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씨앝 Jan 20. 2019

소비에 최적화된 사람

글: 김선미, 그림: 김민기

 난 소비에 최적화된 사람이다. 갖은 이유를 가져다 붙여 돈을 쓴다. 간밤엔 몇 달간 출금이 없던 문화비 통장을 탈탈 털었다. 월급날 10만 원씩 채우는 문화생활용 꿀단지를 10원 한 장 남기지 않고 싹싹 긁었다. 통장을 털어 쓰려고 시간도 탈탈 털었다. 돈도 시간도 흥청망청 털어 쓰고 뿌듯하면서도 불현듯 돈과 시간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오랜 말씀이 생각나 마음이 불편했다.

 통장으로도 부족해 시간까지 흥청망청한 과정은 이렇다. 현장감이 살아있는 자리에서 보고 싶은데 석달에 걸친 공연 전 일자를 다 뒤져도 여석이 없다. 결국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무의미하게 날짜를 바꿔가며 클릭을 반복했다. 공정하게 경쟁하겠다는 난해한 이유를 갖다 대며 매크로도 쓰지 못했다. 이렇게 했는데도 못 구하면 못 보는 거다.

 중고마켓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오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대형 뮤지컬 공연장 앞에서 티켓을 한 움큼 쥔 사람을 본 적 있다. 입소문과 인기로 배우가 성냥처럼 보이는 자리도 '감사합니다' 하는 공연이었다.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만큼 구하기 어렵다는 티켓을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나 많이 가질 수 있었을까. 한 시간 후면 공연 시작인데 남은 티켓은 어떻게 되는 걸까. 저 이 손에 남겨진 티켓의 두께만큼 객석은 비워진 채로 공연이 시작되는 걸까. 그 자리에 앉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까. 알람을 맞추고 티켓 전쟁을 치른 나는 바보일까. 그날 이후, 구하기 어려운 티켓을 모르는 사람을 통해 사던 일을 멈췄다.

 공식 창구를 통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의지는 생각보다 더 실천하기 어려웠다. 엉뚱한 사람의 배를 불리지 않기 위해, 이름 모를 이의 기회를 박탈하지 않기 위해 영화/스포츠/공연 티켓 중고 거래하지 않기, 좋은 책이 계속해서 많이 나왔으면 좋겠으니까 여력이 된다면 중고나 대여보다 새 책으로 읽기, 나는 개발자니까 지구촌 동료의 의지를 북돋고 친구의 노력이 값싸게 부려지지 않도록 소프트웨어 구매하기, 참여한 모든 이에게 공정하게 대가가 돌아가도록 음악/영상 콘텐츠 구매하기. 이 모든 걸 지키려니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전에 없던 바지런도 떨어야 했다. 알뜰살뜰 살던 나인데 느닷없이 사치쟁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동안 아낀게 아니라 뺏어왔던거라고 다독여도 아깝다는 생각이 돌처럼 굳어져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여전히 수련이 부족하고 미련이 많아 중고XX를 구경한다. 정가에 3,000원씩만 붙이면 더 좋은 자리, 원하는 날짜에 앉을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나면 허탈하다. 아니다. 변칙으로 아낀 시계 침과 동전의 수만큼 누군가의 허리는 꺾인다. 지금의 상큼한 기분은 가치를 인정하는 소비를 했기 때문이다.

 결론은 나 연차 쓰고 라이온 킹 보러 간다!
 자랑하는 거다! 어흥!




* 일기(日气)는 매주 한편씩 헿요일에 올라옵니다.
* 김민기님의 그림은  http://instagram.com/kimminkiki/​ 에서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어학원을 감옥처럼 다니던 때가 있었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