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 1인 가구와 부끄러운 꼴찌

책 <필연적 혼자의 시대>

by 시드업리프터

#도서제공 #김수영 #다산초당

1인 가구 천만이 넘었다고 하니 이 책은 출간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한국 사회를 충실하게 살 때 이르는 필연적 결론을 1인 가구라고 정의한 저자. 사회과학책은 이럴 때 확실히 재미있다. 나의 선택은 ‘그 당시 나의 결정’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그 시간을 보낸 무리 중 하나가 되어 통계 지표 안의 점으로 설명되는 것. 그 점들의 무리에 속할 때,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라는 괜한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정규 분포에서 멀어지는 점 하나가 된다면, 그건 참 외로울 것 같아.


김수영 교수가 만나고 온 30, 40, 50대 연령의 혼자 사는 사람들의 보고서를 읽으며 끊임없이 나를 비교했다. 철저하게 자기 객관화가 되면서, 나 혹시 오랜 시간 꽃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태는 아닐는지…싶은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1,000만 명에 들지 못한 캥거루족 상태이기 때문이다. (ㅠㅠ) 여전히 가족의 챙김을 받고 있고 독립을 못 한 상태. 어찌 된 연유인지 장황하게 늘어놓을 순 없다.


아무튼 1인 가구 보다 원가정에서의 방 한 칸이 ‘보통 사람’ 답게 살 수 있으면서도 여전히 내 독립된 공간 하나 없다는 점에서 천만 1번째 사람(즉, 꼴찌)에서 오는 부끄러움이 크다.


책의 표현을 빌려 나를 다시 정의 내리면 ‘무능한 솔로’에 1인 가구 보다 ‘덜 자유로운 싱글’이자 ‘기업가적 자아’를 갖고 있다. (ㅎㅎㅎ) 오랜 시간 커리어 과몰입적으로 살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려는 나’를 나도 적확하게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 책을 보며 사회과학적인 맥락에서의 나를 파악할 수 있어 속이 조금 시원하기도 하다.


53p. 자기 커리어를 구축하는 과업에 매진하는 상황에서 결혼해 가족을 만드는 과업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린다. 비혼 직장인의 커리어 중심적 삶은 경쟁적인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인 결과다.


64p.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은 자신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커리어를 기획하는 데는 능숙했다. 하지만 가족, 결혼, 자녀 출산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친밀한 인간관계가 자신에게 필요한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계획할 여유가 부족"했다. 삶에서 일만큼 중요할 수 있는 인간관계에 대해서 별다른 계획을 갖지 못하고 막연한 상만 가지고 있었다.


275p.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성장 없이 멈춰 있는 진공 속의 삶처럼 묘사해 온 셈이다. 이러한 무지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는 '자식을 낳아봐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말이 여전히 거리낌 없이 통용되며 싱글의 삶이 유아화된다.


밑줄 박박 그을 정도로 후벼 파는 문장이 많은데 특히 368p. 에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사회에서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는”는 인터뷰이의 말과 5p. “나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로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싶었다.”는 김수영 교수의 머리말과 묘하게 일치하던데 김수영 교수님 본인도 1인 가구인 정체성을 직면하게 되는 ‘당사자성’이 영화적인 장면으로 비쳤다.


이 책은 밤에 읽으면 심하게 센치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진지한 책 치고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밑줄 그은 문장들>

5p. 경험의 주인은 그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자신이 겪는 어려움의 의미를 생각하고 전달할 여유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말하지 못했던 일상을 대신 말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여겼다. 누군가는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책상을 만들어주었고, 오늘 먹은 채소를 길러주었던 것처럼, 나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로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싶었다.


19p. 가족과 함께하는 삶에도 명과 암이 존재하듯, 1인가구의 삶에도 당연히 명과 암이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무능한 솔로'라는 과거의 이미지만큼 '자유로운 싱글'이라는 현재의 이미지도 혼자 사는 삶을 왜곡한다.


53p. 자기 커리어를 구축하는 과업에 매진하는 상황에서 결혼해 가족을 만드는 과업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린다. 비혼 직장인의 커리어 중심적 삶은 경쟁적인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인 결과다.


