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루스 올마이티>
그런 날이 있다. 배꼽 빠지도록 파하 하하 웃고 싶은 날. 매일 저녁 운동하면서 체력을 키워나가는 습관도 좋지만, 이상하게 하루는 비뚤어지고 싶은 변덕거림이 튀어나오는 날이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살아가는 나이기 때문에. 그리고 다시 이 글을 쓰려고 펼쳤다가 덮은 지 일주일 만에 다시 돌아왔다. 게으름이 또 한 번 작동했다. 나름의 패턴이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기도.
아무튼 그날은 생각 없이 웃고 싶은 날이었다. 맥주 한 캔을 손에 쥐고 짐캐리 영화를 찾았다. 일단 옛날 짐캐리는 할리우드의 코미디 장르에서 하드캐리한 인물이고 독보적인 캐릭터 소화력을 가졌는데, 나는 팬이지만 그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그런 이유로, 코미디 영화가 훌쩍 자란 지금은 조금 재미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볼거리 가득한 OTT는 어릴 적 지나쳤던 명작을 다시 발견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브루스 올마이티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뉴욕, 버펄로 지방 방송국의 뉴스 리포터인 브루스(짐캐리)는 재미있고 소박한 뉴스를 재치 있게 전달해 주는 역할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인물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별 볼일 없는 취재거리라 늘 불만을 갖고 있다. 여자친구 그레이스(제니퍼 애니스턴)는 야망 있는 남자친구를 넓은 이해심으로 보듬어 주는 따뜻한 사람이다. 브루스는 늘 메인 앵커가 되고 싶었는데 신은 그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는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매일 일이 꼬이고 무슨 일이든 신을 탓한다. 그러다 신이 나타나하는 말, “야, 네가 신(GOD)해라”
영화는 이렇게 펼쳐진다. 그때는 짐 캐리가 국민 호감 배우였는데 왜 영화배우로는 크게 마음이 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과장한 몸짓의 짐캐리가 조금 거슬렸던 것 같다. 몰입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저러나 이제는 그의 표정에서 벗어나 더 큰 시야를 가지고 볼 마음이 있었다.
이제야 줄거리가 와닿기 시작했다. 신은 그에게 원하는 능력을 선물해 줬고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게 해 줬다. 그러면 해피엔딩이 됐어야 하는 데, 실제로 그의 마음은 고꾸라지고 만다.
내가 소화한 <브루스올마이티>는 이렇다. 누구에게나 맞는 옷이 있다는 것. 남들이 선망하는 좋은 위치가(아나운서)가 아니어도, 그를 반짝이게 해주는 곳이 따로 있을 거라고.
나 역시 그럤다. 남들이 원하는 나의 모습, 특히 나를 아껴주는 측근이 바랄 것이라고 내가 그들에게 투사한 욕망 같은 것이 사실은 나와 맞지 않았던 것 같았다.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행복의 기준은 누구나 다르고, 내가 엘리트 출신이 아니고, 내가 사회적 지위가 높아야 어울리는 게 아닌 사람인데 계속해서 남들이 바랄 것이라 생각한 것 같고, 또 그 자리에 오르려고 했다.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는 무시한 채.
그래서 브루스가 가장 잘 맞는 곳이 그가 바로 있는 그 기점(현재)인데, 남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려는 태도가 나에게 투영되면서 반성이 됐다. 잘 참으려고 해 봤자 내 길이 아니었을 텐데. 그리고 브루스올마이티를 마음 편하게 볼 수 있었던 월요일 맥주와 함께하는 그 저녁, 나는 또 한 번 깨달았다. 아, 나는 내가 원하는 게 뚜렷한 사람인데 자꾸 참으면 더 나은 길이 있을 거라 여기면서 다른 오르막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을까. 스스로를 질책하려는 것은 아닌데, 이제야 눈이 뜨이면서 알게 됐다. 몇 년 동안 내가 원하는 것을 그때그때 들어준다고 여겼지만 진정 원하는 것들은 모두 덮어두고 살고 있었구나. 이제야, 이제야.
브루스올마이티의 짐캐리 표정에 갇혀 바라보지 못했던 큰 인생교훈이, 이제야 들리기 시작했다. 취해서 그런지 몰입이 유독 잘 되는 그런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