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홀로 출퇴근하는 사람

사주아저씨가 맞춘 나의 결혼운?!

by 시드업리프터

작년 하반기는 이상했다. 인생의 큰 기둥을 차지하는 전환점이 몇 개 있었는데 그것들이 모두 무너졌다. 인사이드아웃 영화에서 라일리의 중요한 기억 섬들이 쿵쾅 무너지는 장면. 라일리의 마음속 이야기처럼 나도 작년에는 크게 힘들었다. 당연히 크게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냥 그랬다. 잠깐 크게 슬펐고 이내 다시 일어났고 현실을 마주하며 매일을 걸어 나갔더니 다시 일상이 됐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어쩔 수 없이 소식을 전해야 했고 놀란 마음에 연락을 많이 받았다. 다 받지는 못하고 거절하고 말았다. 왜냐면 그 일을 모두에게 굳이 설명해야 하는 피곤함과 울먹거림이 뒤섞인 감정이 들었으니까. 그러다 나름 용기 내 받은 M 언니와의 전화에 크게 통곡했다. 언니는 이참에 잘 아는 철학관을 소개받았다. 힘들 때는 그런데라도 가봐. 위로받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면서. 나는 다음 날 가장 빠른 시간대를 예약해 찾아갔다.


지금까지 사주를 보러 혼자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왠지 서늘한 기운이 내게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해 무서웠고 또 가벼운 마음으로 들으려면 누군가가 같이 있어줘야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혼자 가면 너무 절박해 보일까 봐 못 갔는데, 이 날은 그만큼 절박해서 혼자 갔다. 가장 빠른 시간대에 예약했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내 인생이 어디까지 꼬이려는 지 알고 싶었다. 사주에 나와있다면 미리 알고 피하고 싶었으니까. 그래야 덜 아플까 싶기도 했고. 인생이 어디까지 망하려나 궁금하기도 했고 어디까지 언제까지 주저앉는 운명일지, 고비가 이게 끝은 아닐지 두려운 마음에서 확인하고 싶었다.


조금 으슥한 골목을 지나 철학관에 들어갔다. 다른 곳에서는 서당에서 보는 유교 스타일 책과 손으로 생년월일시를 적고 말로 직접 풀어주는 사주를 봤는데 이번에는 큰 모니터에 나의 사주를 입력하자마자 일간, 천간 같은 나의 개인적인 사주 정보가 자동으로 펼쳐지는 묘한 디지털 방식의 철학관이었다.


자~ 이게 내 올해 인생 판이란 말이지. 한문이라 읽을 수 있는 게 없었고 선생님의 설명에 아주 귀를 쫑긋 세웠다. 올해는 정말 안 풀리고 있는 게 맞다고 했다. 마무리에 가서 어그러졌던 일들이, 누군가 내 목을 비틀듯이 하고 있는 형태라고, 힘들었겠다면서 위로의 한마디가 오갔다. 무심한 말들이 나의 마음을 쿡쿡 찔렀지만 눈물 나올 정도는 아니어서 묵묵히 들었다.


“올해 12월에 결혼운이 큰 게 들어와 있는데, 둘이 정말 끝난 거 맞아?”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근데 서너 번 물어보시길래 팍 짜증을 내고 말았다.

(개정색을 하며) “지금 헤어져서 여기 온 거예요. 다시 만날 사이 아니에요.”

그분은 명리학 책을 펼쳐 보여줬다. 내가 안 풀리는 이 상황 한 3가지 정도였는데 책에 나와있는 설명 중 2가지는 꽤 적중했다. 그런데 나머지 한 가지는? 결혼은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돈 값만큼 사주 정보를 얻고 나왔다. 내가 지금 힘든 이유, 내년을 향한 조언, 연애 운세 같은 것들. 그런데 큰 결혼운을 놓친 건 정말 믿을 수 없다며 마지막까지 언짢은 표정으로 분석을 마치셨다.



어언 2달이 흐른 지금, 철학관의 결혼설이 정말일까? 생각보해면 헛웃음이 나온다. 12월에 결혼이라는 키워드가 내 인생에 진짜 등장한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문자 그대로의 결혼할 상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12월에 일 관련해 계약한 지금의 회사와 관련이 있다. 내가 지금 출근하는 그곳이 옛날 결혼식장으로 쓰이던 공간이었다는 걸 알았고 잠시 황당했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책상 자리는 폐백실이고 화장실 가는 길이 옛 결혼식장 로비를 거쳐가는 것이다. 옛 신부대기실과 연회장이 곧 같은 층의 일터였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결혼운이 이렇게 회사와 계약 공간으로 풀릴 일인가? 뭐, 세세하게 들어가자면 하나도 맞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영 소름 끼치는 포인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나의 결혼운은 이렇게 지나가고 마는 것일까? 이상하게 풀린다면 너무 아까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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