 대부분의 경쟁자가 기존 LLM 위에 로보틱스를 얹는 접근을 취하는 반면, AMI Labs는 근본적으로 다른 구조를 제안하고 있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JEPA는 아직 대규모로 검증된 적이 없다. 논문과 데모에서 공장과 도로까지는 갈 길이 멀다. 첫 제품까지 최소 1년. 그 사이에 LLM 진영은 계속 진화할 것이다.
1조 5천억 원을 시드에서 태웠으니 후속 투자의 기대치는 하늘을 찌를 것이고, NVIDIA와 Samsung 같은 전략적 투자자가 자체 솔루션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르쿤은 직접 CEO를 맡지 않았다. 프랑스의 연쇄 창업가 Alexandre LeBrun이 CEO를 맡고, 르쿤은 Executive Chairman으로서 연구에 집중한다. 이 역할 분담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소프트웨어가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처럼, 이제 AI도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금의 방식이 정말 맞는 걸까. 단어를 예측하는 것만으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걸까.
얀 르쿤은 60대 중반에 1조 5천억 원을 들고 그 질문에 답하러 나섰다. 자기가 만든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이게 천재의 선견지명이 될지, 거대한 오판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AI 업계에 처음으로 아키텍처 수준의 진지한 대안이 등장했고, 거기에 수조 원의 자본이 붙었다.
5년 뒤, 우리는 르쿤을 예언자로 기억할까. 아니면 돈키호테로 기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