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다니는 퀴어, 아까끼의 이야기
퀘스쳐너일 수도 있는데 계속 성적지향을 결정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라서요. 무성애자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무성애자? 사실은 그것도 확신이 없어요. 적어도 남자랑 연애하거나 잘 생각은 없고, 결혼이나 출산, 육아 이런 것도 원하지 않아서 이성애자는 아닌 것 같으니까… 성소수자는 맞아요.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 아까끼님과는 따로 약속을 잡지 않아도 늘 집회 현장이나 민우회 등 페미니즘 특강 자리에서 마주쳤다. ‘노동당’ 세 글자가 적힌 무지개 깃발 아래에는 늘 아까끼가 있었다.
현재 노동당 성정치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아까끼는 퀴어인권에 관심이 많다. 퀴어인컴퍼니 인터뷰 섭외도 한 집회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렇듯 퀴어인권에 목소리를 내고 활동하는 아까끼이기에 인터뷰하기 전까진 막연하게 본인의 성적지향도 확고할 것으로 생각했다가 “지금으로선 판단을 유보한 상태”라는 답에 내심 놀랐다. 그는 연애에 대해서도 뚜렷한 욕구가 없었다. ‘좋은 여성분이 있으면 만나고는 싶은데 내가 과연 그분께 잘할 수 있을까’ 정도가 다였다.
현재 성적지향에 대한 판단도 유보 상태이고, 연애에 대한 욕구도 맨송맨송한 아까끼. 처음 자신의 퀴어 정체성을 찾기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제 어린 시절이나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소위 말하는 여자다운 여자가 아니었고, ‘나도 여성스럽게 꾸며야 하나? 불편한데…’이런 고민을 하긴 했지만 깊이 고민하진 않았어요. ‘대학 가면 남자도 만나고 연애도 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와 같은, 학생에게 주로 요구되는 가치에 순응했던 것 같아요. 고민을 유예한 거죠. 하지만 대학에 오고 나서도 여성스럽게 꾸미거나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제가 이성애자는 아니라는 확신을 하게 됐어요. 특별한 사건을 겪은 건 아니고 여성주의 세미나에 참여하거나 소모임 활동을 하면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아까끼의 직업을 처음 듣고 상당히 놀랐다. 정당 활동을 누구보다 정열적으로 하는 그였기에 기자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정치적으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하는 기자가 이렇게 정당 활동을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회사에선 성적지향도 정당 활동 사실도 철저히 숨기고 있다는 아까끼는 종종 노동당 성정치위원회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석했다가 타사 취재기자 동료를 발견하고 당황할 때가 있다며 멋쩍게 웃었다.
내 경우는 신문기자 하면 기사글을 쓰는 취재기자와 보도사진을 찍는 사진기자 정도만 알고 있었다. 아까끼가 편집기자라고 직업을 소개했을 때도 겉으론 “아 그렇군요.”했지만 속으론 물음표가 떠올랐다. 편집기자는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우리가 신문을 펼치면 기사만 있는 게 아니에요. 전체 지면이 있고 기사 제목이 들어가고 사진이 들어가고 광고도 들어가고 기사마다 크기도 다 다르죠. 편집기자는 기사의 제목을 뽑고, 사진과 여러 요소를 배치해서 지면을 구성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될 것 같아요. 신문이라는 게 처음부터 우리가 보는 형태로 나오는 게 아니에요. 우선 취재기자가 취재해온 기사를 편집부로 넘기면 우리는 그 기사와 어울리는 사진을 선정하고 제목을 달아줍니다. 이것만으로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인포그래픽이라든지 도표 등 이미지를 디자인 팀에게 만들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기사A는 중요하니까 크게 가고 기사B는 하단에 작게 넣으면 좋겠다’와 같은 레이아웃을 결정한 뒤에 데스크와 국장의 확인을 받죠. 지면 제작이 끝나면 인쇄에 들어갑니다. 여러분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신문을 보시게 되는 겁니다.”
왠지 멋있는 직업소개였다. 그렇다면 편집기자가 되는 길은 무엇일까? 특별할 것은 없다. 편집기자도 일반 취재기자와 마찬가지로 입사 지원서류를 내고, 똑같이 논술·작문 시험을 보고 입사해 편집 업무를 배우고 실무에 투입된다고 한다. 아까끼에게 취재기자가 아닌 편집기자로 지원하게 된 이유를 묻자 답은 단순했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꼭 기자가 아니더라도 신문사나 방송사에서 일하는 퀴어 노동자들이 모일 수 있는 모임을 만들고 싶어요. 이런 모임이 직종마다 생기면 직장 내에서도 커밍아웃을 쉽게 할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해서요. 그런데 이걸 어떻게 구체화하고 현실화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에요.
기자라는 직업 특성 상 그나마 옷을 자유롭게 입고 다닐 수 있어 다행이라는 아까끼. 눈코 뜰 새 없이 마감 일정이 돌아가는 신문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정당 활동이라던가 퀴어인권운동을 꾸준히 병행할 수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에서 잘 버티기 위해서라는 답을 내놓았다.
“저는 직장만 다니면 제가 못 버틸 것 같아요. 직장에서 왜 남자 안 사귀냐라던지 결혼은 언제쯤 할 생각인지 질문을 받을 때도 그렇고 제 보이시한 스타일도 이런 직종이 아니면 버티기 힘들 정도였겠죠. ‘어떻게 내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직장에서 버틸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활동을 통해 내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기여한다는 생각이 에너지가 되어줍니다.”
하지만 아까끼는 인권운동이 모두에게 꼭 들어맞는 정답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10대의 저는 대입에 모든 걸 올인한, 그저 그런 범생이였어요. 재미없는 사람이었죠. 제가 생각하기에 다행히 저는 직업도 있고 벌어 먹고살고 있지만 ‘모두가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도 하다 보면 길이 생길거야’라고 말해줄 순 없어요. 다 자기만의 삶이 있는 거고,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 힘냅시다’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앞으로의 연재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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