64p.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은 자신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커리어를 기획하는 데는 능숙했다. 하지만 가족, 결혼, 자녀 출산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친밀한 인간관계가 자신에게 필요한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계획할 여유가 부족"했다. 삶에서 일만큼 중요할 수 있는 인간관계에 대해서 별다른 계획을 갖지 못하고 막연한 상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러한 경향은 단순히 관심의 부재라기보다는 기업가적 자아가 초래한 불가피한 결과이다. 기업가적 자아는 학력, 스펙, 커리어처럼 노력 대비 성과가 예측 가능한 영역에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친밀한 관계나 가족 만들기는 성과 지표가 불분명하고, 실패했을 때 비용도 크다. 결혼과 출산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생애 단계가 야니라, 실패의 책임을 전적으로 개인이 지는 고위험 인생 프로젝트이다.


77p. 실제로 중앙노동위원회는 2023년에야 육아 휴직을 사용한 여성을 승진에서 배제한 회사에 첫 시정명령을 내렸을 만큼 이는 암묵적 관행이었다. 이런 조직문화 속에서 싱글 여성들은 자신은 휴직 없이 줄곧 일에 매진할 수 있고 생산성이 높은 노동자라는 사실을 피력하며 우려를 잠 재워야 한다.


98p. 인터뷰 참여자들은 여가가 어떤 형태로든 생산적이었으면 하는 조바심을 잘 놓지 못했다. 게임 레벨이라도 올리고, 레고라도 조립하고, 그림이라도 남겨야 한다. 하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여가시간을 온전히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이 반드시 건강한 생활리듬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194p.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솔루션으로 제안되는 자기돌봄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이미 모순이다. 건강해서 돌봄이 별로 필요 없을 때는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다.


203p. 도영씨가 애인 때문에 집을 치우기 시작한 것은 감시 당해서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 아니다. 타자의 존재가 그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고, 그 결과가 자신도 좋아서 습관이 된 것이다. 현욱 씨 역시 "같이 사는 사람이 있으면 깔끔도 떨고"라고 말할 때, 그것은 통제나 감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자기돌봄의 회복을 의미했다. 타인의 시선이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순간이다.


206p. 살림은 '어떤 대상이 좋은 상태에 놓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애정과 같은 말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일상적으로 마음 쓸 상대가 없는 1인가구는 살림이나 돌봄을 할 동기를 얻기가 쉽지 않다. 돌봄은 타인을 전제로 하기에, 자기돌봄은 불안정한 행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210p. 엄마가 가족을 돌보듯이 "자기가 자신을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레 자기돌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급자로 살아가는 민석 씨 또한 경제적 형편이 좋진 않지만, 혼자 있을 때도 최대한 정갈한 그릇에 갖춰서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자신을 대접하는 마음"이 살림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260p. 가성비다. 다만 그 층위가 다를 뿐이다. 저소득층에게 가성비가 비용 절감이라면, 고소득층 에게는 시간절약이다.


275p.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성장 없이 멈춰 있는 진공 속의 삶처럼 묘사해 온 셈이다. 이러한 무지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는 '자식을 낳아봐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말이 여전히 거리낌 없이 통용되며 싱글의 삶이 유아화된다.


325p. 그는 비혼인 자신을 두고 가족들이 걱정하는 게 싫어서 일부러 멀리 떨어져 살았다. 이처럼 타인에게 독립적으로 '보이는 것'은 1인가구의 자존심이자 중요한 미션이었다.


332p. 내 연구에 참여한 1인가구들도 거의 모두가 외로움을 느낀 경험을 말했다. 이들이 느끼는 외로움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우연히 가족이 밥 먹는 것을 볼 때처럼 아주 평범한 순간들에서 출발한다.


366p. 주말이면 빨래방의 창가에 앉아 멍하니 행인들을 구경하는 39세 프리랜서, 외롭지만 이제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렵다는 41세 직장인, 대화할 상대가 없어 우울증을 앓았던 56세 수급자, 비좁은 원룸에서 살림을 할 에너지를 잃어버린 35세 메이크업 아티스트, 돈이 있어도 요리할 여력이 없어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53세 사업가, 죽은 후 장례를 치러줄 사람을 물색하던 50세 대학교수. 이들은 모두 이 '사이의 시간'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


368p.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사회에서 인정 받는 게 중요하다는 희영 씨의 안내 덕분에, 혼자들이 쉬어 갈 오아시스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구상할 수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를 더 촘촘히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은 오롯이 연구자인 나의 한계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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